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는 자리. 각종 루머와 뒷거래가 난무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에는 이집트를 응원하기 위해 배우 오마 샤리프가 등장했다. 독특한 캐릭터의 가다피도 리비아와 튀니지의 공동주최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모로코도 월드컵 개최에 진력했다. 아프리카의 월드컵 개최능력을 의심하는 FIFA의 비위를 맞추려고 전 스페인 수상까지 동원했다. 물론 모로코가 유럽과 심리적 거리가 가장 가깝다는 점까지 내세웠다.
'희망'을 위해 월드컵을 남아공으로 가져온 만델라
하지만 모로코의 꼼수는 만델라의 정공법을 당할 수 없었다.
"나는 1976년 남아공을 회원국에서 (인종차별 문제로) 축출했던 FIFA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 이 결정은 우리가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됐다."
남아공의 정치, 사회적 의미를 부각하면서 FIFA를 추켜세우는 절묘한 한 마디였다. '세상에서 가장 거만하고 부정직한 스포츠 외교관들'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FIFA의 높은 분들은 남아공에 표를 던져야 했다.
▲ 지난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만델라 재단에서 피파월드컵 트로피를 만지며 미소짓고 있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뉴시스 |
하지만 만델라가 남아공으로 가져온 월드컵은 걱정투성이였다. 남아공 하면 무장강도가 연상될 만큼 열악한 치안 문제, 굼벵이처럼 느려터진 경기장 건설, 월드컵 이권사업과 관련된 부패. 여기에다 기존의 흑백갈등뿐 아니라 흑흑갈등까지 생겨났다. 특히 짐바브웨 등에서 건너온 흑인 노동자들을 향해 남아공 흑인들의 폭력과 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그러나 월드컵과 관련해 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아공의 16강 진출 여부였다. 단순히 개최국은 적어도 16강 이상 간다는 월드컵 불변의 법칙 때문만은 아니었다. 희망과 자신감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아공 사람들의 가슴에 남기기 위해서다.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개최국에 줄 수 있는 최대 유산이다. 국가 이미지 제고나 부수적 경제효과 이상으로 위력적이고 지속성이 있다.
그런데 이 개최국 효과는 16강에 못 가면 '꽝'이다. 월드컵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2002년 월드컵. 한국이 포르투갈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가 펼쳐지기 전날 밤, 이용수 당시 기술위원장과 박항서 코치가 잠을 못 이루며 줄담배를 피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만약 공동개최국 일본이 16강에 올랐는데 한국은 탈락했다면 한국축구는 아마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파헤이라의 마지막 도전, '오일 달러 감독'에서 '남아공의 히딩크'로
만델라의 월드컵은 11일부터 공식적으로 파헤이라의 월드컵으로 넘어간다. 파헤이라는 1994년 브라질을 월드컵 정상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이번 남아공까지 합하면 무려 다섯 나라의 국가대표 감독으로 월드컵을 밟게 되는 '백전노장'이다.
그는 내심 '남아공 히딩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히딩크가 그랬듯, 그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 70년 월드컵 때 브라질의 체력담당관을 역임했던 파헤이라다운 선택이다. 특히 팀 전체가 같이 하는 수비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히딩크와 한국처럼 선수들이 같이 모여 연습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았다는 점. 아무리 유능한 감독이라도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짧은 시간에 바꾸는 마술을 부리기는 쉽지 않다. 남아공은 북한을 제외하면 이번 월드컵 참가국 가운데 FIFA 랭킹이 가장 낮다.
사람들은 한때 그를 '오일 달러'를 쫓는 비열한 용병감독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휘봉을 잡아서다. 그는 같은 브라질 출신 자갈로 감독과 함께 유연한 중동 선수들에게 브라질 스타일의 축구를 접목해 아시아 축구의 판도를 바꿔 놓은 주인공이다.
그는 중동축구와 자주 만나야 했던 한국으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감독이었다. 실제로 파헤이라가 이끄는 쿠웨이트는 한국의 82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가로막았다. 북한을 꺾고 천신만고 끝에 오른 80년 아시안컵 결승에서도 한국은 파헤이라의 벽을 넘지 못했었다.
개최국은 단 한 번도 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져 본 역사가 없다. 11일 남아공의 상대는 멕시코다. 만만치 않은 적수다. 그는 남아공을 위해 희망의 무지개를 만들 수 있을까? 이번 월드컵은 그에게 있어 가장 의미 있는 마지막 월드컵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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