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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한국지성에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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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한국지성에 무엇을 남겼나?

전상인-김동춘 교수, '5월 지식권력' '사회과학의 빈사' 토론

"우리나라 지성사에 하나의 '디딤돌'이었던 1980년 광주가 언제부턴가 일종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지성이 광주를 망각하거나 5ㆍ18과 결별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문은 광주의 봄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더 이상 키가 자라기 어렵다." (전상인)

"교육부, 학술진흥재단의 연구지원비를 받아 학술지에 세련된 논문 하나 올리는 일이 실천적이고 도전적 에세이성 논문 한 편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해진 지금의 학계 풍경을 바라보면 차라리 '무식해서 용감한' 20~30대 아마추어 학자들이 대단한 이론가 행세를 하면서 '철없는' 학생들의 밤잠을 빼앗던 1980년대가 그립다." (김동춘)

1980년대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뒤늦은 '혁명의 시대'이자 '사회과학의 시대'였던 그 시대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1980년대를 학생, 연구자로 보낸 뒤 현재 우리나라 사회과학의 보수와 진보를 각각 대변하는 위치에 선 사회학자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1980년대를 기억하는 나름의 방식'을 털어놓았다.

***"1980년대에 형성된 '5월 지식권력'이 지성의 총체적 위기 초래"**

뉴라이트 지식인을 대표하는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서울대학교 통일포럼 주최로 7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1세기에서 바라본 80년대 사회과학 논쟁'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1980년대 한국사회와 5월 지식권력'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전상인 교수는 1980년대를 '5월 지식권력'의 형성기로 기억했다. 전 교수는 "1980년 봄 광주민주화운동은 정치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학문과 지식의 영역에서도 역사적 분수령이었다"며 "이를 계기로 1980년대 전반에 사회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좌파적 시각과 민중적 지향이 양적으로 폭발하고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5월 지식권력'에 대한 전상인 교수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전 교수는 "5월 지식권력이 한국의 학문세계에 던진 자극과 충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그것이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미친 긍정적 효과도 마땅히 인정돼야 한다"며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학문세계와 현실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지성의 총체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진보'와 '비판'을 키워드로 내세운 '5월 지식권력'은 "현실분석보다는 넓은 의미의 가치관에 대한 논쟁"에 머물러 다분히 관념적이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1980년대를 지나면서 일종의 '민족 지상주의'로 심화된 자주ㆍ반미를 지향하는 한국현대사 연구가 그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1980년 광주는 이제 지성에 '걸림돌'이 됐다"**

이런 '5월 지식권력'은 시대가 변하자마자 오랫동안 방황과 침체의 길을 걸었다고 전 교수는 말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가 결정타를 날렸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5월 지식권력은 학문적인 차원에서 성공했을 개연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며 "그것은 처음부터 학문적 열정이나 순수성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운동지식'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이어 "(오히려) 5월 지식권력은 학문이 아닌 정치의 세계에서 성공했다"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5월 지식권력이 주도하고 준비한 '긴 80년대'의 정치적 결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에는 △1987년 이후 우리 사회에 기계적 민주주의와 평등주의 에토스가 일종의 성역이 된 점 △시민운동의 성장 △정보화를 계기로 지식 생산양식에 일대 변화가 온 점 등도 이런 변화를 도왔다"고 덧붙였다.

5월 지식권력은 이런 현실 권력을 배경으로 '지식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게 전 교수의 시각이다. 전 교수는 "구시대 지식권력의 '장기집권'을 감안한다면 5월 지식권력의 출현과 득세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며 "하지만 이 5월 지식권력은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무엇보다 5월 지식권력이 갖고 있는 '낙후성'과 '폐쇄성'을 지적하고 싶다"며 "이들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뒤늦게나마 사회갈등의 복수성과 다차원성을 인정하고 나섰지만, 마르크스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재래식 무기'나 민족주의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5월 지식권력이 초래한 '반(反)지성주의' 역시 커다란 난제"라며 "지식 생산양식의 대중화 및 지식 지배구조의 민주화에 편승한 지적 포퓰리즘이 학문적 다양성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 교수는 결론적으로 '5월 지식권력'을 잉태한 '1980년 광주' 자체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1980년대에 태동한 '우리의 사회과학'은 이미 다 정해놓은 입장을 계속 반복하는 지겨움 속에서 (오히려) 잊혀지고 말았다"며 "이런 사회과학은 지성을 투쟁의 도구로만 여기는 반지성주의의 산물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하나의 '디딤돌'이었던 1980년 광주가 언제부턴가 일종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표 상실한 한국 사회과학, 현실에 매개되지 않는 보편이론은 공허"**

이날 전 교수에 이어 발제한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사회학)는 전 교수와 부분적으로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그 방향은 전혀 달랐다. 김동춘 교수는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 사회성격 논쟁'에서 좌ㆍ우파를 막론하고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사회과학의 현실을 직시해보려는 노력을 보였다.

사회과학의 총체적 위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1980년 광주'라는 내재적 경험에서 시작한 1980년대 사회과학이 정작 '자기가 발 딛고 선 자리'를 외면해 온 역설적인 상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과학의 가장 큰 병폐는 '주체 위치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며 "사회과학 이론이 궁극적으로는 보편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 매개되지 않는 보편이론은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한계는 좌우를 막론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과학의 경우에는 기업문화, 노사관계와 같은 한국사회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미국의 월가 혹은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시장주의적 접근과 처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그리고 좌파 진영의 사회과학자들도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좌파 사회과학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악의 원천으로 간주하면서 비판하는 데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현상이 국가에 따라 상이하다는 점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과학에서는 한국사회의 준거를 제3세계에 두는 것인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두는 것인지, 동아시아 국가의 일반성 위에 두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며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좌표를 상실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사회과학은 이론적·실천적 빈사상태…우파 사회과학도 예외 아냐"**

이런 사회과학의 모습은 현실과 무관하게 마르크스주의 경제결정론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1980년대의 모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역설적으로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1980년대보다 어떤 점에서 훨씬 더 경제가 사회를 지배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전통적인 계급분화는 아니지만 경제양극화가 더욱 두드러지는 사회로 변했지만 한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경제분석이 거의 실종되고 말았다"며 "(좌파진영 사회과학자들은) 1990년대 이후 한국 계급구조의 변화, 정치적 민주화 등의 모든 현상에 대한 설명 역시 게을리하고 매우 추상적이며 철학적인 논의로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분석은 이렇게 현실과 매개되지 않는 학문은 공허할 뿐만 아니라 질도 낮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은 사후적 대응에만 치중하지 문제의 근원에 대한 분석작업과 대안제시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박정희식 발전모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더 학술적으로 진행되어야 했으나 아주 쉽게 정치적인 논란으로만 제기됐고, IMF위기를 맞게 된 배경 역시 학술적으로 논의돼야 할 쟁점이었지만 제대로 천착되지 못한 채 넘어가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런 좌파 사회과학의 몰락이 왜 우파 사회과학의 득세로 이어지지 못하는가? 김 교수는 "21세기 들어서 이제 이념 대신에 시장에서의 욕망이 천하를 통일했다"며 "이 욕망이라는 리바이어던은 1980년대식 좌파만 몰락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이 비판했던 우파까지도 크게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론적 적수를 잃어버린 자유주의 사회과학 역시 이론적 긴장성과 문제제기 능력을 별로 갖지 못하고 있으며 이제 사회과학은 현재 이론적이든 실천적이든 빈사상태에 있다"고 암울한 사회과학의 현실을 토로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차라리 '무식해서 용감한' 20~30대 아마추어 학자들이 대단한 이론가 행세를 하면서 '철없는' 학생들의 밤잠을 빼앗은 1980년대가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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