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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닭이 '독감'에 걸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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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닭이 '독감'에 걸렸다고?"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42> 조류 독감 이야기

올해도 어김없이 동네 병원 앞에는 독감 예방주사를 놓아준다는 작은 팻말이 내걸렸습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독감이 유행하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아두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요, 올해는 동남아에 몰아친 조류독감과 조류독감이 사람에게까지 전염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독감백신 공급이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조류 독감이 뭐길래 이토록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까요?

***조류독감, 어떤 병인가요?**

조류 독감이란 닭, 오리, 기러기 등의 조류에게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조류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 (Avian influenza virus type A)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합니다. 조류독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이 걸리는 이 바이러스의 구조는 사람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독감 바이러스와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지요.

조류 독감에 걸린 닭과 오리는 기관지와 폐 등 호흡기에 염증이 생기기면서 설사를 하고, 벼슬과 다리 부분이 푸르게 변하는 등의 가벼운 증상에서부터 심해지면 암탉은 알을 낳지 못하게 되고 비실거리다가 죽게 됩니다.

사람의 독감이 공기 중으로 전파되어 전염 속도가 빠르듯이, 조류 독감 역시 조류 사이에서는 전염 속도가 매우 빠르고 그 결과가 사람에서보다 훨씬 치명적으로 나타납니다. 요즘처럼 닭들을 한꺼번에 좁은 우리에서 대량으로 기르는 경우에는 닭들 사이에 한 번 조류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양계장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따라서 조류독감은 한번 발생하면 더이상 인근으로 퍼지기 전에 대대적인 방역과 살처분(모두 죽여서 없애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끔찍한 조류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타입 중에서 오소믹소 바이러스(Orthomyxovirus)에 속하는 종류랍니다. 여기서 'myxo'라는 단어는 끈적끈적한 점액(mucos)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겨울이 되면 공기가 건조해져서 자주 기침이 나고 목이 칼칼해지죠? 그래서 겨울이 되면 가습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물론 사람은 개구리같은 양서류가 아니기 때문에 건조한 공기에서도 호흡이 가능하지만, 좀 더 호흡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코, 입, 기관지, 폐 등의 호흡기는 늘 점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어야 합니다. 이 오소믹소바이러스 종류들은 이렇게 점액질로 덮인 축축한 호흡기에 주로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이 오소믹소 바이러스들은 크기가 80~120nm 정도에 유전 물질인 RNA와 이를 둘러싼 뉴클레오캡시드(nucleocapsid)에 엔벨롭(envelop)이라는 껍데기가 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엔벨롭에는 못처럼 생긴 hemagglutinin (HA)과 neuraminidase (NA)이라는 물질이 촘촘히 박혀 있는데, 이 것들은 숙주 세포의 겉표면에 달라붙어 바이러스를 숙주로 침투시키는 일종의 스파이크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HA와 NA라는 스파이크로 숙주 세포를 콱 찍은 바이러스는 세포 내부로 자신의 유전물질을 집어넣어 숙주 세포를 자기 것으로 만들 준비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이 오소믹소바이러스의 유전물질(genome)은 DNA가 아니라, 한 가닥의 RNA이며, 이런 것들을 RNA 바이러스라고 하지요. (참고로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는 리트로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역시 RNA바이러스랍니다.)

***바이러스의 생활사**

자, 그렇다면 이제 바이러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기로 할까요? 바이러스의 존재는 19세기 말엽에, 담배잎 모자이크병의 연구를 통해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담배잎 모자이크병이란 담배의 이파리가 모자이크 모양으로 군데군데 썩는 병으로 담배 농가의 골칫거리였죠.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렇게 병든 잎의 조직에서 어떠한 병원균도 찾아낼 수 없어서 병을 일으키는 미지의 물질에 바이러스(virus)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는 라틴어로 '독(toxin)'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보통의 광학 현미경으로는 볼 수가 없었거든요. 이렇게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바이러스의 정체는 1935년, 나노미터 단위까지 볼 수 있는 전자현미경이 등장해서야 겨우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답니다.

바이러스는 보통 100nm 전후의 크기를 가지기에, 몇 m의 크기를 갖는 세균에 비해서는 매우 작습니다. 그렇기에 바이러스는 DNA나 RNA로 구성된 유전물질을 단백질 껍데기가 둘러싸고 있는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가집니다. 혼자서는 스스로 증식이나 어떤 생명활동도 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세포 내로 유입되면 그 세포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새끼 바이러스들을 만들어내는 기생체입니다. 따라서 세균이나 세포와는 달리 바이러스는 실험실에서 단독으로 배양할 수가 없습니다. 바이러스를 배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생이 되는 세포를 먼저 키운 뒤, 그 위에 바이러스를 뿌려주어야만 배양이 가능하답니다. 이렇게 단독으로는 생명현상을 영위할 수 없고, 반드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생명체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답니다.

어쨌든 바이러스들은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기생할 숙주 세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이러스에 따라서 기생할 수 있는 숙주 세포가 서로 달라서, 자신에게 꼭 맞는 세포를 만나야만 증식이 가능합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특징없는 단백질 덩어리처럼 보이는 바이러스들이 우연히 기회에 적당한 세포를 만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기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바이러스를 둘러싼 껍데기에는 숙주 세포에 들러붙을 수 있는 일종의 갈고리가 존재한다고 위에서 얘기했지요? 숙주세포를 만난 바이러스는 이 갈고리를 이용하여 숙주 세포에 단단히 들러붙습니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내부에 있던 유전물질(DNA 나 RNA)만이 숙주세포 안으로 침투하게 됩니다. 마치 스파이처럼 말이죠.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간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숙주세포가 원래 가지고 있던 핵산과 단백질 생산 시스템을 교란시켜, 이들이 자신의 DNA와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것을 중지시키고, 대신 바이러스가 가진 DNA(혹은 RNA)를 복제하고 여기서 바이러스에 필요한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조작합니다. 이렇게 하여 숙주 세포 안에 새끼 바이러스들을 잔뜩 만들어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이 새끼 바이러스들이 단백질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하나,둘, 셋!! 하며 배은망덕하게도 자신들을 만들어준 세포를 터뜨리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세포 바깥으로 나온 바이러스들은 이제 다시 단백질 껍데기로 단단히 몸을 감싸고 다른 숙주 세포를 만나서 다시 숫자를 불릴 때까지 생명체가 아닌 척 얌전히 존재합니다.

***바이러스의 빠른 변이**

원래 조류독감바이러스와 사람에게서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비슷한 구조를 가졌긴 하지만 서로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는 바이러스들이었습니다. 이는 바이러스 겉에 붙어 있는 갈고리의 종류가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의 세포와 조류의 세포는 차이가 있고, 각 바이러스는 각각의 세포에 꼭 맞는 갈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세포에는 달라붙을 수가 없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대담하게도 남의 구역을 넘보는 바이러스들이 생겨났다는 보고가 발표되고 있답니다.

지난 1997년 5월 홍콩에서 세살된 남자아기가 독감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기의 폐 속에서 처음으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지요. 처음에 학자들은 조류독감은 인간에게는 절대로 전염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기에 이 결과는 우연이거나 실험상의 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 홍콩 이외에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9월 기준으로 전세계에는 최소한 116명의 사람들이 조류독감에 걸렸고, 이 중 65명은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답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조류독감이 인간에게 전염되는 걸까요? 어떻게 조류독감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에 달라붙는 갈고리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아직 추측일 따름이지만, 학자들은 이 배후에 돼지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닭은 조류독감만, 사람은 독감에만 걸리지만, 돼지는 특이하게도 조류독감과 독감에 모두 걸릴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돼지가 아주 우연히도 조류독감과 독감을 동시에 앓게 되면, 돼지의 몸 속에 있던 이 두 바이러스가 서로 영향을 미쳐 둘이 섞인 변종 독감바이러스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많은 학자들이 인간에게 전염되는 조류독감바이러스는 이렇게 돼지의 몸 속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변종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다시 닭이나 오리에게로 전염되고, 이들을 만진 사람에게로 전염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918년의 되풀이를 경계하며**

예전 칼럼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에 전세계에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던 독감이 유행하여 최소 2000만 명, 최대 1억 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를 낸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독감으로 죽은 환자의 폐조직 샘플을 분석한 결과, 과학자들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조류에게서 유래되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익숙한 적에 대해서는 빨리 파악해서 대응하지만, 낯선 적에 대해서는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려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독감에 자주 걸리지만 며칠 앓고 나면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에 또다시 고생을 좀 하기도 하구요. 이렇듯 독감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자주 일어나 매년 조금씩 다른 모양의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바람에 여러 번 걸릴 수는 있지만, 그래도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 몸의 면역계는 이에 금방 적응해 며칠 앓고 나면 낫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조류독감은 다릅니다. 인간은 이제껏 조류독감을 앓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면역계가 조류독감에 대항해 항체를 제대로 만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자꾸 퍼져 나가는데 항체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종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공기를 타고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퍼져나간다면?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올해도 역시 동남아시아 쪽에서는 조류독감이 발생했고, 사람에게도 전염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조류독감이 예전처럼 닭과 오리에게만 피해를 좀 주고 소리없이 사라질지, 아니면 전세계를 휩쓸 제 2의 스페인 독감이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이러스와 인간과의 전면전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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