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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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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8> 몸과 마음의 관계 2

***욕구는 우선 몸이 바라는 바이다**

마음이 몸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이다. 우리 마음은 무엇인가를 바라다가 중지하고 또 바라다가 중지하기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우리 몸은 그러한 바람=욕구에 따라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때 마음이 바라는 것은 실은 대개는 몸이 바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몸이 욕구한다는 것을 모르고 마음만 탓하는 게 마음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인간의 몸이 이 지구라는 자연 속에서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한 결과 탄생한 것이라면, 우리의 욕구라는 것도 실은 몸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을 잘 되짚어 보면 우리 마음에서 일었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이는 욕구의 실체를 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먹을 때가 되면 배가 고파진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무엇을 먹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대개가 바로 전에 먹은 음식은 피하고 다른 것을 먹으려고 한다. 점심에는 자장면을 먹었으니까, 저녁에는 면 종류 말고 밥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음식을 계속 먹으면 물리는데, 이것은 우리 몸이 알아서 자신에게 필요한 음식을 찾기 때문이다. 가난할 때에야 삼시 세 때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지만, 조금 살 만해지게 되면 음식을 바꾸어 가면서 먹게 된다. 때가 되어도 먹지 않으면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어서 먹으라고 몸이 성화를 부린다. 그래도 먹지 않으면 기운이 빠진다. 몸에서 당이 부족해져 힘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생명체는 먹어야 산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야 이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예전에는 배고픈 설움보다 더한 설움은 없다고 했다. 생명체는 자기 몸에 필요한 물질을 흡수하지 못하면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인간처럼 복잡한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동물의 세계에서 생존경쟁이란 대개가 먹을것을 두고 벌어지게 마련이다. 전에 전신비만 중의 하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지 모르는 사람에게 온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몸이 틀어지고 신경이 막혀 몸이 배부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먹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은 먹은 것을 가지고 직접 이용하기도 하지만, 다시 분해하고 합성해서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서 쓰기도 한다. 인슐린은 우리 몸이 만들어 내는 물질인데, 신경이 약해져 인 물질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당뇨병에 걸린다. 이렇게 만들어 내고도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는 미래를 위해 비축해 두기도 하고 밖으로 버리기도 한다. 몸으로 흡수하지 않은 것은 변으로 만들어서 버리고, 몸으로 흡수한 것 중에서 불필요한 것은 오줌으로 만들어서 버린다. 이러한 행위도 인간의 욕구를 통해서 몸으로 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욕구를 배설의 욕구라고 한다.

이때 밖으로 버리지 못하면 탈이 난다. 똥 누러 갈 때 마음하고 밑 닦고 나올 때 마음하고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배설은 이렇게 마음이 바뀔 만큼 중요한 것이다. 몸에 흡수한 물질을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일은 신장이 담당을 하는데, 신장이 밑으로 처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불순물이 쌓이면서 몸에서 기운이 떨어진다. 인간은 배설을 하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異性)에 눈을 뜨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은 이성에 대한 사랑을 놓고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이나 심정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누군가 이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본인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겠지만, 이것 역시 생명체의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 진화의 어떤 단계에서 암(陰)과 수(陽)가 갈려 둘이 결합을 하지 않으면 후대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다. 남녀 간의 사랑에는 가슴 찢어지는 애절한 사연도 많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은 황홀한 경험도 많이 있겠지만, 이 모두가 반갑든 반갑지 않든 자연이 인간에게 준 선물인 셈이다.

새끼를 낳으면 자기 새끼가 그렇게도 예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예쁘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자기 새끼를 예뻐하는 것은 아니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까고 죽지만, 그래서 새끼를 예뻐할 시간도 없겠지만, 어류의 단계까지는 최대한 부화할 때까지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 세상에 나온 새끼를 예뻐하지 않는다. 진화의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새끼를 기르기 시작하는 것은 척추동물 중에서도 파충류의 단계를 넘어 조류와 포유류에 이르러서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기의 새끼가 성인이 돼서 독립할 때까지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돌보게 된다. 새끼를 돌보면서 새끼를 예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자연이 준 일종의 본능인 셈이다.

조류나 포유류는 자기가 낳은 새끼를 기른다. 새는 낳은 알을 정성껏 품고 부화를 시킨다. 부화된 새끼를 열심히 먹여서 키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법을 가르친다. 날을 수 있게 되면 새는 드디어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부터 가족관계는 끊어진다. 여기에도 분명히 먹이고 가르치는 부양과 교육의 사회생활이 존재하는데, 이것 역시 자연이 그렇게 하게 한 것일 뿐이다.

포유류는 배 속에 새끼를 가지고 있다가 세상에 나오면 젖을 먹여서 키운다. 젖을 떼게 되면 육식동물은 사냥을 해서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고기를 먹여서 키우고, 초식동물은 어미를 따라다니게 하고 함께 풀을 먹으면서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해 준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면 각 종의 사회형태에 따라 같이 살거나 독립하거나 한다.

***사회적 욕구도 진화의 산물이다**

후대를 낳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르기까지 하면서 가족이 생기고 초보적인 '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같은 종끼리 일정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후대를 기른다는 것은, 특히 교육한다는 것은 원래 본능적으로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르치지 않으면 새끼 새는 날지 못한다. 원숭이는 4년을 가르쳐야 독립적인 개체가 되고, 사람은 성인이 되려면 사회에서 18년은 배워야 한다. 진화의 과정, 바로 자연이 사회를 형성하게 한 것이다.

개는 누군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거나, 침범하지는 않고 주변에 나타나기만 해도 짖어 댄다. 자기의 영역이라는 것이 실은 자기 주인의 영역이다. 어쨌든 짖어 대는 것은 자기 영역에서 나가라는 것이다. 나가지 않으면 혼이 날 것이니, 좋게 말할 때 나가라는 것이다. 개에게 누군가가 자기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일종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개가 야생동물일 때에는 그 가족의 영역이 있었다. 그 영역에는 먹이가 되는 동물이 살고 있었다. 그 영역을 빼앗기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자기 영역을 지켜야 한다. 그러한 본능이 가축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서 주인의 영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알고 짖어 대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자기 영역이라는 것이 있어 왔다. 물론 가장 작게는 가족과 집이 자기의 영역이겠지만, 크게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그 영토가 자기의 영역이다. 공동체의 영역은 역사가 진행돼 오면서 크게 바뀌어 왔다. 씨족사회일 때에는 씨족과 그 영토가, 부족사회일 때에는 부족과 그 영토가, 마찬가지로 민족국가 시대에는 민족과 그 영토가 영역이다. 사람도 개와 마찬가지로 자기 영역, 특히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침범을 당하면 함께 죽든지 노예가 되든지 하였다. 남의 영역을 침범해서 약탈을 하는 경험도 하면서 살아왔다. 아직까지는 안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경험 때문이다. 나와 내 공동체가 죽지 않고 번영하려고 하는 생명체의 속성인 것이다.

2002월드컵 때 우리 대한민국은 4강신화를 이루었다. 그때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좋아서 밤새도록 거리를 누비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버스 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휘두르고 발을 구르면서 좋아했다. 맥주잔이 깨지라고 부딪치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좋아한 것은 일본 강점에서 벗어난 1945년 8․15광복을 제외하면 없었던 것 같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승리를 하면서 공동체의 한 성원인 나까지도 공동체와 함께 승리한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권력욕을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자. 사회를 형성했는데, 나서서 사회를 통솔하려는 욕구가 없는 개체만 있는 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누구도 지도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종은 뿔뿔이 흩어져서 개별적으로만 행동할 것이다. 그러면 그 사회는 사회로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사회를 형성한 것은 사회를 형성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 이유라는 것은 그 종이 살아남는 데 사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가 무너져 버리면, 그 종 역시 멸종하고 말 것이다. 권력욕 역시 사회를 형성한 종이 사회를 유지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체가 최고권력을 향해서 질주하기만 한다면 그 종은 매일 싸움만 벌이다가 멸종하고 말 것이다. 진화의 과정은 이러한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었다. 한번 권력의 질서가 형성되고 나면 권력을 두고 싸웠던 개체들도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 몸에 체질화되게 한 것이다. 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힘이 미치지 못하는 개체는 아예 권력을 둘러싼 투쟁에는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냥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영장류로 진화하면서부터 권력투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숭이들은 권모술수를 부리고 합종연횡을 하면서 권력투쟁을 한다. 영장류로서 진화한 인간도 마찬가지로 권력투쟁을 해 왔다.

이렇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도 기본적으로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쌓인 것이다.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 고안해 낸 기제일 분이다. 우리의 마음이 복잡한 것 같아도 기본적인 욕구라는 것은 몸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욕구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욕을 넘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욕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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