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일 한국을 방문했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한국에 오자마자 주한미군 지하벙커부터 방문해 '모의 전쟁훈련'을 체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아울러 미국정부는 북한에 대한 단계적 인센티브 제공을 주장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미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낳고 있다.
***NYT, “라이스, 한국 오자마자 지하 미군벙커부터 방문"**
<뉴욕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라이스 미국무장관이 19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한미연합사 지휘통제소였다는 점에 주목하며, 국방장관이 아닌 국무장관이 이례적으로 방문국의 미군 군사시설부터 방문한 것은 라이스의 변함없는 대북 붕괴 의지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NYT 보도에 따르면, 라이스 장관은 이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주한미군 블렉호크 헬기를 타고 즉시 북한과의 전쟁 발발시 전쟁 지휘소로 이용되는 한미연합사 지휘 통제소 '지하 벙커'를 방문, 1백여명의 “자유의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인 앞에서 연설을 했다. 당시 이곳 지휘통제소에서는 한-미 연례 연합훈련에 따라 ‘워 게임(War Game)’이 실시되고 있었다.
‘미군의 한반도 능력을 강조한’ 이번 방문과 관련, 라이스 보좌진들은 NYT와의 인터뷰에서“북한이 6자회담에 계속해서 불참하고 있는 데 대해 미국 정부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미국이 유사시 군사력을 동원한 북핵문제 해결 의지를 강력히 시사했다는 것이다.
라이스 장관과 함께 방문했던 한 미 고위관리도 “라이스 장관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다루는 대화가 ‘만족스러운 결론’으로 가기 위한 시간이 됐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 것”이라고 지휘통제소 방문 의미를 분석했다.
NYT도 “라이스 장관이 한 국가를 첫 방문하는 일정에서 외교적 행사가 아닌 군사 관련 시설을 방문한 이같은 행보는 외교적 의전상 이례적”이라면서, 특히 방문지가 한국군 시설이 아닌 미군 시설이라는 데 주목했다. 아울러 라이스 장관이 ‘지하 벙커’를 방문한 것에 대해서도 과거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국방장관들이 군사시설이 아닌 판문점을 방문한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美, 한-중 대북 인센티브 제안에 좌절감”**
NYT는 또 부시정부가 북한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보도해 주목된다.
NYT는 “부시 정부는 북한과의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지만, 6자회담 참가국인 중국과 한국이 북한에 더 많은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고 제안하는 데 대해 점점 더 좌절감에 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현재 한-중 양국은 핵무기 프로그램 개발계획 해체 초기 단계부터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마지막 단계에서만 그러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NYT는 이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은 올 해 여름이 지나갈 때까지 유엔 안보리에 북핵문제를 상정하는 방안 등 다른 수단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기다릴 것 같지 않다”며, 북한의 회담 복귀가 더 지연될 경우 미국이 유엔 안보리를 통해 제재 성명 등의 강경압박책을 구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네오큰들 인내심 바닥 나"**
NYT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인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NYT는 “북한 상황에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는 이들은 내부적으로는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북한과의 협상 자체가 현명치 못한 '주의 분산'이라면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요컨대 협상 대신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NYT에 따르면, 의회내 일부 보수주의자들도 탈북자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 부시 정부에 북한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는 시도를 하라고 압력을 가중하고 있다. 라이스의 동아시아 행보는 바로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제스처일 가능성이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NYT는 그러나 “라이스 장관 등은 그러나 이들(네오콘이나 의회 보수주의자들)에게 '현재 북한에 대한 인내심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나 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것'이 북한에 대한 최후 통첩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는 북한이 거부할 경우 미국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 이유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요컨대 미국이 북한이나 한국-중국 등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그렇다면 과연 '다음 행동'을 무엇으로 할 지에 대해선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라이스가 방한해 우리나라 당국자들에게 "언제까지나 북한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 미국내 기류는 점차 대북강경론이 득세하는 분위기여서 북핵 해법을 둘러싼 한-미 갈등은 점차 심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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