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교육부총리가 "학군 조정을 통해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발언을 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사실 이번 발언은 새로운 게 아니다. 김 부총리는 이전부터 '교육정책을 통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독특한 소신을 여러 차례 밝혀 왔고 심지어 이번처럼 직접 정책으로 밀어붙이다 실패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 시절엔 "판교 학원 단지로 강남 집값 잡겠다"**
김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로 재임하던 2003년 9월 극성을 부리던 아파트 투기를 막기 위해 이른바 '9ㆍ4 주택시장 안정대책'이라고 불리는 투기 대책을 내놓았다. 결국 유명무실했던 이 대책의 압권은 "새로 지을 판교 신도시 내에 1만 평 규모의 학원 단지를 건설해 강남의 아파트 값을 떨어뜨리겠다"는 '판교 학원 단지 건설' 안이었다.
강남이 아파트 투기의 진원지가 된 것은 그 곳에 유명 학원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근교에 대규모 학원 단지를 건설하면 '자연스럽게' 강남 아파트 값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사실상 판교를 '제2의 대치동'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연히 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부동산 대책은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이 안은 학원으로 대표되는 '사교육'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서민들에게 가장 큰 가계 부담을 주는 학원 사교육비 지출을 정부가 앞장서서 부추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창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교육인적자원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도 앞뒤가 안 맞는 것이었다.
결국 이 안은 노무현 대통령의 혹독한 질타까지 받은 끝에 결국 발표된 지 한 달 만인 9월 27일 완전히 백지화됐다. 당시 고건 총리는 "공교육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학원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 여론을 고려해 백지화한다"고 밝혔다.
***"강북에 특목고 단지 만들어 집값 잡겠다"**
하지만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기이한 소신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김 부총리는 '판교 학원 단지 건설' 파문으로 곤욕을 치른 직후인 10월 9일 다시 "강북에 특수목적고등학교를 많이 만들어 강남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실상 '판교 학원 단지 건설' 안의 복사판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10ㆍ29 부동산 종합대책'에서 강북 뉴타운 지역에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등을 설립하는 계획을 포함시키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수차례 만나 뉴타운 개발 지역에 추진 중인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가 입학생을 선발할 때 강북 지역 등 학교 인근에 거주하는 학생을 우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물론 이 역시 교육계를 비롯한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짚은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강남 지역에는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등 특목고가 한 곳도 없다. 강남권의 교육 수요는 특목고 수요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현실 맥락조차 무시한 대책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당시는 교육부가 한창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한 초ㆍ중등학생의 사교육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특목고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 때문에 교육부도 "부동산 문제를 풀기 위해 교육 제도에 손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었던 것.
이 같은 반발에 김 부총리는 '10ㆍ29 부동산 종합대책'에서 이 계획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하면서 "강북 뉴타운 특목고 신설 등은 부동산 문제로 다룰 성격은 아닌 것 같다"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뒤 김 부총리는 윤덕홍 당시 교육부총리에게 "비전문가가 교육정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았다"며 "앞으로 교육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겠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부동산 문제 꼬이게 한 장본인이 오지랖도 넓다"**
'비전문가'로서 교육수장이 된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드디어 견제를 받지 않고 자기 소신을 펼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판교 학원 단지', '강북 뉴타운 특목고 단지'에 이어 '학군 조정을 통한 강남 집값 잡기' 구상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역시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김 부총리 스스로가 2년 전에 정확히 지적했듯이 강남의 집값이 폭등한 요인은 '대치동 학원가'처럼 강남이 양질의 사교육 공급처이기 때문이지 결코 강남 지역 고교 때문이 아니다. 더구나 광역 학군제나 공동 학군제로 강남 지역 고교로 지원이 쇄도할 경우 오히려 '강남 특구'의 위상만 높여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강남 집값이 폭등한 요인 중에서 학원 등은 여러 가지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부동산 문제의 핵심이 부동산 투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 세력의 득세와 이들에게 '부동산 불패' 인식을 심어준 각종 제도적 허점과 노무현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의 한심한 부동산 대책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경제 관료 출신의 김 부총리가 오지랖도 넓게 부동산 문제 해결에 번지수를 잘못 짚은 대책을 내놓아 논란만 부추기고 있으니 그 속내가 궁금할 뿐이다. 더구나 김 부총리야말로 노무현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로 이렇게 부동산 문제가 꼬이게 한 '원죄'를 가진 사람 아닌가.
김진표 부총리는 취임 무렵 '비전문가'가 교육수장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전해듣고는 "재경부 출입기자들과 교육 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는 동문서답을 해 빈축을 산 적이 있다. 혹시 이제는 교육부 출입기자들과 부동산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산적한 교육문제는 손놓고 말이다.
지금 김 부총리의 처신이야말로 '금자 씨'의 말이 딱 맞는다. "너나 잘하세요."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