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26일 오후 동백림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사건 당사자와 유족들은 "때늦은 발표"라면서도 각자 나름대로 심경을 피력했다.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의 부인 박인경(82) 여사는 이날 국정원 진실위의 발표 내용에 대해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파리 서쪽 교외에 살고 있는 박 여사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과거사 규명과 관련해 "진작 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음도 많이 상했고 일도 진행 안 됐다. 고암 선생이 오해도 풀지 못하고 이국에서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여사는 "과거사 규명 작업을 하는 진실위에서 여러 번 전화가 왔었다"며 "수고들 하셨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북사실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고백했던 임석진(74) 씨는 "지금이라도 간첩누명을 벗겨준 데 대해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40년 가까이 된 일을 새삼 들춰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씨는 "당시 박 전 대통령과 단독 면담하면서 두 차례 방북 사실과 유학생들의 상황을 고백한 것은 나처럼 북한문제에 관여했다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국가 차원에서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눈에 띄는 제재는 없었지만 내 행동을 예의주시하는 시선 속에서 평생 조심스럽게 살 수밖에 없었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 사회에서 참 손해를 많이 보고 산 것 같다"고 회고했다.
임 씨는 또 "북한과 약속을 어기고 몰래 귀국한 뒤 밤길도 무섭고 가족에 대한 걱정도 컸다. 항상 북한의 보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았는데 최근에서야 저들이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고 덧붙였다.
그는 "연루자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약간의 손찌검은 있었겠지만 고문이 자행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며 "독일과 외교문제도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이 잘 처리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확언했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독일의 철학서적을 완역하고 내 삶에 대한 글도 남기고 싶다"고 앞날의 계획을 밝혔다.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 동백림사건 핵심으로 지목돼 '간첩'으로 몰렸던 고(故) 황성모(1926∼1992) 교수의 아들 황문기(41) 씨는 "진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늦게나마 밝혀준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씨는 "그동안 특별히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한 것은 없었지만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오해 아닌 오해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라며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완전히 복권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황 씨는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향후 함께 할 일이 있으면 참여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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