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1965년 한일 협정 타결을 압박하기 위해 독도의 한일 공동 소유 방안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러나 이같은 미국측 압박을 일축했다.
***美국무부 문서, “美, 지난 1965년 독도 한-일 공동소유 제안.” 한국 일축**
21일 SBS에 따르면, 딘 러스크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1965년 5월 17일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이 등대를 설치해 공동 소유하는 방안을 제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기밀해제된 미국 국무부 문서 ‘1964-68 미국의 외교관계 29편’ 363호를 통해 드러났으며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간 독도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라는 미국의 압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65년 6월15일 윈트롭 브라운 주한 미국 대사가 국무부에 보낸 364호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에게 독도문제를 다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제의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일본이 우리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별도 회담 없이도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회담이 무의미하다”고 말한 것으로 브라운 대사는 국무부에 보고했다. 이는 당시 주일대사를 지내고 있던 김동조 대사가 전권을 갖고 있으므로 외무장관회담까지 벌일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논의가 고위급에서 이뤄지는 것을 막은 것이다.
***美, 주한미군 유지비 절감에 독도 걸림돌 판단**
미국이 당시 계속해서 독도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간 ‘원만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선 데는 자신들의 주한 미군 유지비 절감을 위해서는 일본자본의 한국 유입이 절실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일 협정으로 자신들의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으나 독도 문제로 한-일 협정 체결이 지연되자 적극적인 ‘중재’에 나선 것이다.
한일 협정 당시 일본은 ‘독도 폭파론’까지 제기하며 독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세키 이나지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장은 1962년 9월 3일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제4차 회의에서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세키 아시아국장은 이어 한국의 최영택 외교부 참사관이 “회담 도중에 이 문제를 내놓겠다는 말인가”라며 항의하자 “그렇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로 하는 것을 정해야 겠다”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은 결국 ‘의제 불가’라는 입장에서 제3국 조정안이라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美 중재안, 사실상 日 편들기**
하지만 당시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며 미국의 중재가 일본쪽에 크게 기운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한국에게 영유권을 포기하라는 주장과 다름없던 것으로 해석돼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당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미국을 설득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러한 일본의 로비로 미국이 우리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인 일본 편들기 의혹은 1951년 9월 조인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준비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보낸 평화조약 초안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밝힌 지도를 첨부해 보냈으나 조약에서는 빠져 일본측의 집요한 로비에 의한 결과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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