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과학? 영국의 존경 받는 생명과학자 매완 호(Mae-Wan Ho)의 <나쁜 과학>(이혜경 옮김, 당대)은 제목부터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과학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고 단지 그것을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문제다'와 같은 상식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완 호에 따르면 현대 과학기술의 다양한 결과물 중에는 '그 자체로' 또 '근본적으로' 위험한 '나쁜 과학'이 존재한다. 그 나쁜 과학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생명공학이다. 도대체 생명공학은 무엇이 문제인가? 매완 호는 이 책에서 엄밀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조목조목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공선에 반하는, 거대기업과 밀착된 '나쁜 과학'**
사실 생명공학이 사회적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유전자 조작 생명체(GMO)로 만든 먹을거리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최근 '황우석 신드롬'이 보여주듯 생명공학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 가운데 대세는 생명공학 견제보다는 육성 쪽이다. 오죽하면 최근 과학기술, 기업, 정부(관료), 언론이 '과학기술 동맹'을 결탁했다는 지적까지 나왔겠는가.
이 책은 이런 대세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우선 왜 생명공학이 나쁜 과학인지 매완 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생명공학은 나쁜 과학과 거대기업 간의, 일찍이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밀착된 결탁이며, 이 결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다움(humanity)의 종말과 세계의 종언을 초래할 것이다. 생명공학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생명공학은 인간을 비롯한 유기체를 상품으로 격하시키고, 제3세계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고, 인간과 동물의 건강과 생물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유색인종과 소수민족, 그리고 정치적으로 박탈당한 전 세계 모든 민중에 대항하여 우생학과 유전자 차별을 부추긴다."
"농업 생명공학은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없다. 정반대로 본질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며 생물 다양성과 인간·동물의 건강에 위험하다. 우리가 오히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생물 다양성과 식품 안전성을 보증하는 토착 농업에 기반을 둔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런 매완 호의 주장은 한 마디로 현대 생명공학은 공공선과 공공의 이익보다는 기업의 이익에 바탕을 둔 과학이며, 인류가 그 동안 축적해 온 도덕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그것을 파괴하는 과학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을 계속 방치해뒀다가는 더 이상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생명 현상", 무모한 도전이 가져올 파국**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생명공학에 대한 비관적인 결론이 바로 1970~90년대 눈부신 생명공학의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그가 한 장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유동적 유전체(게놈)'는 유전자 조작 생명공학이 얼마나 불확실한 토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 생명공학은 마치 기계 부품을 갈아 끼우듯 유전자를 조작해 갈아 끼우면 생명 현상을 의도한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매완 호는 이런 '기계론적 생물학'에 대한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지난 20여 년간 생명공학의 성과는 오히려 유전자가 기계 부품과 같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환경의 도전에 끊임없이 대응하고 적응하는 '유동적 유전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전체는 수많은 과정의 결과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생적·진화적 시간 단위에 항상적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유전자와 유전체를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유전자를 돌아다니게 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재배열하고 재조합하고 서열을 복제하고 삭제 또는 삽입하며 심지어 서열을 교환하거나 뒤바꾸기까지 한다. 이런 유동성이야말로 유전자와 유전체가 환경과 조응하며 안정적인 생명 현상을 유지해 온 비밀이다."
이런 '유동적 유전체'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생명공학은 그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인간이 행하는 인공적 유전자 조작은 결국 인간에 의해서도 또 생명체에 의해서도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무작위로 귀결된다. 결국 생명공학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재앙으로 귀결될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에 대한 '모라토리엄' 선언해야"**
매완 호는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고려할 때 생명공학에 대한 '모라토리엄(연구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놀랍게도 이미 생명공학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생명과학자들이 선언한 적이 있다.
1975년 아실로마 회의에서 생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의 문을 연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인체와 생태계에 미칠 위험을 우려해 스스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생명공학은 그 태동기부터 그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로부터도 그 결과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신을 받아 온 것이다. 물론 오늘날 대다수의 생명과학자들은 이 모라토리엄 선언을 일종의 해프닝으로 폄하하고 있지만 말이다.
매완 호는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상의 모든 문제를 생명공학과 같은 과학기술로 해결하겠다는 꿈에서 벗어나, 어떻게 지금의 '지옥 같은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물론 그 과정에는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를 착취하고 억압하고 혼란에 빠뜨리고 파괴하는 나쁜 과학, 생명공학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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