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신대는 자발적 참여"라고 주장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국사 교과서에 기술된 위안부나 강제 연행 숫자가 과장됐다는 주장을 하고 나서, 국사학계에 또한차례 일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국사 교과서 '위안부 수십만', '강제연행 6백만'은 거짓"**
이영훈 교수는 지난 23일 '뉴라이트(new-right.com)' 홈페이지에 기고한 '북한 외교관과 남한의 교과서가 빠져 있는 허수의 덫'이라는 칼럼에서 "지난 시기 국사 교과서는 줄기차게 가공의 숫자를 인용해 왔고 '위안부 20만', '강제연행 6백만'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져 왔다"며 "자꾸 허수를 지어내고 그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추궁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진정 올바른 방식의 과거사 청산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 여자들이나 징용이나 징병 등으로 끌려간 조선 남자들의 수에 대해서 남한의 고등학교 교과서는 위안부의 수를 '수십만'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을 6백50만으로 가르치고 있다"며 "교과서와 독도 문제를 계기로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판이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그렇다고 정확하지 않은 숫자를 아무렇게나 거론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기고한 '뉴라이트' 홈페이지는 '뉴라이트 운동' 논객들의 칼럼 등을 모아 놓은 곳으로, 지난 1일 오픈했다.
***"위안부 숫자, 송건호가 잘못 인용하면서 20년 간 조작된 것"**
우선 이 교수는 교과서에 기술된 위안부 숫자가 과장돼 있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위안부 숫자를 둘러싸고는 연구자들 간에 구구한 추측과 주장이 있지만, 일본군 수뇌가 병사 1백50명에 1명의 위안부를 충원하라는 지령을 내린 적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 총 2백80만 정도의 일본군에 대략 2만의 위안부가, 병사 50명에 1명 꼴이었다 쳐도 대략 6만 정도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여러 가지 추정치가 난무하고 있지만 조선 여자만 20만이라는 최근 북한 국제연합(UN) 대표부 김영호 서기관의 얘기나, 그보다 더 많았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한국 교과서의 '수십만'이라는 숫자는 찬성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20만이라는 숫자가 최초로 거론된 것은 1969년 국내 모 일간지에서 1943년과 1945년 사이 '정신대로 동원된 조선과 일본 여성은 전부 대략 20만으로서 그 가운데 조선 여성은 5~7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언급하면서부터였는데, 이를 1984년 송건호 등이 '일제가 정신대의 명목으로 연행한 조선인 여성은 어느 기록에 의하면 20만이고 그 가운데 5~7만이 위안부로 충원되었다'고 뜻을 달리 인용하면서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이 때까지만 해도 20만이라는 숫자는 위안부가 아닌 군수 공장 등으로 동원된 근로 여성을 가리키는 정신대의 수였는데, 1984년 이후에 그것이 조선 여자 총수로 바뀌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당시 16~21세의 조선 여자가 1백25만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 여자 위안부가 '수십만' 또는 '20만'이나 됐다는 설은 (더욱더) 믿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당시 20~40세 조선 남자 3백20만이었는데 어떻게 6백50만 동원하나"**
이 교수는 징용이나 징병으로 강제 동원된 남자들의 수 역시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징용이나 징병으로 강제 동원된 남자가 6백50만 또는 8백40만이었다는 주장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생겨난 것"이라며 "재일 사학자 박경식이 1965년 '1939~1945년간 일본으로 징용된 자가 1백만, 조선 국내에서 동원자가 4백50만, 군인ㆍ군속이 37만, 도합 약 6백만 명이 강제 동원됐다"고 쓴 것이 40년간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면서 남한에서는 6백50만으로, 북한에서는 8백40만으로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1940년 국세 조사에 의하면 당시 20~40세의 조선인 남자의 총수는 3백21만이었는데, 그 나이의 남자들을 모조리 다 끌고 가도 반을 채울 수 없는 숫자가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있고 또 국제회의에서 거론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국사 교과서가 지난 40년간 일제가 토지의 40%를 수탈했다고 가르쳐 온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며 "그 숫자는 1967년 어느 무책임한 역사학자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개연성'만 제기, 구체적 자료는 제시 못해**
이 교수는 지난해 9월2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 "정신대는 자발적 참여"라고 주장해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바 있는, 국내학계의 대표적 '식민지 근대화론' 학자다.
평소 '실증적 접근'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교수는 한국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부격인 안병직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서울대 교수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파문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는 "이 교수가 워낙 일본 자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경도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따라서 이 교수의 이번 문제 제기도 이같은 평소의 지론과 '실증적 접근' 차원에서 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번에 이 교수가 제기한 문제의 '사실 관계'다. 이 교수는 당시 인구 통계 등에 기초해 기존의 주장이 과장됐을 '개연성'이 높다는 주장을 펴고 있을뿐, 구체적 사료를 통해 당시 강제 동원된 위안부나 징용자 및 수탈된 땅의 규모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는 못하다.
따라서 일본 외무상이나 '새역모' 등 일본 극우들이 "한국 교과서는 왜곡투성이"라고 주장하는 시점에 제기된 이 교수 주장은 앞으로 사실 관계 확인을 놓고 또다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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