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기획자'로 불리는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을 개발도상국 지원을 목표로 하는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하자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가 "과거에 똑같은 사례가 있었다"면서 역사의 전철이 되풀이될 것으로 전망했다.
***WP,"월포위츠는 제2의 맥나라마될 것"**
WP는 23일(현지시간) '선례가 된 총재'라는 기사에서 "폴 월포위츠가 '제2의 맥나라마'가 될 것"이라면서 "남은 문제는 그가 회고록을 쓰고 난 뒤 영화까지 제작되느냐일 뿐"이라고 전망했다. WP가 '정확하게 닮은꼴'로 지목한 로버트 맥나마라는 1960년대 후반 미국 국방장관으로서 7년간 베트남전을 진두지휘한 뒤 68년 세계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이다. 이라크전을 주도한 월포위츠 부장관과 경력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WP는 월포위츠가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된 상황이 맥나라마가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됐을 때가 얼마나 유사한지 다음과 같은 자료를 제시했다.
"유럽의 일부 동맹국들은 미국 대통령의 세계은행 총재 지명자에 떨떠름해 하고 있다. 그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전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분노감마저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이번 전쟁에 반대해온 이들 국가에게 자신이 이제는 은행가이자 그들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는 수임자라는 것을 확신시켜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는 월포위츠가 아니며 '전쟁'도 이라크 전쟁이 아니다. WP에 따르면 이 자료는 지난 1967년 린든 B.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이 세계은행 총재로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을 지명했을 때 뉴욕 타임스의 앨빈 셔스터 기자가 런던발로 띄운 기사로 '그'는 맥나마라이고 '전쟁'은 물론 베트남전을 가리킨다. 당시 유럽국가들은 맥나라마가 총재가 되면 갈등이 증폭될 것으로 우려했다.
WP는 "부시 대통령이 월포위츠를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했을 때 그가 이라크 전쟁 기획자라는 점에서 유럽국가들이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이제는 수그러들었고 모든 회원국들이 지명에 동의할 것"이라면서 "이제 남은 문제가 있다면 그가 회고록을 쓰고 난 뒤 영화까지 제작되느냐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맥나마라는 베트남전 관련 다큐멘터리로 지난해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포연 속의 전쟁>'에 주연으로 출연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도 전날 월포위츠를 맥나라마와 비교하며 "맥나마라 전 장관의 전례에 비춰볼 때 월포위츠 부장관의 총재 선임이 세계은행의 영향력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지, "월포위츠 지명은 세계은행의 미국 외교정책 전초기지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도 그의 애칭에 착안한 '문 앞의 늑대'라는 최근호 칼럼에서 "베트남전 책임자였던 맥나마라 전 장관은 총재 재임 당시 친미 국가에 대한 선별적 자금지원과 무분별한 예산집행으로 세계은행의 재정능력과 신뢰도를 크게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면서 월포위츠도 이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을 우려했다.
월포위츠 부장관도 맥나마라처럼'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미국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빈국 지원 문제에 연계시킬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월포위츠 부장관은 포드자동차 사장을 역임했던 맥나마라 전 장관보다 경제를 다뤄 본 경력이 더 부족해 정치 이데올로기에 편향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월포위츠의 지명은 부시 대통령이 세계은행을 장악해 미국 외교정책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도 22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월포위츠의 지명이'세계은행'을 사실상'미국은행'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실제로 체니 미 부통령은 23일자 WP와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과 미국의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민주주의 확산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세계기구를 장악한 뒤 민간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월포위츠를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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