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장관에 대한 북한의 '불신'이 풀렸나.
이번 남북 실무회담은 10개월만의 남북정부 대화창구 복원이라는 큰 틀의 의미가 있지만, 정 장관 개인으로도 평양행과 장관급회담 복원 약속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최대 수혜자가 된 양상이다. 정 장관은 20일 친정인 열린우리당을 찾아 "내가 통일부를 맡은 이후 남북관계가 꼬이고 대화마저 막혀 송구스러웠는데 모처럼 밝은 마음으로 보고를 드리게 돼 기쁘다"며, 그동안 '전전긍긍'하던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장관급회담 수용이 곧바로 '정동영 불신'의 해소로 해석하기란 아직 이르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정 통일, 평양행-장관급회담 얻어. 남북회담 공식 데뷔**
개성에서 당초 이틀간의 회담 일정을 훌쩍 넘겨 나흘간이나 협상을 벌인 끝에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어렵게 내달 평양 땅을 밟고 장관급회담 무대에 오르게 됐다.
남북은 다음달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5주년을 계기로 평양에서 진행되는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장관급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을 파견키로 합의, 정 장관은 장관 취임 11개월만에 처음으로 평양 땅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지난해 4월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이어 내달 21일 14개월만에 서울에서 제15차 장관급회담을 개최키로 함으로써 정 장관으로서는 장관급회담에 공식 데뷔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이번 회담의 최대 수혜자는 정 장관이라는 말도 빈 말은 아닌 듯싶다. 정 장관은 최근 남북관계가 교착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한 암자를 찾았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권주자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통일부장관을 자청했던 정 장관이 자충수를 둔 게 아니냐"는 냉소적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이러던 차에 나흘간의 산통끝에 어렵게 얻은 것이기는 하나 장관급회담 재개에 성공했으니, 정장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납득된다.
***북한의 뿌리깊은 '정동영 불신'**
그러나 북한의 장관급회담 수용을 곧바로 '정동영 불신'의 해소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정 장관이 장관에 임명된 것은 지난해 6월30일. 그후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우선 문제가 된 것이 지난해 7월27~28일 우리정부가 단행한 4백68명의 탈북자 무더기 입국조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즉각 다음날인 29일 대변인성명을 통해 탈북자 영입을 "북남관계와 조국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로 공약한 6.15공동선언에 대한 전면 위반이고 도전이며 우리 체제를 허물어보려는 최대의 적대행위"라고 비난하며 모든 남북정부간 접촉을 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후 남북대화는 끊겼다. 탈북자 영입은 외교부 등이 석달전부터 비밀리에 추진해온 것으로 정동영 장관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으나, 북한은 정장관도 책임자 중 하나로 인식했다.
북한은 이어 지난해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행사에 남측 인사들의 조문 방문을 불허하자 강력반발했고, 그해 11월 방북한 남측 인사들을 통해 "정동영 장관이 평양 땅을 못 밟게 하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북한은 실제로 지난해 12월 개성공단 첫 제품 생산 기념식장에 참석한 정 장관을 공개석상에서 의도적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정 장관이 행사장에서 축사를 시작하자 주동찬 북한 중앙 특구개발지도총국장이 곧바로 자리를 떠 화장실에 다녀오는가 하면, 남측에 개성 공단의 더딘 진행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또한 지난 1월 정부가 인터넷상의 친북 사이트 31개를 폐쇄하자 북한이 강력반발했고 이에 정동영 장관이 심사를 거쳐 일부를 풀겠다고 약속했으나, 다섯달이 지난 지금까지 꿩 구워먹은 상태다.
특히 올 들어 정부가 남북정부간 대화 복원을 비료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자, 북한의 '정동영 불신'은 극에 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일본이 돌려주기로 한 북관대첩비 반환 문제를 놓고 그동안 북한과 접촉해온 문화광광부산하 문화재청 대신 최근 통일부가 이를 맡기로 한 대목에 대해서도 북한의 시선은 싸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데에는 북핵문제라는 가장 큰 이유가 자리잡고 있지만, 북한의 뿌리깊은 '정동영 불신'도 한 요인으로 작용해온 셈이다.
***'부메랑' 될 수도**
때문에 남북 장관급회담 개최에 어렵게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남북회담에서 어떤 결실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최근 북한을 방문해 당국자들과 접촉했던 한 민간인은 "북한당국의 정동영 불신은 생각보다 심각했다"며 "과연 회담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북한은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가세해 소리소문없이 경제압박을 가하면서 사정이 대단히 어려워보였다"며 "이에 남북대화 복원을 통해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려 하고 있어 당분간 남북간 대화는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이나, 남북 신뢰관계가 많이 손상된 만큼 속을 터놓고 하는 대화를 기대하기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만에 하나 정 장관이 다음달 평양에 가 지난해 개성에서처럼 푸대접을 받는다면 그의 대권 행보에 결코 긍정적으로는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요컨대 어렵게 따낸 장관급회담이 도리어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남북접촉은 사익을 떠나 '민족이익'이라는 최우선 가치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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