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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뚱뚱했을까"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34> 겨울잠과 갈색 지방조직

이제 긴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아침저녁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동장군이 돌아오지는 않겠지요. 곧 따뜻한 바람이 불 테고, 긴긴 겨울잠에 들어갔던 개구리며 반달곰들도 저마다 기지개를 켜고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겨울잠이란 참 신기한 현상입니다. 동화 속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1백년간이나 잠을 잤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잠만 잔다면 단 몇 주도 버티기 힘들 테니까요. 잠자는 것은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비하는 생존 형태 중 하나이긴 하지만, 자는 동안에도 숨은 쉬고 심장은 뛰고 체온은 정상범위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는 소모되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충분한 영양 공급이 없다면 오랜 기간의 잠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이런 현상을 대비해 가을이 되면 몸에 지방을 잔뜩 축척한 채 잠이 들지요. 그렇다면 공주는 1백년간의 잠을 잘 만큼 충분한 지방 조직을 몸에 축적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아주 뚱뚱했어야 할까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뚱뚱했을가?**

자, 다시 겨울잠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겨울에는 먹이 구하기도 힘들고 체온 유지도 힘들어 자칫 굶어죽거나 얼어 죽을 수 있으니 아예 깊은 잠을 자면서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개구리, 뱀 같은 변온동물은 겨울이 되면 주변 기온이 낮아져 체온을 유지할 수 없으니 겨울잠을 자는 것이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겠지만, 왜 늘 체온이 따뜻해서 굳이 겨울잠을 잘 필요가 없는 곰, 다람쥐, 박쥐 등도 겨울잠을 잘까요? 혹시 이들의 겨울잠 메커니즘을 알게 되면 사람도 겨울잠처럼 길고 긴 잠을 자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봤던 냉동인간도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텐데 말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동물들은 어떻게 겨울잠을 자는 것이고, 또 어떻게 그렇게 긴 잠을 자고도 별다른 이상 없이 깨어날 수 있는 걸까요?

항온동물 혹은 온혈동물이라고 불리는 조류나 포유류는 원래는 주변 온도에 상관없이 일정한 체온이 유지되어야 하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겨울잠을 자는 항온 동물은 겨울잠 동안에는 체온과 심장 박동이 극도로 저하됩니다.

다람쥐를 예로 들어보면 다람쥐는 평소에는 체온이 38도이고 1분당 심장박동수가 1백50회나 되지만, 겨울잠 기간에는 체온을 2~8도까지 떨어뜨리고, 심장박동도 1분에 5회로 급격히 떨어뜨려 거의 죽음에 가까운 가사상태로 돌입한답니다. 이렇게 체온과 심박수, 호흡수를 거의 0에 가깝게 내려놓는 것으로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되지요. 따라서 같은 양의 체내 지방으로도 평소보다 훨씬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다람쥐나 곰은 이것이 가능하지만 같은 항온동물인 사람의 경우, 정상 체온은 36~37도 정도로 이 온도보다 2~3도 정도만 높거나 낮아도 신체에 이상이 오고, 체온이 25도 이하로 떨어지면 생명을 잃기 때문에 다람쥐의 이런 급격한 변화는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런 다람쥐의 신기한 메커니즘을 흉내 낸 것이 초저온 수술이랍니다. 초저온 수술이란 체온이 일정 온도 이하로 떨어지면 혈류의 흐름이 거의 멈춰 피가 거의 흐르지 않는다는 데서 착안한 방법입니다. 예전에 제가 동물해부학 조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의 경험에 미뤄보면 일단 죽은 이후에는 커다란 혈관만 조심하면 피한방울 나지 않게 해부하는 것이 가능하답니다.

수술을 받을 때는 반드시 출혈이 동반됩니다. 때로는 수술 자체보다 출혈이 심해서 더 위험한 경우도 있구요. 초저온 수술이란 인간의 체온을 25도까지 떨어뜨리면 혈류의 흐름이 거의 멈춰서 수술할 때 피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데서 착안한 것으로, 인위적으로 체온을 떨어뜨린 상태에서 수술을 집도합니다. 이 경우 출혈량이 극도로 적어지기 때문에 수혈에 대한 부담감은 덜하지만, 인간은 체온이 낮은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1시간 내에 수술을 끝내야 하는 단점이 있답니다.

***겨울잠의 비밀, '갈색 지방조직'**

그렇다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어떻게 해서 25도는 고사하고 거의 0도에 가깝게 체온을 떨어뜨리고도 봄이 오면 원래의 따뜻한 피를 되찾을 수 있는 걸까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있길래? 답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방조직에 있답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조금 특수한 지방조직을 가집니다. 삼겹살에 붙은 돼지비계를 생각해 보세요, 흰색이죠?

원래 보통 지방조직은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흰색이어서 백색 지방조직이라고 불리는데,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가을에 살을 찌우면서 물론 백색 지방조직도 늘어나지만, 갈색 지방조직이라고 불리는 지방도 늘어납니다. 이 지방조직은 지방조직이긴 한데, 다른 지방조직과는 달리 혈관이 매우 많이 분포해 있어서 눈으로 보기에 갈색으로 보이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바로 이 갈색 지방조직이 겨울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입니다. 갈색지방조직은 지방분해와 지방산 산화 능력이 매우 뛰어난데, 이는 지방을 태워 열을 내는 단백질인 UCP(uncoupling protein)가 매우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와서 기온이 따뜻해지면, 동물의 몸속에 있던 갈색지방조직이 가장 먼저 활성화되는데요, 갈색지방조직 속에서 잠자고 있던 모든 UCP가 일시에 가동되어 주변에 있는 지방을 순식간에 분해해 열을 발생시킵니다.

이렇게 발생된 열은 갈색 지방조직 속에 풍부하게 분포된 혈관을 타고 빠른 속도로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갈색 지방조직에서 따뜻해진 피는 곧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이젠 동물들은 다시 따뜻해진 피와 몸을 갖고 지방은 다 태워서 홀쭉해진 몸으로 동굴 속에서, 혹은 나무구멍 속에서 빠져나오게 된답니다. 보통 포유동물에게서는 갈색 지방조직은 태아였을 때만 존재하고 성체가 되면 거의 없어지지만,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이 조직이 매우 발달되어 있답니다.

만약 인간에게도 갈색 지방조직이 존재한다면, 인간도 겨울잠을 잘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화상의 어느 순간, 우리는 겨울잠을 자는 대신 겨울에도 털옷과 솜으로 몸을 감싸고 돌아다니는 삶을 택했는지도 모르지요. 대신 UCP는 현대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다시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지방을 태워 열을 내는 것이 목적인 UCP를 이용해 무슨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현재 UCP는 바로 비만 치료제 개발에 그 원리가 적용되고 있답니다.

비록 지금은 춥고 배고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까지 체력을 비축해두고 겨울잠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생존전략일 것입니다. 춥고 어려운 시기를 견디다보면 언젠가 풍성한 시기가 돌아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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