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제화업체들과 대형 할인점 등이 상품권을 대량으로 팔면서 일반 상품을 판 것처럼 신용카드 영수증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거액의 탈세를 조장해왔다는 폭로에 이어, 한 제화업체의 경우 L그룹 등 대기업을 비롯한 수십개 기업에게 불법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수년간 수천억원의 탈세를 부추겨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특히 이 업체는 설, 추석 등 명절 때 직원들에게 무리한 상품권 판매를 종용해 직원들은 빚더미에 앉아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공익제보자들은 이 같은 내용을 각각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에 14일 오후 고발했다.
***"에스콰이어, 불법 세금 계산서 발행…수년간 수백억 탈세 조장"**
김승민(36)씨 등 4인은 14일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에 국내 대표적 제화업체인 에스콰이어를 각각 탈세 조장과 '거래 강제 행위 및 우월적 지위 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카드회사의 불법 행위를 공익제보해 동생과 함께 직장을 잃고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던 김씨는 공익제보자 연대 차원에서 에스콰이어 공익제보자 3인을 대표해 이번 고발에 참여했다.
이들이 밝힌 고발 내용에 따르면, 에스콰이어는 유가증권인 상품권의 경우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금계산서를 수년간 발행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에스콰이어는 상품권을 구매하는 업체들에게 물품대 등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이들 업체들이 국세청에 물품대 등으로 신고해 부가세를 부당 환급받거나 감면받도록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강남구 소재 S기업의 경우 2004년 9월1일 수원애경백화점 에스콰이어 매장에서 상품권 7만원권 1백매를 5백25만원에 구입하고, 2004년 10월 5일 품목란에 물품대로 기제된 세금계산서를 교부받았다. 에스콰이어에서 10여년 이상 일한 고발자들은 "연간 10억 정도의 상품권을 판매하면 그 중 4억원 정도에 대해서 세금계산서를 교부했다"고 폭로했다.
***"대기업 수십 곳 상품권 구입하고 세금계산서 받아가"**
이들은 세금계산서 사본이 확보된 5개 업체 외에도 L그룹, S자동차, H백화점 등이 신용카드 등을 이용해 상품권을 구입하고,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아간 정황도 폭로했다.
이들이 <프레시안>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L그룹 46억원어치, S자동차 14억원어치, J공사는 7억원어치, K닷컴 6억원어치, H백화점 3억원어치 등 확인된 금액만 수십억원어치의 상품권이 이런 방법으로 기업들에게 팔려나갔다.
김씨는 "이런 불법적인 방법으로 1년에 4백억원 정도가 판매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유가증권인 상품권이 세금계산서 교부금지 대상으로 법적으로 명시된 1994년부터 지금까지 에스콰이어 상품권 불법 판매를 통해서만 총 4천억원 정도가 판매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경우 수년간 수백억원의 세금이 새나간 것으로 봐야 한다"며 "에스콰이어 외에 다른 제화업체까지 고려한다면 탈세 규모는 수천억원대로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일은행도 동참, "상품권 구매시 세금계산서 발급"**
한편 이런 에스콰이어의 탈세 조장 행위에 시중 은행까지 적극적으로 가세한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제일은행은 에스콰이어와 2003년 10월 전략적 업무 제휴 계약서를 체결한 후, 상품권을 판매한 뒤 세금계산서를 에스콰이어로부터 받아 구매자에게 발행을 대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제일은행은 '상품권 구매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준다'는 내용의 광고가 실린 안내 책자와 홍보전단까지 발행했다. 제일은행은 안내 책자에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을 경우 경비처리가 용이하다"는 문구까지 넣어, 사실상 세금계산서 부당 발급을 통한 탈세를 적극 방조했다.
<사진 1> : 제일은행이 배포한 안내 책자와 홍보전단.
실제로 <프레시안>과 공익제보자들이 제일은행에서 10만원 상품권 15매를 구입한 결과, 제일은행은 세금계산서 발급용 인수증을 끊어주었다. 김씨는 "제일은행이 이런 행위가 불법인 줄 몰랐을 리 없다"며 "사실상 알면서 탈세를 조장한 것이기 때문에, 국세청에 함께 신고했다"고 지적했다.
<사진 2> : 제일은행이 끊어 준 세금계산서 발급용 인수증.
***탈세 방법 권유 책자까지 발행, 회사 차원 대응**
한편 이렇게 상품권을 카드로 판매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온 관행은 에스콰이어의 해명과는 달리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에스콰이어는 지난 2004년 가을 추석을 앞두고 '04년 중추 우수 사례 및 셀링 포인트'라는 책자를 발행했다. 상품권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본사에서 상품권 판매 우수사원의 판매 성공 사례 등을 적시한 이 책자를 보면, "세금계산서 품목란에 기존의 상품권ㆍ물품대 등이 아닌, 안전화ㆍ신사화ㆍ숙녀화ㆍ의류ㆍ지갑ㆍ벨트 등으로 기재한다"고 적혀 있다.
특히 에스콰이어는 이 책자에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약 2% 정도"라며 "업무 관련상 증빙서류는 국세청에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기록 보관하는 것"이라고 밝혀 직원들이 부담 없이 불법 행위에 나서도록 배려(?)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런 정황은 사실상 에스콰이어가 탈세를 조직적으로 조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에스콰이어는 지난 3일 <프레시안> 등을 통해 관련 의혹이 제기됐을 때, "회사에서는 금지하고 있지만 일부 매장에서 고객의 요구가 있을 때 불가피하게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었다.
***"회사 상품권 강매 강요에 빚더미 않아-가족에 손 벌리고, 사채까지…"**
에스콰이어는 불법행위를 조장하면서 직원들에게 무리한 상품권 판매를 종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은 개인별로 수억원의 빚까지 지면서 고통을 겪어왔다.
에스콰이어는 추석 등 명절 기간 동안에 직원 개인의 연봉을 초과하는 과다한 수준의 판매 목표 금액을 책정해 상품권 판매를 독려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도 직급별 상품권 평균 할당액은 본사의 경우 과장급 1억4천만원, 대리급 1억원, 주임급 8천만원 등이며, 매장의 경우 과장급 이상은 8억원, 과장급 이하는 5억3천만원, 주임급 4억1천만원 등 상식을 넘어선 액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에스콰이어는 본사 직원에게는 33%까지 할인해서 팔 수 있도록 하고 매장 직원은 할인율을 25%로 제한해, 매장 직원의 경우는 차이가 나는 할인율 8%만큼을 본인이 채워 넣도록 했다. 시중에서 에스콰이어 상품권이 최고 40% 할인돼 판매되는 것을 감안하면 직원들은 7~15% 정도 되는 금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출혈 할인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공익제보자를 비롯한 에스콰이어 직원들은 빚더미를 앉아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공익제보자들이 공정거래위에 고발하면서 공개한 에스콰이어 측에서 상품권 판매대금 입금을 종용하는 전화 통화 녹취록을 보면, "작년에도 누나들 카드로 몇천만원 입금하고…벌어놓은 돈, 원룸, 퇴직금도 날렸다"는 하소연을 상급자도 수긍하고 있다.
장모씨는 공정거래위에 낸 진술서를 통해 "본인 부담금이 너무 커 퇴직금을 중간 정산한 2천만원으로도 부족해 부모님 4천만원, 대출 7천만원, 친구 6천만원, 가족 카드 5천만원, 제3금융권(사채) 1천5백만원 등을 융통해 갚았다"며 "이 빚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집을 날릴 위기에 처해 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사진 3> : 상품권 판매대금 입금을 종용하는 전화 통화 녹취록.
***제화상품권 1조원은 어디로 사라졌나?**
한편 2004년 한나라당 김정부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연간 상품권 발행액은 7조원에 달하고, 이번에 의혹이 제기된 제화업체 상품권도 1조9천60억원이나 된다. 하지만 제화업체들의 재무재표상 상품권 판매액은 3천1백80억원에 불과했다.
상품권 회수율이 75% 정도임을 감안하면 1조원이 넘는 상품권이 일반 상품 판매 형태로 팔려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김씨는 "이번에 공익제보자들을 통해 에스콰이어가 고발됐지만, 다른 제화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국세청과 공정거래위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공익제보자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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