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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도외시한 청와대의 잇딴 '한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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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도외시한 청와대의 잇딴 '한건주의'

[기자의 눈] 국제사회에 '한국=친미 전위=아마추어' 각인

홍석현 중앙일보회장의 주미대사 내정 사실이 공식 발표되기까지의 과정이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기본적인 외교관례까지 무시하는 상황이 잇따라 벌어졌기 때문이다.

***첫번째 실수: 김 실장의 '입' 때문에 아그레망 받지 않고 내정 발표**

홍석현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 사실이 불거진 계기는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의 '입'. 김 실장은 16일 저녁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만찬 모임에서 "미국 지식인층의 한국 인식을 좋은 방향으로 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의를 표명한 주미대사 자리에 '빅카드'를 모색하고 있으며 이미 찾았다"고 말해 이때부터 각 언론을 바쁘게 만들었고, 곧 문제의 '빅 카드'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임이 확인돼 17일 조간부터 대서특필됐다.

김 실장의 발언에 가장 당혹해한 곳은 외교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 상대국의 아그레망(타국 외교사절을 승인하는 절차)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내정 사실을 밝히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주권 침해로까지 해석가능한, 있을 수 없는 외교결례였기 때문이다.

당초 외교부는 미국측으로부터 아그레망이 돌아온 뒤인 오는 24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통해 내정사실이 대서특필됐기에 외교부는 17일 아그레망을 받지도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내정 사실을 공식 발표해야 했다. 아무리 미국과 '사전협의'를 했고, 홍 회장의 '친미 성향'을 고려할 때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분명 외교결례였다.

이규형 외교부대변인은 이날 내정사실을 발표한 뒤 '대사 내정 사실을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일은 드문 일인데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언론에 이미 보도된 것이 아닌가"라고 답해 곤혹스런 모습을 보였다.

김 실장의 '한건주의 발언'은 당시 출입기자단과의 모임에 배석했던 청와대 관계자들도 당혹케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아서 미숙한 면을 보였다"며 당황해했다.

***두번째 실수: 청와대 관계자, "주미대사, 유엔사무총장 유력 후임후보"**

외교주무부처인 외교부를 눈살 찌푸리게 만든 '외교 실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홍석현 내정자가 사주로 있는 중앙일보는 17일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가 "신임 주미대사 내정자인 홍 회장이 2006년말 임기가 끝나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유력한 후임후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는 코피 아난 현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2006년 말 끝나며, 사무총장직은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 관례임에 따라 다음 순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나올 차례인 점을 고려할 때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특히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나 상임이사국에 들어가려는 국가는 총장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이 국제적 '상식'이어서 상임이사국인 중국,안보리 진입을 노리고 있는 일본, 인도 등이 배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수라키앗 사티라타이 태국 외무장관과 스리랑카 출신의 전 유엔군축담당 사무차장 다 나팔라가 공식적으로 입후보 의사를 천명한 상태다. 한 외교전문가는 "저 거명된 후보들은 '견제'를 받아 된 적이 없으며, '히든 카드'는 끝까지 숨겨야 하는 게 정석"이라며 청와대 관계자의 너무 앞서가는 발언을 비판했다.

더욱 문제는 최근 미국과 유엔간 '갈등'이다. 부시 미국정부는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온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을 사임시키기 위해 그의 비리를 조사해 흘리는 등 집요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유럽 등 대다수 국가들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며 아난에 강한 지지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 관계자 입에서 홍석현 회장의 '차기 유엔사무총장 유력후보' 발언이 나오니, 국제사회가 이라크에 미국-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친미 전위국' 한국이 미국을 대신해 '아난 총장 흔들기'에 나섰으며, 그 대가로 차기 유엔사무총장직을 노리는 게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노릇이다.

***美, "엘바라데이 축출후 후임으로 한국관리 2명 검토중"**

국제사회가 한국을 '맹목적 친미'로 인식할 수 있는 정황은 이같은 청와대 관계자 발언이 최근 미국이 축출을 추진중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후임으로 한국관리 2명을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직후여서 더욱 그러하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엘바라데이 사무총장 축출을 위해 도청을 했다"고 폭로하면서 "미 국무부는 몇 달 전부터 호주, 일본 브라질 외교관 이외 한국 관리 2명도 후보군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엘바라데이 축출 시도는 최우방인 영국조차 반대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국언론이 '한국관리 2명'을 엘바라데이 후보로 검토중이라는 보도에 이어 나온, 청와대 관계자의 '차기 유엔사무총장' 운운 발언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참여정부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중 하나가 "아마추어"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청와대 비서실장과 관계자 발언은 분명 '아마추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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