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골프는 무죄" 판결, 비판 확산

네티즌 다수 "말도 안되는 판결" "뇌물상납 져주기골프 확산 우려"

억대 내기골프를 한 피고인들에게 하급심 법원이 "내기골프는 도박이 아니므로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정렬 판사, "골프는 실력이 결정하므로 도박 아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20일 게임당 고액을 걸고 수십차례 내기골프를 한 혐의(상습도박)로 구속기소된 이모(60)씨 등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2002년 12월 제주도의 한 골프장에서 각자 핸디를 정하고 18홀을 9홀씩 전후반으로 나눠 전후반 각각 1타에 50만원, 1백만원씩 건 데 이어, 전반전 우승자에게 5백만원, 후반전 우승자에게 1천만원을 주는 내기 골프를 쳤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5월까지 1년반동안 피고인 선모(52)씨는 26회에 걸쳐 6억원, 이씨등 나머지 피고인 3명은 합쳐서 32회에 8억여원 상당을 `판돈'으로 걸었다.

이들 가운데 돈을 많이 잃은 한명이 수사당국에 사기를 당했다고 고소했고, 검찰은 고소인까지 포함하는 이들 피고인에 대해 사기가 아닌 상습도박 혐의를 적용, 징역 2∼3년씩을 구형했다. 현행법은 '재물로써 도박을 한 자는 5백만원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하고, 상습법은 가중처벌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정렬 판사는 그러나 이날 판결문에서 "상습도박죄가 성립하려면 내기골프가 도박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며 "도박은 화투나 카드, 카지노처럼 승패의 결정적인 부분이 우연에 좌우돼야 하나, 운동경기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이 지배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끼치므로 운동경기인 내기골프는 도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운동경기에서 승패에 재물을 거는 경우까지 도박죄에 포함한다면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받는 포상금이나 프로선수가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거둘 때 추가로 받는 성과급도 도박으로 봐야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내기골프가 도박행위라면 홀마다 상금을 걸고 승자가 이를 차지하는 골프의 `스킨스' 게임도 도박이며, 더 나아가 박세리와 박지은 선수가 재물을 걸고 골프경기를 해도 도박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사회통념상) 귀족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는 골프를 하면서 다액의 재물을 건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지난해 양심적 병역기피자에 대한 최초의 무죄판결, 전국공무원노조 활동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 등을 내려 세간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뇌물상납 져주기 골프 급속히 확산될 수도**

이정렬 판사의 이같은 판결은 기존의 법원 판결이나 사회통념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이날 판결은 기존의 대법원 판결과도 정면배치된다.

대법원은 지난 2003년 9월 한타당 최고 40만원을 걸고 10여차례에 걸쳐 10억원대의 내기골프를 한 상습도박죄 혐의로 기소된 신안그룹 박순석 회장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사회통념도 내기골프는 도박죄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한 예로 인터넷포탈 네이버의 여론조사 결과, 21일 오전 8시반 현재 내기골프는 도박이라는 의견이 88.21%(1,275명)인 반면, 도박이 아니라는 의견은 9.75%(139명)에 불과했다.

특히 다수 시민은 "카드나 카지노 등은 우연이 결정하고, 운동경기는 실력이 결정한다"는 이 판사 주장에 정면반박하고 있다.

카드나 카지노 등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고도의 확률이 결정하는 까닭에 '전문 겜블러'가 존재할 정도로 실력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게임이며, 내기골프 또한 평소 실력차를 감안해 사전에 타수를 정한 뒤 공정한 상태에서 게임을 하는 만큼 그날 골퍼의 컨디션이나 기상요건 등 우연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 판사 판결이 단지 금액의 차이가 있을뿐 내기골프가 일반화된 현실을 판사 자신이 무의식중에 반영한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 이같은 판결이 확정될 경우 업자가 내기골프 형식을 빌어 공무원이나 정치인, 언론인들에게 돈을 잃어주는 '뇌물상납 져주기골프'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 판사 판결은 하급심인만큼 상급심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