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북한 노동당 실세 부부장이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만나기 위해 극비리에 중국 베이징에 나왔으나 정 장관은 고민 끝에 결국 나가지 않았고, 이로 인해 북한의 불신이 심화돼 남북관계가 악화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사실 여부가 주목된다.
***“鄭통일 지난해 자신 만나러 베이징 온 北실세 안만나”**
북한문제 전문가인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는 지난 27일 <프레시안>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구 상임이사는 미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 연구원을 지낸 바 있으며, 지난 2001년 당시 남북통신협상을 기획, 추진하면서 이를 위해 여러차례 방북하며 북한측 주요 인사들과 교류해 왔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난해 말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 북한과 책임있는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간접적으로 촉구를 많이 했으며 북한의 책임있는 실세와의 비공식회담을 위해 나도 정 장관과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며 "북측에서는 남측이 책임있는 협상을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만나겠다고 했고 결국 2004년 12월 노동당의 실세 부부장 정도 되는 사람이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에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고민하던 정 장관은 결국 나가지 않았고 그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불신이 심화되었다"며 "이에 대해 국정원에서 십년여 대북정책을 담당해온 한 중간 간부는 장탄식을 하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정동영 장관은 2004년 12월 21일부터 24일까지 3박4일간 중국을 방문해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을 예방한 바 있다.
구 위원은 이어 "실제 남북간 문제가 풀리기 위해서는 책임있는 주체간 책임있는 회담이 돼야 하며 특히 북핵, 중요경협 등과 관련한 문제는 겉으로만 모양새가 좋은 장관급회담에서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남북관계 특수성상 형식적으로 나오는 장관급 회담 대표는 실권이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중요협상은 비공개에서 다 이뤄진다"며 정 장관의 회동 거부를 안타까와 했다.
그는 "과거 DJ 때는 비공개 실세라인과 장관급회담의 공개라인 등 두 가지가 모두 이뤄졌다"며 "하지만 노 정부 들어서서는 실무적 차원의 남북간의 만남만 존재할 뿐"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2월 라종일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베이징에서 북측의 새로 바뀐 대남라인 책임자와 만나 대북 신(新) 라인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실권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장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복잡한 헤게모니 문제가 발생했고 그 결과 대북라인은 새로운 정립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이종석 차장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최근의 남북 차관급회담에 대해 “북한으로서는 비료 문제가 다급해 이를 받기 위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회담”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김홍재 통일부 대변인은 31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민간차원에서 나온 얘기"라며 "민간차원에서 몇 가지 건의가 있었으나 정부는 공식 대화 재개에만 주력해 왔다"며 부인했다.
***"南외교안보라인, 무능과 무책임-혼란”**
구 위원은 또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남북 고위채널 복원’ 의미로 보도됐던 정 장관과 임동옥 북한 노동당 통일선전부 제1부부장과의 서신 교환에 대해서는 “임동옥은 폐암환자로 실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가 거론되는 것 자체가 책임있는 대북채널의 가동도, 핵심적인 대북정보수집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일축했다. 그는“임동옥 라인은 거의 작동을 하지 않고 있어서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협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며 노 정부는 북한 내부의 대남 관계 책임 라인의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북 정보에 있어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확인, 북한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구조적 이해, 이 두 가지를 접목해야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위성 촬영을 통한 정보이건 사람을 통한 정보이건 정보 수집능력이 대단히 취약해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현 외교안보라인에 대해 “본질은 무능과 무책임, 혼란"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는 “좌파적 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한때 있던 자주-동맹 논란도 허상에 불과하다”며 “자주파면 그에 맞는 구체적 전략과 성과, 진전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北, 전략 수정. 핵보유 파키스탄 모델 추구, 통일 정말 멀어져”**
구 상임이사는 현재 북한의 핵전략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핵심목표는 파키스탄 모델로 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과거처럼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핵무기 보유 국가로 나아가려 하고 있으며 국가기본전략이 바뀐 것”이라며 “스스로 핵무기 보유국가가 된 상태에서 미국의 한반도와 그 주변에 배치한 핵무기를 같이 통 털어 없애는 방향으로 협상을 하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요컨대“북한은 이 모델을 통해 궁극적으로 경제는 어려울지 몰라도 체제안전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어 “북한은 미국의 북폭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우려하면서도 이라크전에 묶여 있고 중국의 존재 등 여러 정황상 그 가능성은 높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북한은 물론 미국이 한국과의 협의 없이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호주까지 포함한 연합군 형태로 북폭을 할 가능성에는 대비하고 있으며 지난 5월 1일 발사한 미사일은 나름대로 미국의 북폭에 대비한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파키스탄 모델로 가게 되면 통일은 정말 멀어지며 한반도와 민족공동체 운명과 관련해 불행하고 어려운 길로 가게 된다”고 우려했다. 남한의 경우 한미동맹 균열과 복잡하게 변화되는 동북아 구조 속에서 발언권을 더 상실하게 돼 심하게 얘기하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북한은 핵으로 큰 목소리를 내게 되겠지만 경제적으로는 궁핍한 영양가 없는 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남-북 책임있는 주체간 책임있는 협상 필요, 북-미.한-미 협상과 연동돼야”**
그는 북핵 해법으로는 남-북간 책임있는 협상과 북-미.한-미간 책임있는 협상의 나선형식 연동을 주장했다.
그는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근본적 전환을 이루어 내지 않으면 현 난국을 타개하지 못할 것”이라며 “남한은 미국에게 책임있는 협상을 하라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간 긴밀한 협상을 지렛대로, 북미간 협상을 촉구하고, 나아가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여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같은 책임있는 인사의 평양 방북을 실현시켜서 최종 타결을 지어야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서는 “한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조건은 말을 앞세워선 안 되고 내용과 실질이 중요하며 말을 앞세우면 일이 더 꼬일 뿐 문제 해결에 보탬이 안 된다”면서 “동북아 균형자론은 말이 앞서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어설픈 균형자론 등 말잔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북핵문제, 북한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고, 향후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정립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인간도 줏대있게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힘들지만 하물며 세계 4대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크지 않은 나라가 줏대있게 사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창조적인 지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구해우 미래재단 이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北으로서는 이번 차관급회담 비료위한 회담일 뿐”**
프레시안 : 최근 남북관계를 보면 당국자회담이 재개되는 등 진전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구해우 : 지난해 7월 이후 단절됐던 당국자회담이 이번 차관급회담으로 재개됐으나 회담의 핵심목표는 북한으로서는 비료 문제가 다급해서 비료를 받기 위한 것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회담에서는 북핵문제 해결 및 진전 등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이번 회담을 진전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이러한 안이한 인식을 갖고서는 앞으로 있을 장관급 회담에서도 북핵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성과를 낳기 힘들다. 현상적인 차관급회담, 사실상 실무급회담의 개최를 통해 사람들이 잘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낙관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오히려 문제해결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데 장관급회담도 현재와 같은 인식으로 준비한다면 북핵과 관련해 귀중한 시간들을 또다시 낭비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는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핵무기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북핵문제가 갈수록 위기국면으로 치닫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북한으로서는 이번 차관급회담을 통해 장관급회담을 복원시킨 것은 남측이 원하는 형식을 하나 만들어줘, 즉 심하게 얘기하면 남측에서 일정한 모양새와 그림을 원하니까 적당하게 맞춰준 뒤 비료와 식량 등 실속을 챙기는, 적절히 주고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실체적 진실인데 오랫동안 끊겨 있던 것이 이어져 전반적인 복원 계기로 바라보는 전망은 적절치 않다.
***“北정보파악 위해 인적 네트워크, 북한사고방식 구조적 이해 필요” **
프 : 북한이 핵무기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구체적인 자료가 있나.
구 : 일단 핵무기를 포함한 대북 정보는 정보의 사실성을 확인하고 짚어볼 필요가 있다. 98년도 금창리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인공위성 사진을 찍어서 의혹을 제기했으나 실제 가서 조사해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북한에서 이뤄지는 일들은 이처럼 위성 촬영을 통한 정보도 한계를 노출할 정도로 그야말로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많다. 따라서 오히려 북한 내부 핵심관계자로부터 얻게 되는 정보의 진실성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남북통신협상을 하면서 북한 정권 관계자와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이에 대해 우선 통신협상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통신문제는 체제안전과 직결되므로 통신협상 때는 군부와 당의 핵심 인사들이 나와서 협상을 하게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들이 나오는 셈이다. 이들을 통해 중요한 사실들을 들었고 지금까지 4,5년간에 걸쳐 축적해왔으며, 그들의 말은 사실로 확인돼 왔다.
또다른 측면에서 북한정책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람들의 이념과 사고방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른 정책결정시스템에 대한 구조적이고 구체적인 이해에 기반해서 어떻게 될지 예측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확인, 북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구조적 이해, 이 두 가지를 접목해야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南 대북정보 수집능력 취약해진 상태”**
프 : 정부의 대북 정책에 있어서의 안이한 대응과 태도를 비판했다. 최근에는 6월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는데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구 : 6월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몇 달 남지 않았다고 본다. 최근 언급된 정보 가운데 가장 사실에 근접한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국장을 지낸 아서 브라운 위기관리그룹(DRG) 선임 부회장이 9월에 북한의 핵무기실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 본다. 팻 로버츠 미 상원 정보위원장도 비슷한 가능성을 예측했다. 미국의 경우 CIA 등 다양한 정보 채널을 통해 대북 관련 고급 정보를 축적해 왔다.
문제는 한국 정부다. 한국 정부는 위성 촬영을 통한 정보이건 사람을 통한 정보이건 정보 수집능력이 대단히 취약해진 상태다. 특히 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대북정보채널 취약성이 계속 악화돼 왔던 과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남-북 채널은 박정희 때는 이후락, 전두환-노태우 때는 박철언, 김영삼 때는 별로 없었으나 김대중 때는 임동원이 맡아 왔으며 북측에서는 전두환 정권 이후 김용순이 계속 담당해왔다.
노 정부 특성은 대북관계가 오락가락하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남-북간의 책임있는 채널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라는 점이다. 남측에서는 이종석, 정동영 등이 주체로서 거론되고, 북측 인사로는 임동옥 정도가 거명되고 있다. 하지만 임동옥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북한의 변화된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책임있는 대북 채널이 구축되지 않았음을 극적으로 반증하는 것이다. DJ 정부시절부터의 대북 라인을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임동원-김용순 라인이 있었으며 당시 북측에서는 김용순 이외 송호경과 임동옥 등이 활동했다. 하지만 김용순은 2003년 10월 사망했고 그 뒤 송호경도 사망했다. 임동옥은 폐암 환자로 75세의 고령이다. 임동옥이 폐암환자로 실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점은 정부도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실제 거의 활동이 없다시피 한 임동옥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책임있는 대북채널의 가동도, 핵심적인 대북정보수집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노무현 정부는 이밖에도 북한 내부의 대남 관계 책임 라인의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한에서도 정권이 바뀌면서 대북 책임자가 바뀌었지만 북쪽에서도 노 정부 들어서기 전후에 대남라인이 바뀌었으나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 라인인 김용순-송호경-임동옥 라인만 붙잡고 있다. 이 라인은 거의 작동을 하지 않고 있어서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협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노 정부 들어서서 내용적으로 진전된 것이 거의 없다. 남북경협에서도 DJ 당시 내용을 수습하는 정도다.
***“鄭통일 지난해 자신 만나러 北京온 北실세 안만나”**
프 :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와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구 : 노 정권의 대북 문제에 있어 가장 큰 문제라면 정책이 오락가락한 부분도 있고 실질적으로 책임있는 채널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책임있는 협상도 진행시키지 못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어떻게 해결할 지 정확한 전략이 제대로 서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외교안보팀 내 문제도 분명 있다. 상호간 헤게모니 문제와 확실한 책임의식의 부재 등이 맞물려 돌아가 현재의 난국이 초래된 것이다.
대남 라인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노 정권 초기 외교안보팀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대북 신(新) 라인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있기는 했었다. 언론에 보도됐다시피 2003년 2월 라종일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베이징에서 북측 관계자와 만났었으며 이 북측 인사는 새로이 바뀐 라인의 책임성을 지니고 있던 주체가 나왔었다. 북한은 라종일씨가 안보보좌관으로 내정돼 있으니 그를 책임자로 보고 접촉한 것이다. 하지만 실권은 이종석 NSC 차장중심으로 일이 진행되면서 복잡한 헤게모니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대북라인은 새로운 정립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말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 북한과 책임있는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간접적으로 촉구를 많이 했으며 북한의 책임있는 실세와의 비공식회담을 위해 나도 정 장관과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북측에서는 남측이 책임있는 협상을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만나겠다고 했고 결국 2004년 12월 노동당의 실세 부부장 정도 되는 사람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에 나왔다. 하지만 고민하던 정 장관은 결국 나가지 않았고 그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불신이 심화되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에서 십년여 대북정책을 담당해온 한 중간 간부는 장탄식을 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실제 남북간 문제가 풀리기 위해서는 책임있는 주체간 책임있는 회담이 돼야 하며 특히 북핵, 중요경협 등과 관련한 문제는 겉으로만 모양새가 좋은 장관급회담에서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북관계 특수성상 형식적으로 나오는 장관급 회담 대표는 실권이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중요협상은 비공개에서 다 이뤄진다. 과거 DJ 때는 비공개 실세라인과 장관급회담의 공개라인 등 두 가지가 모두 이뤄졌다. 하지만 노 정부 들어서서는 실무적 차원의 남북간의 만남만 존재할 뿐이다.
***“남-북 책임있는 주체간 책임있는 협상 필요, 북-미.한-미 협상과 연동돼야”**
프 : 지금같은 협상으로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기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협상이 이뤄져야 하고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구 : 한-미간 긴밀한 협력-협의와 남-북간 책임있는 협상, 이 두 가지가 같이 진행돼야 하고 나선형식으로 얽혀 들어가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북핵문제,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두 개의 수레바퀴와 같은 것인데 현 정부의 핵심적인 문제는 두 가지 모두 고장이 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사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개혁개방으로 방향 전환하면서 특구도 발표하고 북일 수교에 의욕을 보였다. 이를 매개로 동북아 정세가 전체적으로 바뀌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동북아정세 변화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2차 북핵위기 발단은 그것이나 모든 것이 미국 컨트롤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조건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방향 속에서 새로운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협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대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며 새로운 레버리지의 근거는 책임있는 남북협상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어설픈 균형자론 등 말잔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북핵문제, 북한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고, 향후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정립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부시 정부의 전략은 완결돼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부분에서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으나 구체적인 전략이 정확하게 수립돼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남북간의 책임있는 협상에 기초해서 레버리지를 만들어 미국과 협상할 여지가 있다. 기본적으로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남북협상도 책임있는 협상이 돼야 하고 이를 근거로 잘 엮어 들어가야 하는 것이 현재 북핵 문제 해법이고 한반도 문제의 전략적 방향이다.
***“北, 전략 수정. 핵보유 파키스탄 모델 추구, 통일 정말 멀어져”**
프 : 북한의 전략 목표는 정확히 무엇인가.
구 : 북한의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정보와 함께 북측이 정책 결정을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구조적으로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과거처럼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현재 핵무기 보유 국가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국가기본전략이 바뀐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정책은 스스로 핵무기 보유국가가 된 상태에서 미국의 한반도와 그 주변에 배치한 핵무기를 같이 통 털어 없애는 방향으로 협상을 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으며 이라크전 평가와도 연관돼 있다. 북한으로서는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핵사찰 등 미국이 원하는 것을 다했으나 결국 침략당했다고 생각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억제력, 무력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북한은 아울러 경제난 속에서 군사력 혁신을 이뤄내지 못했으며 낙후된 군사력을 돌파할 핵심 수단으로 전체 비용이 오히려 적게 드는 핵무기를 상정하고 있다. 이같은 인식을 기반으로 핵무기를 가지지 못하면 체제를 유지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북한의 구체적인 핵심목표는 파키스탄 모델로 가는 것이다. 북한은 이 모델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경제는 어려울지 몰라도 체제안전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북폭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우려하면서도 이라크전에 묶여 있고 중국의 존재 등 여러 정황상 그 가능성은 높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 물론 미국이 한국과의 협의 없이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호주까지 포함한 연합군 형태로 북폭을 할 가능성에는 대비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5월 1일 사거리 1백~1백20km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단순 미사일 발사가 아니라 나름대로 미국의 북폭에 대비한 실험이었다. 북폭에 대응하여 평택미군기지를 목표로 소형핵탄두 탑재형 미사일 발사실험을 한 것으로 스커드미사일을 개량한 것이다. 이처럼 북미간의 갈등은 날을 갈수록 고조되어 가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프 : 파키스탄 모델 이후의 한반도가 어떻게 되리라 보나.
구 : 파키스탄 모델 이후의 한반도 상황 때문에 현재 분수령에 와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 모델로 가게 되면 통일은 정말 멀어진다. 남한의 경우 한미동맹 균열과 복잡하게 변화되는 동북아 구조 속에서 발언권을 더 상실하게 돼 심하게 얘기하면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북한은 핵으로 큰 목소리를 내게 되겠지만 경제적으로는 궁핍한 영양가 없는 국가가 된다. 한반도와 민족공동체 운명과 관련해 불행하고 어려운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올해가 분수령일 텐데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근본적 전환을 이루어 내지 않으면 현 난국을 타개하지 못할 것이다.
***"美, 북핵 막을 시간 많이 놓쳐"**
프 : 미국으로서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동아시아가 핵 지뢰밭이 되는 것이다. 미국은 과연 북한의 핵 보유를 끝까지 용납할 것인가.
구 : 미국은 북핵을 막을 시간을 많이 놓쳤다. 북한도 진도가 많이 나가 있는 상태라 극적인 돌파구가 만들어 지지 않는 이상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갈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를 인정하고서 도미노를 막는 다음단계 전략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적 전략도 있을 것이다.
극적 돌파구는 2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남-북간 책임있는 협상이 돼야 하고 북-미간 책임있는 협상이 연동돼야 한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 미국에게 책임있는 협상을 하라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간 긴밀한 협상을 지렛대로, 북미간 협상을 촉구하고, 나아가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여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같은 책임있는 인사의 평양 방북을 실현시켜서 최종 타결을 지어야 해결된다.
프 : 대북 문제에서의 중국 변수가 어느 정도라 보나.
구 : 식량과 에너지 등을 통해 가장 영향력이 크고 의존하고 있지만 북한 나름대로 독특한 특성이 있다. 북한은 과거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종속적으로 정책을 결정해오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수백만이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자기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중국이 압력을 넣는다고 들을 사람들이 아니며 ‘고난의 행군’을 다시해도 자기 길을 간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선 말보다 내용이 중요. 동북아 균형자론 말이 앞선 대표적 사례”**
프 : 동북아 균형자론이 어떤 의미와 배경이 있다고 보는가.
구 : 기본적으로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조건을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조건은 말을 앞세워선 안 되고 내용과 실질이 중요하다. 말을 앞세우면 일이 더 꼬일 뿐 문제 해결에 보탬이 안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4대 강국에 둘러싸인 형국으로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고 살 형편이 아니다. 말은 줄이고 행동을 정확하게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말이 앞서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반도 지정학적 조건과 국가전략에 대한 나이브한 생각 속에서 함부로 말한 결과라 본다. 균형자론은 학문적으로는 의미와 한계 등을 말할 수 있고 학자간 논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대통령, 정책결정권자는 한반도에서 산다는 것이, 그 속에서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도 줏대있게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힘든 것이다. 하물며 세계 4대강국에 둘러싸여있는 크지 않은 나라가 줏대있게 사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창조적인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현 외교안보라인, 무능과 무책임-혼란”**
프 : 현 외교안보라인을 평가한다면.
구 : 좌파적 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본질은 무능과 무책임, 혼란이라 할 수 있다 . 한때 있던 자주-동맹 논란도 허상에 불과하다. 자주파면 그에 맞는 구체적 전략과 성과, 진전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 자주파-좌파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문제 해결 가능성이 낮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이후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고 하고서 결국 명량대첩의 승리를 이끌어낸 역사적 경험을 되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프 : 한미정상회담이 6월 10일 열린다. 현재 시점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가.
구 : 현재 상태에서는 한미정상회담은 의미있는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왜냐하면 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구체적인 전략전술이 준비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인 전략이 없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는 진도가 나갈 수가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금이라고 좀 더 구체적인 전략전술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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