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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커피향의 유혹"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33> 카페인의 두 얼굴

***커피에 대한 짧은 추억**

어렸을 때, 옆집 아주머니들이 마실 오시면,
엄마는 늘 검은 가루가 가득 든 병을 꺼내곤 하셨습니다.

검은 가루에 설탕을 섞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아주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그런데 늘 아줌마들과는 그 검은 가루를 맛있게 드시면서,
나와 동생에게는 주지 않으셨어요.

왜 내게는 주지 않느냐고 물으면 엄마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져서 안 된다고 하셨죠.

그 검은 가루가 '커피'라는 걸 안 건, 나중의 일이었다죠.

제가 커피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건 고 3때로 기억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입에 대한 중압감은 엄청나서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저녁 9시에 끝나는 수업, 게다가 수업이 끝나면 바로 독서실로 가서 새벽 2시가 되어야 귀가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늘 잠이 부족하다보니 먹으면 잠이 덜 온다는 커피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었죠. 처음에는 진짜 머리가 나빠질까봐 주저하면서 조금씩 마시던 커피가 어느새 버릇이 되어, 이제는 커피가 없으면 글이 제대로 안 써질 지경까지 왔습니다.

***커피의 기원**

좋은 원두를 갈아 만든 향 좋은 커피를 마시는 우아한 여성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죠.

커피를 누가 처음 만들어 마셨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윌리엄 유커스가 지은 <커피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약 7세기경, 한 소년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온순했던 가축들이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으면 갑자기 흥분해서 날뛰곤 했거든요.

과연 열매의 어떤 성분이 그런 효과를 나타내는지 궁금해진 소년은 그 열매를 직접 먹어보았는데 의외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를 보았다고 합니다. 이에 사람들에게 이 빨간 열매를 근처 이슬람 사원의 승려에게 알렸고, 잠을 쫓고 정신을 깨우는 효과가 탁월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커피나무였다지요.

이 양치기 소년 이야기와 함께 이슬람교 승려인 셰이크 오마르가 지친 새가 커피 열매를 쪼아 먹고는 기운을 회복하는 것을 보고 커피를 처음 발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누가 처음에 발견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전설 다 이슬람 승려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아랍어의 '힘'을 뜻하는 'kaffa'가 커피(coffee)라는 단어의 기원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동안 커피는 아랍 지역의 기호 식품이었습니다. 유럽에 커피가 퍼진 것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였지만, 한동안은 '이교도의 음료'로 낙인찍혀 마시지 않았었죠.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기가 시작되고 문예 부흥운동이 시작되면서, 커피의 각성 효과는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교황 클레멘트 8세마저도 커피를 마셔본 후, 그 맛에 반해 커피에 세례를 내리고 커피 금지령을 해제했을 정도였으까요.

이 일을 계기로 커피는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던 커피하우스(Coffe House)는 가장 빨리 새 소식이 들어오는 사교 클럽, 예술가들의 아지트, 정치 당파들의 모임 등 여러 계층들의 사람들이 뒤섞여 정보를 교환하는 곳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엔 1895년(고종 32년)에 을미사변 때 러시아 공사가 커피나무의 열매를 가져와 고종황제에게 진상한 것이 최초입니다. 고종 역시 커피 맛에 반해 이를 즐겨서 커피 마시기는 곧 고관대작들의 고상한 취미 생활이 되었다죠.

***카페인에 대하여**

이제는 커피 없으면 도저히 못산다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우리 주변엔 커피가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커피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원두의 종류(아라비카, 로부스타, 리베리카 종 등), 생산지(자메이카산, 콜롬비아산, 브라질산, 인도네시아산 등), 가공방법(커피 원두의 분쇄 정도, 원두 종류의 배합 정도, 원두를 볶는 정도)에 따라 나뉘기도 하고, 향(헤이즐넛, 모카, 아이리쉬 등)과 만드는 방법(비엔나, 카페오레, 카푸치노, 버터커피 등)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나뉩니다. 이렇게 갖가지 커피가 저마다 다른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커피를 가장 커피답게 해주는 것은 바로 커피 속에 든 '카페인'입니다.

카페인(caffeine)은 알칼로이드*의 일종으로 순수한 카페인은 쓴 맛이 나고 물에 잘 녹지 않는 흰색의 가루입니다. 옆의 그림처럼 분자식으로 분자량 212.21의 화학물질이죠.

다들 아시다시피 커피는 잠을 쫓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각성효과가 있습니다. 커피의 각성 작용은 체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데노신(adenosine)**의 작용을 방해합니다.

아데노신은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조효소들의 성분으로 생명체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당한 선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즉 몸이 피곤하고 피로가 쌓이면 체내의 아데노신이 수용체와 결합하여, '피곤하니 잠을 자서 피로를 풀어라'는 명령을 보내는 것입니다.

카페인은 바로 이 지점에 작용합니다. 체내에 들어온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수용체에 대신 달라붙어 아데노신이 내는 효과를 약하게 하기 때문에 덜 졸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지요.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두 분자의 구조가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질소가 포함된 육각형과 오각형이 결합된 부위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아데노신의 수용체에 카페인도 붙을 수 있어서 각성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카페인이 우리 몸의 효소에 의해 분해 되면서 효과가 떨어지게 되는데요, 이 효소는 유전적으로 개인마다 그 양이나 분해 능력이 서로 다릅니다. 이 차이 때문에, 커피를 달고 살아도 잠만 잘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점심 때 마신 커피 한 잔 때문에 오후 내내 속이 쓰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답니다.

***카페인, 그 양날의 칼**

우리는 흔히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면 몸에 좋지 않고, 어느 정도 길이 들면 담배나 마약처럼 끊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는 커피를 먹지 못하게 하고, 의사가 환자에게 당부하는 첫 번째 말은 늘 '술, 담배, 커피 금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카페인이 그렇게 몸에 나쁜 걸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카페인이 든 커피의 판매를 중지시키지 않는 걸까요? 사실 카페인은 체내에서 양날의 칼처럼 작용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카페인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 보도록 하죠.

1. 뇌 : 카페인은 각성효과가 있어 피로함을 덜 느끼게 해주고 정신 집중을 도와줍니다. 또한 혈관 수축 작용이 있어 편두통을 없애주고 진통제와 같이 먹으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 각성효과는 일시적이며, 때로는 불면증을 일으키거나 잠을 깊이 들 수 없게 하여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2. 심장 :카페인은 맥박이 고르지 않게 뛰는 부정맥을 유발하거나, 혈압을 올리는 작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고혈압 환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겠죠?

3. 위장 및 소화기 : 카페인은 위액과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시켜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위에 염증이 있는 경우는 이를 악화시킬 수 있으며,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악화시켜 변비와 설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4. 간과 췌장 : 카페인은 간세포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으며,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췌장의 베타 세포가 카페인에 의해 자극되어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당뇨병에 덜 걸린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당뇨병이 발병한 후에는 인슐린에 대한 감도를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여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4. 비뇨기 : 카페인은 항이뇨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는 작용이 있어, 커피를 많이 마시면 소변량이 늘어납니다.

5. 뼈 : 카페인은 몸속의 칼슘이 소변으로 배출되게 만들어 골밀도를 떨어뜨려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칼슘 섭취가 충분치 못하면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은 뼈에 작은 바람구멍을 내는 것과 비슷하겠죠.

이 밖에도 카페인은 지방을 분해하는 작용이 있어서 바르는 다이어트 크림에 사용되고, 농작물을 갉아먹는 달팽이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해 달팽이용 살충제의 성분이 되기도 합니다. 또 스스로도 약간 진통 작용을 하기도 하고, 다른 진통제의 효과를 상승시켜주는 작용도 합니다. 이렇듯 카페인은 우리 몸 한 두군데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전신적으로 모두 작용합니다. 한마디로 약방의 감초처럼 안 끼는 데가 없는 것이죠.

이것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카페인이 아데노신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데노신은 우리 몸에서 여러 가지 작용을 합니다. 아데노신이 단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인산과 결합해 ADP, ATP의 형태로 존재하며 우리 몸에 구석구석 영향을 미칩니다. 카페인은 이 아데노신의 작용을 부분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생활 속의 카페인**

이렇듯 카페인은 다양한 작용을 합니다. 그중에서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성인과는 달리 카페인에 민감해 어른보다 더 커다란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FDA(식품의약품안전국)에 따르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부작용까지 고려하여 어린아이에게는 카페인 섭취를 제한하고, 어른 역시 하루에 100-200mg(커피 1~2잔) 이상을 먹지 말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린 자녀나 동생들에게 커피를 먹이는 어른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카페인이 반드시 커피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커피 외에도 녹차, 홍차, 코코아, 콜라 등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으며, 이들을 이용해서 만든 초콜릿이나 커피 우유, 초코 우유, 커피맛 아이스크림 등에도 무시 못할 양의 카페인이 들어 있답니다. 심지어는 카페인과 전혀 연관 없을 것만 같은 닥터 페퍼나 마운틴 듀 같은 청량음료에도 콜라만큼의 카페인이 들어 있답니다.

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먹는 음식들 속에 든 카페인의 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성인의 카페인 권장량이 1일 100~200mg인 것을 감안하면, 커피는 1~2잔, 콜라는 3~6캔, 녹차는 2~6잔을 넘지 않는 게 좋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무엇이든 과한 것보다는 적당한 것이 좋겠지요. 카페인 역시 그렇습니다. 실제로 카페인은 처음에는 진통제나 해독제로 쓰이던 약물이었거든요. 세상의 모든 약은 많이 쓰면 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카페인 역시 필요한 사람이 적당히 쓰면 약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쓰거나 섭취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잘못 쓰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거든요.

오늘 내 손안에 커피컵이, 혹은 콜라캔이 쥐어져 있다면 한 번 생각해보세요. 과연 내게 지금 카페인이 꼭 필요한지, 아니면 습관처럼 자판기의 버튼을 눌렀는지 말이에요.

* 알칼로이드(alkaloid)란 식물 추출물 가운데, 질소를 함유한 알칼리성 유기화합물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식물염기라고 하는데 어떤 특정한 물질이 아니라, 식물에서 추출한 것 중 알칼리성을 나타내면 알칼로이드라고 칭하는데, 이 알칼로이드 중에는 동물의 몸속에 들어가면 특이한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많다. 대표적인 알칼로이드에는 양귀비에서 추출한 마약계의 대표인 모르핀, 강력한 진통, 환각 효과를 갖는 코카인, 말라리아의 치료제인 키니네,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 등이 있다. 대부분 이들은 효과가 강력하지만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것들이 많다. 독성 물질도 많아서 실제로 살충제나 독약의 성분이 되기도 해서, 아무래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동물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서, 혹은 동물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기 위해 진화시킨 화학물질이라는 설이 있다.

** 아데노신 : 분자식 CHON. 뉴클레오시드의 일종. 분자량 267.24. 퓨린염기의 일종인 아데닌이 D-리보오스와 결합한 것으로서, 디옥시-D-리보오스와 결합한 것은 디옥시아데노신이라고 한다. 아데노신에 인산이 에스테르결합된 것이 아데닐산이며, 아데노신과 리보오스에 3분자가 결합한 것이 아데노신삼인산(AT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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