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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92년 김우중 '1천억 신당창당'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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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92년 김우중 '1천억 신당창당' 제의"

[화제의 신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이대환 저.현암사 간)은 ‘살아있는 인물’에 관한 전기문학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8백50여쪽에 달하는 이 책 5백50여쪽까지는 포철 회장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비화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가 공개한 '정치비사'다.

박태준(TJ) 명예회장은 81년 공기업인 포철의 회장이 되면서부터 그는 끊임없이 정치 입문을 요구받는다. 81년 전국구로 11대 의원이 된 이후 한 동안 잠잠했던 정치바람은 87년 6월 항쟁 이후 그가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소용돌이가 돼 그에게 몰아닥쳤다.

88년 다시 민정당 비례대표로 불려간 그는 90년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민정당의 2인자인 최고위원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그는 초장부터 ‘정치고수’들에게 놀아하면서 회한만 거듭 맛보아야 했다.

노태우와 김영삼(YS)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JP) 당시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 과정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TJ는 ‘내각제 합의각서’ 유출 파동이 수습되는 과정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지혜와 결단력이 부족해 보이고, 김영삼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 아량과 관용이 협소하다’고 느끼면서 YS와 정치적 악연을 쌓아간다. TJ는 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선출을 둘러싸고 YS의 양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정치적 보복’을 피해 4년간 해외에 유랑하는 신세가 된다.

***“김우중, ‘현금 1천억원으로 신당창당’ 제안하기도”**

대선을 앞두고 YS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을 때 신당 창당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있었다. 92년 10월3일 개천절 오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북아현동 박태준의 집을 찾아왔다. 김우중은 "현찰 1천억 원을 대겠으니 신당을 만들자"고 했다. TJ는 “이종찬 의원에게도 그런 제안을 했던 걸로 아는데, 대우자동차 팔아서 그런 돈 만들 생각이면 회사 재무구조부터 고쳐라”고 물리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대우를 좀 알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충고까지 덧붙였다.

며칠 뒤인 10월10일 포철 신임 경영진이 포항의 본사 국제회의장에서 취임인사를 진행하는 시간, 광양제철소 영빈관에서는 ‘박태준과 김영삼’의 담판이 진행중이었다. TJ의 마음을 돌리려는 YS의 마지막 노력이었다. 오전 10시에 만난 두 사람은 점심을 먹으며 2시에나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4시간의 회동 결과는 이미 알려졌던 TJ의 입장과 다른 것이 없었다.

저자는 이와 관련,“왜 YS는 자존심과 자부심을 숙이고 모든 유세일정을 취소하면서 허겁지겁 광양까지 내려왔을까”라며 궁금증을 제기한다. YS가 긴급히 광양으로 내려온 이유에는 틀림없이 ‘박태준의 탈당선언을 만류하고 번복시켜 연쇄탈당을 방지하겠다’는 계산이 포함되었으나,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추정이다. 저자는 그 근거로 <YS의 20년 금고지기 홍인길 최초.최후 인터뷰,돈과 권력과 인간>이라는 인터뷰에서 홍인길이 한 답을 내놓는다.

홍인길은 인터뷰에서“1992년 대선 때는 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했던 박태준 최고위원이 선거직전에 탈당해서 자금 모금이 힘들었죠?”라는 물음에 "돈도 돈이지만 마음고생을 많이했죠”라도 답했다. 요컨대 가끔씩 TJ에게 손을 내밀었던 YS가신들이 ‘철강황제’는 엄청난 비자금을 꼬불쳐두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고, 따라서 그의 자금력을 의식해 탈당을 막으려 했던 게 아니냐는 게 저자의 추정이다. TJ가 YS와 '최후의 오찬‘을 나눈 직후 JP는 자신의 측근 중 TJ와 가까운 구자춘을 골라 광양으로 급파했다. 여기에도 ’선거자금과 TJ‘를 엮으려 했던 흔적이 뚜렷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TJ는 구 의원 일행의 면담요청을 거절했고, 이에 구 의원은 김종필 최고위원의 메시지를 최재욱 실장에게 남겼다고 한다. 한 정치권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JP는 ‘TJ가 2백억원이 됐든 3백억원이 됐든 능력이 되는 대로 모아서 YS에게 가지고 가라. 그리고 잘못했다고 해라.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정치적으로 다친다’는 취지의 충고였다는 것이다. TJ는 이 충고를 무시했다.

***IMF사태직전 이뤄진 YS와의 재회**

이후 일본 등지에서 유랑 생활을 한 TJ는 15대 대선이 있는 97년 2월 귀국한 뒤 11월21일 YS와 5년만의 대면을 갖게 된다. 이날은 신한국당과 ‘꼬마 민주당’의 통합을 계기로 몸집을 더 불린 거대여당 ‘한나라당’이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합당의 전당대회를 열어 이회창과 조순을 각각 대선후보와 총재로 선출하고, 자민련은 서울 롯데호텔에서 중앙위원회를 열어 TJ를 총재로 선출한 날이다.

대통령이 베푸는 공식축하연에 야당연합의 한 축인 TJ가 김대중(DJ) 당시 평민당 총재와 나란히 청와대에 들어섰다. 저자는 TJ와 YS의 이날 만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TJ는 ‘만감’을 다스리고 YS와 마주섰다.
“여전하네.”(YS)
“요절난 줄 알았나?”(TJ)
미소를 보이며 악수를 하면서 주고 받은 농 속에는 뼈가 돋아 있었다.
그러나 이날 대통령이 손님들을 부른 목적은 외환위기사태 때문이었다. 식사 중 TJ는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된 임창열 부총리를 쳐다보았다.
“현재 외환보유고가 얼마나 되는 거요?”
그는 50억 달러에도 못미치는 액수를 말했고 연말까지 2백억달러를 갚아야 하고 다음해 1월 한 달만 또 1백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대답이다.
TJ는 “종금사를 22개나 더 늘리면서 외환관리를 준 것이 외환위기가 초래된 거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YS는 식사 후 갑자기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집어내고는 “지금부터 IMF 관리요청에 관한 회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열흘도 넘기지 못하고 국가부도사태를 맞이할 수밖에 없으니 대선 후보들과 정당 총재들이 IMF 관리체제를 수용하기로 한 국무회의의 결정을 이해하고 수용해달라는 공식요청이었다.
DJ는 “박 총재께서 이미 다 지적하셨는데, 회의는 무슨 회의를 한다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YS는 종이를 접지 않았다.
“그래도 형식은 남겨야지요.”

저자는 “국가경제가 풍전등화의 지경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YS와 TJ가 청와대에서 어정쩡하게 악수를 나눈 장면을 정가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표현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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