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위태하던 가수 조영남(61)이 끝내 '대형 사고'를 쳤다.
***조영남 "나는 속았다"**
조영남은 연초 국내에서 출간된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의 일본어 출간에 즈음해 일본을 방문해 24일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産經)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일천한 역사인식과 국제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와 독도-왜곡교과서 문제 등의 본질을 왜곡,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씨는 특히 일본 외무성 산하 국제교류기금의 초청으로 지난해 9월 야스쿠니 신사를 구경한 뒤 "속았다고 생각했다. '토리이'(신사의 기둥문)는 두드러졌으나 보통의 신사와 다를 바 없었다. (야스쿠니에) 참배를 한다고 하면 한국과 중국에서 큰 목소리로 비난을 하는 까닭에 대단한 장소인 것처럼 세뇌돼 있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어 "그들(일본인)은 자신들의 선조가 자신의 선조가 아무리 심한 일을 했었다 할지라도 선조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참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범죄자로 취급하니까 합사와 참배는 괘씸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일본 극우정치인 등이 중심이 돼 군국주의 합리화 차원에서 진행중인 야스쿠니 신사의 A급전범 14인에 대한 참배를 당연한 것인양 주장했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단순히 전범의 위패만 모셔놓은 게 아니라 군사역사박물관이 있으며, 박물관측은 팜플렛을 통해 "근대 국가 성립과 일본의 자존 자위, 피부색과는 관계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달성키 위해 피할 수 없었던 많은 싸움에 귀중한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무훈, 유덕을 현창하고 영령이 걸어간 근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며 일제가 저지른 침략전쟁에 대한 노골적으로 미화하고 있음에도, 조씨는 태연스런 이를 '선조에 대한 참배'로 왜곡한 것이다.
***"피해를 입은 쪽은 조그마한 것에도 와글와글하기 마련"**
조씨는 또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일본의 도발로 한국-중국 민중이 격노하고 있는 독도문제와 왜곡교과서 문제와 관련해서도 "냉정하게 대처하는 일본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조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지배한 쪽과 당한 쪽은 서로의 입장을 진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피해를 받은 쪽은 조그마한 것에도 와글와글하기 마련이다"라고 주장, 마치 한국과 중국 민중이 '피해의식' 때문에 '사소한 일에 와글와글하고 있는 것'인양 매도하기까지 했다. 일제가 강점기때 집요하게 주입한 '엽전의식'의 발현이다.
조씨는 앞서 지난달 국내에서도 독도-교과서 문제로 EBS토론에 나가 함께 토론자로 나온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에 대해 "구로다씨와 친구로 싶다"는 등 '역사의식이 결여된 친일론'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구로다는 "독도는 한국땅,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는 일본땅" "독도-교과서문제는 한국언론의 왜곡보도 때문"이라는 등의 망언을 거첨없이 해대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극우언론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인식은 껍데기만 보는 '감성적 인식'과, 껍데기 속의 본질을 읽는 '이성적 인식'으로 나뉜다. 조씨의 친일발언은 극히 일천한 '감성적 인식'에 기초한 것으로, 평소 신문칼럼 등을 통해 여러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혀온 조씨의 인식체계가 얼마나 허약한 바탕위에 선 '감성 인식'에 불과했던가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조씨는 <중앙일보>에 정기 칼럼을 연재해온 데 이어, 최근에는 <경향신문>에 주마다 한면에 걸쳐 대형 칼럼을 쓰고 있다.
다음은 <산케이신문>의 조영남 인터뷰 전문이다.
***<친일선언> 우리말(일어) 출판, 한국가수 "우호 역할 했으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와 교과서문제로 반일감정이 강한 한국에서 올 1월 <맞아줄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을 출판한 한국의 국민적 가수 조영남(61). 한국에서의 반응은 당연히 엄하나, "사물을 보는 관점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며 지금도 "친일"은 바뀌지 않았다 한다. 저서가 우리말(일어)로 번역된 것을 계기로 일본에 온 조씨가 "일본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관한 말했다.
어느날 갑자기 '친일'이 된 것은 아니다. 직업상 여러번 일본에 왔던 조씨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풍부했다. 사람이 많다. 이것만으로도 커다란 나람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질서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시아 주변국에 자신의 나라와 다른 풍토, 사람, 문화 등에 흥미를 가졌다.
3년전 일-한이 공동으로 주최한 월드컵 축구대회. 한국이 4강에 진출하자,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때 받은 감동으로 '지일파'를 선언. 다음해 노무현대통령이 취임직후 방일. 국회 연설 장면을 한국에서 TV로 본 조씨는 "의석에서 18차례의 박수가 나왔다. 한국에서라면 외국 원수가 국회연설을 하더라도 맨처음과 맨마지막에 박수를 칠뿐이다. 한국인으로서 고마왔다." 이래서 '친일선언'을 했다.
'지일파''친일파'로서 한국 유력지 <중앙일보>에 컬럼을 연재하던중 지난해 9월 일본의 국제교류기금의 문화인초청 프로그램으로 방일.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조씨는 생각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무대....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야스쿠니 신사였다"고 한다. "예에, 아스쿠니 신사요"라고 말하자, 국제교류기금 담당자는 말을 잃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조씨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속았다고 생각했다. '토리이'(신사의 기둥문)는 두드러졌으나 보통의 신사와 다를 바 없었다. (야스쿠니에) 참배를 한다고 하면 한국과 중국에서 큰 목소리로 비난을 하는 까닭에 대단한 장소인 것처럼 세뇌돼 있었다"며 조씨는 웃었다.
참배를 마친 조씨는 "그들(일본인)은 자신들의 선조가 자신의 선조가 아무리 심한 일을 했었다 할지라도 선조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참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범죄자로 취급하니까 합사와 참배는 괘씸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골은 메워지지 않고 있으나, 조씨는 그 가운데 서서 사물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친일선언'을 했다해도 당연히 일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케시마 문제와 교과서 문제로 열이 달아오른 한국에 비해 차가운 대응을 하고 있는 일본을 보면, "냉정하게 대처하는 일본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위에서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지배한 쪽과 당한 쪽은 서로의 입장을 진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피해를 받은 쪽은 조그마한 것에도 와글와글하기 마련이다"라고 일본측에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일-한 양국에 필요한 것은 하나. "서로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아무런 진전도 없다". 당연하나 그렇지 못한 게 오늘날의 일-한관계.
"관계개선을 위해 조금이라도 역할을 했으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친일선언> 출판의 이유라 했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 번역본(랜덤하우스 고단샤)는 1천5백엔으로 발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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