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국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과 고준위(사용후 핵연료) 핵폐기물처리장을 분리하는 안을 최종 확정했다. 상대적으로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감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했다.
***정부,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만 우선 추진하기로 결정"**
정부는 17일 오전 7시30분 총리공관에서 이해찬 총리 주제로 제253차 원자력위원회를 비공개로 개최하고, 중ㆍ저준위 핵폐기물과 '사용후 핵연료'를 분리해,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최종 확정했다.
정부는 이런 분리 추진 방침을 명확히 하기 위해 앞으로 마련될 신규 절차에 의해 선정될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 부지에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을 건설하지 않는 것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17일 오전 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용후 핵연료의 관리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 하에서 검토ㆍ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이번에 확정된 대책에 방사성폐기물 관리 사업 추진에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이헌재 경제 부총리, 오명 과학기술 부총리, 김병일 기획예산처장 등 정부위원과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등 민간위원 6명이 참석했다.
***구체적 계획 마련에는 실패, 1월중에 일정 제시**
한편 정부는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을 위한 절차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애초 정부는 영광, 울진 등 기존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지역 등 15곳을 선정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찬성률이 높은 지역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선(先) 여론조사, 후(後) 주민투표' 방식을 검토해 왔다. 이 경우 여론조사와 주민투표 과정에서 찬성측과 반대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민-민 갈등이 불가피하고, '부안 사태'와 같은 주민들의 대규모 반발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에서는 원자력 위원회 이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산자부가 마련한 정부안에 대해서 강한 우려를 표시해왔다. 이날 원자력 위원회에서 산자부의 안을 확정하지 못한 것에는 이런 우려가 일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희범 산자부 장관이 "마냥 공론화 단계에서만 머물 수 없기 때문에 2005년 1월말까지 (구체적인) 부지선정 절차를 발표할 것"이라며 "환경단체도 대안을 좀 제시해주면 좋겠다"고 환경단체를 겨냥해 구체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환경단체, "급할수록 기본부터 점검해야"**
하지만 이런 이희범 장관의 환경단체에 대한 불만 표시는 전형적인 관료적 발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2003년 부안 사태로 윤진식 전 장관이 경질되고, 2004년 한 해 동안 핵폐기물처리장 문제 해결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면 환경단체 말대로 '정부의 접근 방식 자체가 크게 잘 못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는 부안 사태 이후 일관되게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장하는 '2008년 포화설'이 다소 과장됐기 때문에 실제 포화될 시기(2010~2012년)를 고려해 벌 수 있는 2~3년 동안 공론화할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산자부를 비롯한 정부는 이런 제안을 계속 묵살해왔다. 결국 부안 사태 이후 1년의 시간을 낭비한 채, 이제는 장관이 나서서 환경단체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원자력 정책을 계속 감시해온 한 환경단체 활동가는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국내에 핵폐기물처리장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은 환경단체가 아니라 오히려 주무부처인 산자부라는 것이 정부의 무능력한 모습을 보는 국민 대다수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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