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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을 죽음으로 모는 정부의 '독선'과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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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농민을 죽음으로 모는 정부의 '독선'과 '오만'"

[기고] 실타래처럼 얽힌 농업 난제, 어떻게 풀 것인가

최근 농민들은 쌀 재협상안의 국회 비준을 반대하면서 전국에서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얼마 전 젊은 농민이 자결한 데 이어 지난 11월 17일에는 경북 성주의 한 여성 농업인이 농약을 마신 후 끝내 숨졌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목숨을 건 단식을 21일이나 지속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정부의 '독선'과 '오만'이 농민 저항 불러**

그 근본 원인은 정부의 독선과 정직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지난 9월 12일 주요 일간지에 쌀 협상안이 비준되지 않으면 2006년부터 무조건 쌀 시장은 관세화에 의하여 개방될 수밖에 없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국민을 기만했다.

비준이 안 될 경우 무조건 내년부터 관세화에 의해 개방된다는 명시적 조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어디에도 없다. 또 협상 시한 규정을 법적 의무의 발생 조항으로 지레 해석할 이유도 없다. 지난해 쌀 재협상이 한창 진행될 때도 정부는 2004년 12월 31일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관세화 개방 의무가 발생한다고 겁을 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인도가 2005년 1월 WTO에 공식적으로 한국의 양허표 유보를 통지해 정부의 주장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정부는 그 후 지난 3월 30일 매년 9121t의 쌀을 사주기로 하고 인도와 협상을 타결했다.

따라서 현재 쌀 재협상안이 비준되지 않으면 무조건 관세화에 의해 개방된다는 법리적 해석은 지극히 소극적이고 수세적이며 일방적이다. 설사 다수의 법리적 해석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그렇지 않은 법리적 해석을 소중히 여겨 필요할 경우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비준되지 않으면 쌀 시장은 개방되고 만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회를 압박하고 국민과 농민을 기만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비준이 안 되었을 경우 그러한 주장은 자승자박이 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는 매우 비전략적인 주장이다.

설령 비준이 안 될 경우 관세화로 개방되는 것이 맞다 하더라도 정부는 제소될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주도면밀하게 협상 전략과 비준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다른 나라가 WTO에 제소한다면 우리는 분쟁 해결 절차(WTO/DSB)의 필요적 전심 절차인 '협의' 절차나 자발적 전심 절차인 '주선·조정·중재' 절차를 이용하여 타협안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

본 절차인 패널과 항소심 절차에서 협상 미타결의 책임이 협상국들의 요구가 적절치 못함에 있다고 부각시키거나 도하 개발 아젠다(DDA) 협상의 지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분쟁 해결 절차가 보통 1~2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DDA 협상 결과를 보아 가면서 쌀 시장 개방문제를 다시 한번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에라도 정직한 정부라면 협상 과정과 결과에 대해 잘한 것은 무엇이고 잘못한 것은 무엇이며, 그 파급 효과는 어떻게 됨을 밝히고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다. 비준이 안 되면 무조건 개방된다는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방적인 주장만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 책임진다는 겸허한 자세로 사안에 접근하기 바란다. 그래야만 쌀 비준 문제는 물론 올바른 대책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고 농민들의 처절한 외침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이다.

***수매제도 폐기에 따른 소득 불안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농민들의 저항은 쌀 비준안의 상임위 통과와 함께 최근 쌀 가격 폭락 사태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정부는 연일 많은 대책을 내어 놓고 있으나 이미 찢길 대로 찢긴 '농심'을 달래기는 역부족인 것 같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미 터져버린 둑을 호미로 막으려 하니 노력은 노력대로 들고 돈은 돈대로 들어가도 되질 않는다. 공공 비축 물량 300만 석 외에 200만 석을 더 흡수하느니, 공매를 하지 않느니, 농협 매입 물량을 늘리느니, 목표 가격 17만 원을 설정하였느니 법석을 떨어도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쌀 비준안 문제까지 겹쳐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다.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농민, 농민과 국회, 국회와 정부, 국민과 농민 간의 갈등을 정부가 부추기고 있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것은 쌀 비준과 관련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추곡수매제도의 기능과 파급 효과를 간과한 데에 기인한다. 사실 수매제도는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이후 매년 750억 원의 수매자금을 감축해 오고 있어서 10년 전 2조5000억 원이던 것이 최근에는 1조5000억 원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따라서 수매제도에 의한 매입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마냥 지속될 수 있는 제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수매제도를 없애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성급했다. 전문가들은 수확기 가격 폭락과 정부의 소득 보전 직불금이 급격히 늘어 날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누차 지적했다. 수매제도를 폐기하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민간 유통 조직의 경쟁력 강화와 육성 지원, 마케팅 전략의 보급, 수요정책, 생산정책 등 급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여러 차례 언급됐다.

하지만 정부는 일부 관변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해 쌀 수매제도가 더 이상 쌀 농가 소득지지에 도움이 안 된다는 성급하고도 무지한 판단으로 결국 쌀 수매제도를 용감하게(?) 중단하고 공공 비축제 및 쌀 소득 보전제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쌀 시장과 유통구조 그리고 농민의 정서와 생산과 판매 행위 등에 대한 종합적인 현실 인식이 지나치게 협소하고 부족한 데에서 기인한 잘못된 정책이다.

가장 잘못된 인식은 수매제도에 쌀 농가의 소득지지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잘못된 인식의 결과는 지금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로 가격 폭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수매제도만 있었다면 이러한 가격의 폭락은 없었을 것이다. 과거 수매제도가 있을 때는 수매 물량 이외의 물량, 즉 농협이나 민간 유통주체들이 쌀을 매입할 때의 쌀 가격에 이 제도가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농민의 입장에서 수매제도는 소득을 지지해 주는 중요한 제도였던 것이다.

따라서 수급 상에 문제가 없고, 재고도 700만 석 정도로 적정 수준임에도 지금 쌀 가격이 20% 가까이 떨어지는 것은 거의 수매제도의 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쌀 시장의 개방 확대에 대한 우려 등도 쌀 시장 불안의 한 요인이겠으나 근본적인 요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무엇인가**

아무튼 현 상황에서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쌀 산업의 비전과 목표, 즉 농지 보전 목표, 식량 자급 수준의 설정, 쌀 품질 경쟁력 제고, 유통 인프라 구축, 농협 및 민간유통기구의 활성화, 통일 대비 양정 등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민의 입장에서 시급한 것은 가격이 떨어졌을 때 개별농가의 소득이 어떻게 보전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쌀 소득 보전제만으로는 미흡하다. '전국 평균 목표 가격과 시가'의 설정으로는 개별 농가 입장에서는 전혀 소득이 제대로 보전된다고 느낄 수 없다. 시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은 물론 쌀 시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 모두에서 쌀 소득 보전제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모든 쌀 농가의 개인별 신상은 물론 경영실태를 파악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해야 한다. 쌀 경지면적, 임차면적, 생산구조, 품종, 판매실태, 겸업실태, 부채실태, 소득실태, 생산비 내역 등 생산과 수확 후 관리 실태, 경영 실적 등을 전수 조사하여 쌀 농가별 경영수지를 파악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개별 농가별로 소득 안정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당장 시행하기 어렵다면 농민들과 정부, 국회가 합의하여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개별 농가 수준에서 쌀 농사를 지었을 경우 소득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게 되면 농가도 이에 맞추어 경영 목표나 비전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별농가의 소득이 일정수준에서 안정화될 수 있다면 농민들은 쌀 가격이 시장에서 얼마로 결정되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음으로 농협이나 민간유통주체에게 쌀을 맡겨 판매한 후에 결제하도록 하는 '수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되면 유통주체들도 경영압박을 덜 받게 돼 쌀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더욱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은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 식량안보, 식량 주권 등의 절대적 가치를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인식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어설픈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로 농업·농촌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원천적인 대안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데서부터 농업·농촌·농민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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