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시베리아 석유를 일본보다 중국에 먼저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중국과 치열한 송유관 확보 전쟁을 벌여온 일본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석유 中에 먼저 공급, 日자금 없이도 건설 가능”**
21일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빅토르 크리스텐코 러시아 산업에너지 장관은 지난 19일 일본 언론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동 시베리아에서 태평양 연안으로 향하는 송유관 건설 계획과 관련해 “중국용 지선이 먼저 건설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크리스텐코 장관에 따르면, 러시아는 송유관을 우선 동시베리아의 타이셰트(이르쿠츠크주)에서 스코보로지노(아무르주)까지 건설한 다음 철도나 송유관 지선을 통해 중국에 석유를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 즉 시베리아 송유관을 일본에 유리한 극동의 나홋카까지 건설하기에 앞서, 중국에 먼저 석유를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일과 관련해서도 “러-일간 장기적 에너지 협력에 관한 문서를 준비해 왔지만 시베리아의 송유관 건설에 관한 합의 문서는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 나홋카 노선 또한 아직 최종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건설자금 조달에 대해서도 “전세계에는 많은 투자자가 있어 융자 조건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말해, 굳이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을 받지 않아도 송유관 건설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동안 '풍성한 저팬머니'를 무기로 동시베리아 송유관 확보를 자신해온 일본정부에게 러시아정부가 "일본은 없어도 된다"는 펀치를 날린 셈이다. 이같은 입장 표명에 따라 크리스텐고 장관이 참석할 예정인 22일 일본 도쿄에서의 ‘러-일 무역경제 정부간 위원회’에서는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될 전망이다.
***중-일, 나홋카 노선 변화 가능성에 촉각**
러시아 정부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일본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러시아측에 '70억달러 이상'의 개발 지원금을 약속하면서, 사실상 일본이 희망해온 나홋카 라인이 잠정 결정된 것으로 낙관해왔다. 연초까지만 해도 러시아측은 이르쿠츠크 앙가르스크 유전에서 시작된 송유관을 타이셰트~스코보로지노~나홋카로 연결하는 안이 유력하다는 입장을 흘려왔다. 나홋카는 일본 홋카이도와 5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일본은 이 노선 확보를 위해 갖은 공을 들여왔다.
중국도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자, 앙가르스크에서 중국 다칭에 이르는 노선이 채택되도록 외교력을 집중해 왔다.
이처럼 중-일의 치열한 전쟁에 대해 초기에 일본쪽으로 기우는가 싶던 러시아가 막판에 중국쪽 손을 들어줌에 따라, 중-일 외교에서 일본이 참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일본의 팽창주의, 미-일동맹 강화에 쐐기**
러시아가 이처럼 입장을 급변한 원인은 복합적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우선 최근 북방 4도를 둘러싼 일본의 '고압적 외교'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 성격이 짙다.
주변국과의 영토전쟁을 본격화한 일본은 러시아와 영토분쟁 지역인 북방 4도를 모두 돌려받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러시아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반면에 러시아는 4개 섬 가운데 2개만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는 러시아가 야심적으로 추진중인 5월9일의 모스크바 2차대전 승전국 60주년 기념행사에 불참하겠다고 해 결정적으로 러시아를 격노케 했다. 퓨틴 러시아대통령은 이에 당초 예정됐던 방일 시기를 하반기로 연기한 데 이어, 이번에 시베리아 송유관마저 중국측 손을 들어줌으로써 일본에 대반격을 가한 셈이다. 러시아는 특히 일본 돈이 필요없다는 입장까지 밝힘으로써 일본측을 크게 당혹케 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시에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의 팽창주의에도 쐐기를 박으려 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러시아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러-중 연대 강화로 푼다는 맞불작전을 구사하려는 움직임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중국이 국방력 강화를 위해 무기를 구입할 때 러시아제 최첨단 무기를 구입해 주기를 원하고 있으며, 중국도 이에 긍정적 사인을 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러시아가 21세기 세계의 생명선인 에너지를 갖고 아시아 질서 재편에 적극 뛰어든 양상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