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혈액 부실 관리로 홍역을 치른 대학적십자(총재 한완상)가 대대적인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으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어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눈 가리기식 쇄신'이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적십자사, "뼈를 깎는 자기반성, 대대적인 혁신 인사했다"**
적십자사는 6일 "부실한 혈액관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통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적십자 정신과 이름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바꾸어 가겠다"며 "그 일환으로 창립 이래 가장 혁신적인 인사와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적십자사는 "1일자로 기관장급 인사를 실시해 서울 중앙, 서부, 울산, 경기, 강원, 제주 혈액원 등 6개 혈액원장과 부산, 대구 등 5개 지사 사무국장 등 11개 기관장을 교체했고, 간부급 인사 30여명을 책임 보직에서 제외시키는 등 혁신 인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적십자사는 또 "본사 직제도 기능별로 통합해 5국1실1본부 15과에서 2실3본부9팀제로 축소ㆍ운영하도록 했고, 특히 혈액 사업 조직의 경우 우선 혈액사업본부를 혈액기획국, 헌혈증진국, 혈액안전국 등 3개 부서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속 들여다보니 '혁신 인사'가 아니라 '부실 인사'**
하지만 이런 파격적으로 보이는 적십자사의 조직 개편과 인사는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인사를 통해 혈액 사업 조직의 전문성 제고가 이뤄졌는지 의문시되는 점이다. <프레시안>이 적십자사 인사발령 공문을 확인한 결과 전문성 제고와 역행하는 인사가 다수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적십자사는 장호원 혈장분획센터 원장에 이 아무개 전 회원홍보국장 겸 남북교류국장을 임명했다. 이 아무개 원장의 경우에는 20년 이상 적십자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2년여 혈액원에서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혈액 업무에 문외한으로 확인됐다.
서울 서부 혈액원 원장으로 임명된 전 아무개 前전북지사 사무국장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 사업 부문에 장기 근무한 경험이 없는 간부가 혈액원 원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한편 혈액사업본부 부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이 아무개 사무국장은 반대로 일반 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대전ㆍ충남지사 사무국장으로 임명돼 이번 적십자사 인사 기준이 무엇인지 의심케 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국무회의에 보고한 '혈액안전관리개선 종합 대책'에서 "비전문가 중심의 혈액사업이 수행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인사권이 사무처에 있어 구호ㆍ봉사 등 일반 사업 부문에 장기 근무한 경험이 없는 간부가 혈액원장에 임명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복지부는 또 "혈액원장, 부원장 중 1인은 혈액 전문 의사로 충원하고, 일반 사업 조직으로부터의 순환 인사는 전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해야 한다"고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복지부의 개선 대책과는 정반대 인사를 적십자사에서 진행한 것이다.
***단 2인으로 전국의 혈액 수급 관리하겠다니…**
혈액 사업에만 국한해 볼 때 조직 개편 역시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문제점이 눈에 띈다.
적십자사는 혈액사업본부를 혈액기획국, 헌혈증진국, 혈액안전국 등 3개 부서로 운영하기로 하면서 헌혈증진국 내에 수급관리팀을 만들었다. 수급관리팀에서 전국 16곳 혈액원의 혈액을 통합 관리해 전국의 필요한 혈액을 적시에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급관리팀은 팀장과 팀원 1인으로 총 2인으로만 구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단 2인으로 전국의 혈액 수급을 관리하겠다는 발상이다. 실제로 적십자사는 과거에도 이와 같은 혈액 수급관리를 시도했다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 폐기한 적이 있다.
***부실 혈액 관리도 계속돼, '부적격자, 15~16세 청소년에게 수혈'**
사정이 이렇다보니 혈액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부실 혈액 관리도 계속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라라당 고경화 의원이 적십자사로부터 받은 의정 활동 자료에 따르면, 감사원과 검찰의 적십자사 부실 혈액 관리에 대한 지적이 계속돼온 지난해 헌혈을 할 수 없는 15~16세의 청소년으로부터 채혈을 받은 경우가 40건이나 발생했다. 혈액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16세 미만인 자 또는 65세 이상인 자는 3백20㎜ 전혈 채혈을 금지"하고 있고, "17세 미만인 자 또는 60세 이상인 자는 4백㎜ 이내 혈소판 성분 채혈"을 금지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유통으로 이어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AIDS(후천성면역결피증), B형간염, C형간염 양성 반응을 보여 헌혈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는 이들에게서도 계속 헌혈을 받아온 것이다. 이런 경우는 2004년에만 AIDS 68건, B형간염 2백31건, C형간염 19건 총 3백18건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것은 수천건에 이르는 2003년에 비하면 크게 나아진 것이나, 적십자사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이 요구됐던 2004년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크게 부족한 것이다.
부적격 혈액 폐기 현황을 살펴보면 부주의로 수혈을 많이 받았거나(양 과다), 수혈을 받은 뒤 기한이 경과돼 시민들이 헌혈한 소중한 혈액을 폐기한 경우도 있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2004년만 놓고 봤을 때, '양 과다'의 경우는 총 5백39건, 기한이 경과돼 폐기한 경우는 5만9천36건이나 됐다. 잇따른 혈액 사고와 그에 따른 언론 보도로 헌혈이 줄어든다고 적십자사가 푸념하는 동안에도, 시민들의 소중한 혈액이 폐기돼온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복지부 혈액정책과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서는 혈액관리법을 상반기 중 개정하면서 일정 급수 이상 간부에 대해서 일반 사업 부문과 혈액 사업 부문의 인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강제하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와 별도로 전문가 확충에 공을 들이고 있으니 조만간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신경을 아주 많이 쓰고 있는 데도 부실 혈액 관리 사례가 상당히 많은 것을 인정한다"며 "각 혈액원별로 계속 모니터링을 해 책임을 추궁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크게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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