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이 58일간 세 번째 단식을 진행중이던 지난 7월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은 열 번째 '풀꽃상' 수상자로 '간이역'을 선정했다. 지율스님은 간이역을 대신해 7월23일 이 상을 수상했다. 풀꽃세상은 최근 열 번째 풀꽃상 수상자 간이역과 지율스님에 얽힌 사연을 모아 <간이역-느림으로 가는 정거장>(풀꽃세상 엮음, 그물코 펴냄)을 출간했다.
***"대기업-부자들 위해 농촌-노동자-환경 희생하는 나라"**
박병상 풀꽃세상 대표는 여는 글에서 "2004년은 시민들의 의사를 묵살한 정부가 자연에 대해 저지르는 폭력이 극명하게 드러난 한 해였다"며 지난 한 해를 평가했다.
그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핵폐기물처리장 강행,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고집을 꺾지 않은 정부는 기업도시라는 저인망으로 이 나라 민중의 자산을 대기업이 바닥까지 훑어가도록 눈물겹게 배려하고, 부자들의 질펀한 골프 놀이를 위해 삼천리 금수강산을 농약 흥건한 서양 잔디로 도배하려고 혈안"이라며 "이렇게 더 높은 바벨탑을 더 빨리, 더 많이 쌓아 올리고자 광분하는 만큼 농촌은 피폐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늘어나고 자연은 황폐해졌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풀꽃세상이 간이역을 열 번째 풀꽃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바로 그 속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느림을 상징하는 간이역을 통해 이제까지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속도에 치여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 행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풀꽃세상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한다'는 뜻에서 1999년부터 '동강의 비오리'를 시작으로 사람이 아닌 자연물에 '풀꽃상'을 시상해와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풀꽃상은 그 동안 '동강의 비오리', '보길도의 갯돌', '가을 억새', '인사동 골목길', '새만금 갯벌의 백합', '지리산의 물봉선', '지렁이', '자전거', '논' 에게 수상됐다.
풀꽃세상은 1998년 12월 스물세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초영(千草英) 씨의 어머니 화가 정상명 씨가 생전 그가 품었던 꿈을 기억하기 위해 제안한 것에서 시작했다.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이름도 '천 송이 풀꽃'을 뜻하는 천초영 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지율스님, "새들이 날아가는 법에서 배울 때 지속가능한 삶 가능해"**
이 책에는 지율스님이 2004년 3월에 출간한 <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펴냄)에서 담지 못한 단식 일기와 인터뷰 내용이 담겨 있다. 이밖에 지율스님의 단식과 고속철도, 간이역에 대한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리타 테일러 영남대 교수(영문과)의 글과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임철우 작가의 '사평역' 등 간이역을 소재로 한 시와 수필, 소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지율스님은 다큐멘터리 <곡선>의 인터뷰를 통해 천성산 반대 운동에 나선 자신의 생명ㆍ평화를 보는 시각을 담담히 털어놓아 눈길을 끈다. 지율스님은 지난 3일 1백일 단식을 중단하면서 "마른 땅에 생명의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그 영지가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생명ㆍ평화의 길에 계속 함께할 뜻을 밝힌 바 있다.
다음은 다큐멘터리 <곡선>의 지율스님 인터뷰 '새들이 날아가는 법'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새들이 날아가는 법(발췌)**
(전략)
학생들이 깨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기성세대보다는 그래도 학생들이니 미래세대에 대해 많이 안타까운 게, 요즘 아이들이 너무 자연을 잃어버리고 살아요. 자연을 잃어버린다는 게 땅강아지나 나비, 이런 것들을 못 봐서 잃어버리는 게 아니거든요.
자연이 주고 자연이 베푸는 영성을 잃어버리는 거지요. 정말로 푸른 하늘을 잃어버리는 것들이 얼마나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임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요.
가을 하늘을 어느 한 시인은 '손톱을 톡 튕기면 쨍하고 금이 갈 것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우리 어렸을 때 조회시간에도 운동장 땡볕에서 조회를 서다가 하늘을 보면 하늘이 파래서 막 빠져들곤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죠, 우리가 구태여 어떤 좋은 그림을 찾고 그러면 거기에 하얀 구름, 새털구름이 올라가, 그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존재, 우주에 대한 꿈, 여러 동화를 읽으면서 만들어가고요.
요즘 초등학교 1학년들 하교 시간에 엄마들이 골목에 가득 있는 걸 봐요, 유괴당할까 봐 애들을 집으로 데려가는 엄마들, 그런걸 보면 가슴이 메어지게 안타까워요. 제가 산의 나무 베어가는 것도 많이 안타까워하지만 우리 문화가 참, 어떻게 해서 잘못 들어오기는 한 것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가야 될까요.
잘못된 문화의 문제가 지금은 속도의 문제 같은 것들인데 산을 파괴하고 개발하는 것, 생명을 얘기하면서 소유를 얘기하는 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중심에 속도 문제가 있어요. 새들이 날아갈 때 보면 곡선을 그리면서 날아가지 일직선을 하늘을 날아가는 법이 없어요.
그리고 큰 맹금류들은 소용돌이마냥 빙빙 선회하면서 날지요. 그러니까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아까 얘기했듯이 거미줄을 보고 에너지를 느낀다고 하는 게 어떤 거냐 하면 거미는 원을 그리면서 거미줄을 쳐요. 점점 에너지가 퍼지는 쪽으로 넓어지면서 치는데, 그리고 하다못해 네모나게 거미줄을 칠 때도 있어요. 그리고 거미줄의 끝을 항상 갈라놓아요.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방법을 아는 거예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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