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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자매, '야만에 맞선 조선'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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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자매, '야만에 맞선 조선'에 반하다

[화제의 책]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조선 사람들보다 조선을 더욱 사랑했던 영국 여인들. 최근 출간된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 1920~1940〉(송영달 옮김, 책과함께 펴냄)은 조선에 따뜻한 시선을 보냈던 영국인 두 자매가 1919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에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을 담은 책이다. 화가인 언니 엘리자베스 키스(1897~1956)가 그림을 그리고 동생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은 글을 썼다.

그들이 조선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9년 3·1운동 직후였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책 서문을 통해 첫 방문 당시 조선의 모습을 회상했다. 역사적인 3·1운동의 첫 인상은 두 자매를 조선에 푹 빠져들게 했다.

"한국은 깊은 비극에 휩싸여 있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한국의 애국자들이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도 고초를 겪고 있었다. 그들은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그저 줄지어 행진하면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쳤을 뿐인데도 그런 심한 고통과 구속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진 1〉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의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 1920~1940>(송영달 옮김, 책과함께 펴냄)

***일제 강점기 때 보통 사람들을 만나다**

그 뒤로 두 자매는 많은 조선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지역들을 돌면서 100여 점이 넘는 목판화와 글을 남겼다. 그들의 시선은 수도 서울에만 머물지 않았다. 평양·함흥·원산 등을 여행하며 왕실의 공주·정치인뿐 아니라 길에서 할아버지·아이들·여인들까지 폭 넓은 사람들을 만나 그림을 그리고 따뜻한 설명을 덧붙였다.

"필동이는 내가 그린 다른 한국 사람들과는 달리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가 무슨 조그마한 일이라도 해 달라면 크게 소리 지르며 불평을 하고, 모든 일이 자기가 할 일이 아니란 듯한 표정으로 불평해 대기 일쑤였다. 주로 낮에도 그늘에 앉아 긴 담뱃대를 물고 먼 산을 쳐다보고 있었고, 모든 일이 자신의 신사 체면에 어울리지 않지만 그저 한번 해 준다는 식이었다. 이런저런 단점이 있기는 하여도 필동이는 정직하고, 충성심이 많고, 믿어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더욱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각 장의 앞에 실린 스콧의 글이다. 스콧은 당시 조선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책이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영국 화가의 화보를 넘어 일제 강점기 때 이 땅의 생활사를 보여주는 역사책으로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당은 주인공 여자에게 콧소리로 중얼중얼 말을 했다. 그 키 작은 환자는 고개를 숙이고 비슷한 콧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질문과 대답이 한참 계속되더니 환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역력해졌다. 하지만 여주인공은 어머니 같은 무당의 말을 꼭 믿는 듯 보였다.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점점 솟구치더니 마침내 뺨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환자는 거친 손바닥을 마주 비벼대며 계속하여 공수에 응답했다. 이윽고 무당은 주문 외우는 것을 끝냈고 징 소리도 멈추었다. 창백한 얼굴의 사람만이 둥둥둥 혼자 북을 치고 있었다. 마법에 빠진 파리는 여전히 그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사진 2>

***조선 '여성의 힘'과 '땅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들은 특히 조선 여성들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모든 고통을 인내하며 살 것을 사회로부터 요구받아 왔던 조선의 여인들을 보며 그들은 "그 아름다운 한복 속에 그렇게 많은 고통이 숨겨져 있었다니, 정말 믿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키스가 그린 것은 단순히 조선의 가부장제에 대한 낯선 시각이 아니었다. 3·1운동으로 남편을 잃고 아들도 감옥에 갇힌 데다 자신도 고문으로 인해 고통을 받은 한 과부의 그림은 그 뒤로 한 세기 가까이 이 땅의 어머니가 감내해야 할 몫이 됐다.

〈사진 3〉+<사진 4>

그들이 또 사랑했던 것은 조선의 땅이었다. 자신의 고국과 너무나 다른 산과 들, 그리고 하늘은 발길이 닫는 곳곳에서 두 자매를 감동시켰다.

"한국의 풍경은 마치 조바위를 쓰고 서 있는 한국 여인의 차분한 얼굴처럼 평안하고 조용해 보였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그 풍경의 아름다움은 한국 문화의 유서 깊은 전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성루의 야산이나 대동강 변을 걸어보면 시간을 초월한 황홀경을 느끼게 된다. 이 감각적인 즐거움은 고국의 풍경, 가령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전원을 산책할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사진 5> 원산.

키스는 특히 원산을 사랑했다. 그녀는 원산에 대해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고 썼다.

***일제에 대한 강한 분노…조선인에 대한 경외감**

두 자매의 시각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은 그들이 결코 자신들의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시각이 아닌 조선의 눈으로 그들은 이 땅 곳곳을 기록한다.

이 때문일까? 이 책 곳곳에는 당시 조선을 지배했던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드러난다. 그들은 일본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식민 지배에 대해 분노했다. 3·1 운동 후 감옥에 갇힌 여학생을 만난 경험을 스콧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학교에서 루스라고 불리는 이 여학생은 반질거리는 까만 머리를 등 뒤로 땋아 내렸다. 기품이 고고한 얼굴이었고, 치아는 하얗고 뺨을 불그스레했으며 새까만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슬픈 표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환희에 넘친 표정이었다. 여학생은 왜 자기가 학교의 명령을 어기고 독립운동에 참가했는지 또 어떻게 체포되었는지 말했다. (…) 동정을 구하는 표정이라기보다는 승리한 자의 모습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콧은 우연히 길에서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는 독립운동가에게 경외감을 표하기도 했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흑갈색의 옷에다 조개모양의 삐죽한 짚으로 된 모자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은 초라해 보였다."

두 영국인 자매들의 그림과 글 속에서 우리의 옛 모습을 찾아보는 일은 키스의 그림만큼이나 단아하면서도 매력적이다. 키스가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코리아"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 시절 그 모습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마지막으로, 역자의 노고는 짚고 넘어갈 만하다. 이 책은 역자 송영달 씨(69)의 노력이 없었다면 나오기 힘들었다.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송 씨는 조선을 사랑했던 키스의 그림을 접한 후 그의 작품의 열렬한 수집가가 됐다.

그는 1946년 영국 허치슨 출판사에서 펴낸 를 발굴해내 번역을 한 뒤 자신이 소장한 키스의 작품까지 더해 이 책을 번역·출간한 것이다. 이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한 한 노학자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원서에 실린 키스의 수채화 36점뿐만 아니라 키스의 작품이 더 포함된, 우리의 과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새로운 책을 한 권 새로이 갖게 된 것이다.

〈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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