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동강을 능가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경북 영양군과 울진군의 왕피천 일대가 산림청의 '딴죽걸기'로 3년이 지나도록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지 못한 채 훼손되고 있다.
특히 환경단체는 국유림이라는 이유로 환경부의 '자연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 협조를 거부한 산림청이 도로, 폐광, 군 폐기물에 의한 왕피천 훼손은 방치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제2의 동강' 왕피천, 무분별 난개발에 몸살**
녹색연합은 19일 "산림청의 관리 부실 및 난개발 방치 때문에 국내 으뜸의 자연하천 왕피천이 멍들고 있다"며 "도로·임업도로 건설, 폐광·군폐기물 방치 등으로 왕피천 유역 곳곳이 훼손되고 있지만 산림청은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왕피천은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8.5㎞, 면적 4백65㎢의 하천으로 산양·하늘다람쥐·수달 등 천연기념물, 연어·은어·황어 등 희귀 어종, 고란초·노랑무뉘붓꽃 등 멸종 위기 야생 보호종, 말똥가리, 흰목물떼새 등 멸종 위기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이날 녹색연합은 도로·임업도로와 폐광·군폐기물 방치 등 훼손 사례를 공개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왕피천 일대에 건설된 도로는 국내 제일의 금강소나무 군락지이자 산양·사향노루·수달·담비·하늘다람뒤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깔고 지나가는 2차선이다. 특히 이 도로는 왕래하는 차량이 하루 30여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다 공사도 부실하게 진행돼 안전 문제도 심각한 형편이다.
녹색연합은 또 왕피천 일대 삼림 곳곳에 만들어진 임업도로 역시 대표적인 훼손 사례로 꼽았다. 이 임업도로는 산불 방지와 효율적인 산림 확보를 위한 벌목과 조림 작업을 위해 산림청에서 수년에 걸쳐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설했으나, 오히려 무분별한 임업도로의 건설로 산사태 등을 야기했다. 경사가 급한 지형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 임업도로가 생태계 훼손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편 산림청은 경북 울진군 서면에 속하는 왕피리 동수골 일대에 남은 폐광(동석광산)과 왕피천 유역 통고선 정상에서 천축산으로 이어지는 산림 생태축 한가운데 10년 넘게 방치된 군 주둔 막사에 대해서도 철거·복원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산림청 '딴죽걸기'로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 제자리 걸음**
문제는 이렇게 산림청이 왕피천 일대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왕피천 일대에 대한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 움직임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나도록 결론이 안 난 상태다.
2000년부터 왕피천 일대 환경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환경부는 2003년 5월 왕피천 유역을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면 각종 개발 사업이 규제를 받는 데도 불구하고 울진·영양군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이례적으로 지정에 찬성해 상황은 더욱 고무적이었다. 더구나 왕피천 일대 산림은 90%가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유림이었다.
그런데 산림청이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 마지막 단계에서 제동을 걸었다. 산림청은 2004년 "왕피천 일대 국유림은 산림청이 관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굳이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할 필요가 없다"고 훼방을 놓았다. 동강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 과정에서 보였던 '산림청 딴죽걸기'가 또 한번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결국 이 사안은 2004년 12월22일 국무조정실로 넘어가 현재까지 4개월 가까이 조정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산림청은 앞에서 녹색연합이 고발한 것처럼 왕피천 일대 보호는커녕 폐광과 군 폐기물을 방치하고 도로 건설을 방치하고 임업도로를 내는 등 왕피천 일대 보호에 소극적이어서 앞뒤가 맞지 않은 모습을 보여 왔다.
***산림청, "보호에는 찬성, 단 면적 줄이자"**
이런 지적에 대해서 산림청은 "왕피천 일대 보호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제대로 하자는 것"이라며 녹색연합의 지적에 강하게 반발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19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산림청도 왕피천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에는 동의해 왔다"며 "단 환경부가 제안한 면적이 불합리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국무조정실에서 지정 지역 면적을 조정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경부가 제안한 지역은 이미 휴양림이 조성돼 있는 곳도 있고 산지 전용 허가가 이미 난 곳도 있어서 무조건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묶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녹색연합의 산림청의 환경 훼손 방치 주장에 대해서도 "임업도로의 경우에는 그 지역 산림을 경제림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하면서 수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건설해온 것이고, 도로 건설을 비롯한 다른 사안은 산림청 단독으로 진행하는 사안이 아닌데 산림청 탓만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녹색연합, "산림청, 속내는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 싫다는 것"**
녹색연합 서재철 국장은 "산림청이 왕피천 내 폐광을 방치해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라며 "이미 다른 지역에서는 산림청 주도로 폐광을 복원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 국장은 또 "도로 건설도 산림청이 보호에 의지가 있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서 국장은 "지정 지역 면적을 놓고 계속 산림청이 딴죽을 거는 것을 실제로 생태계 보전 지역 지정에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남은 국무조정실 주관의 공동 실사, 환경부․녹색연합과의 협의 과정에서 산림청의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한다"고 산림청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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