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사망했다고 그가 입원해 있던 프랑스의 군병원측이 11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프랑스 군 병원 및 측근, “아라파트 사망” 공식 발표**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의 페르시 군병원 대변인은 “아라파트가 이날 오전 3시 30분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라파트는 지난달 29일부터 병원에 이송돼 3일부터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이날 군병원측은 “무슨 이유로 혼수상태에 빠졌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서 아라파트의 병명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병원측은 "암이나 독살 혐의는 사실무근"이라고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인 사에브 에라카트 내각장관과 아라파트 최측근인 타예브 압델 라힘 보좌관도 AP 통신 측에 아라파트가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아라파트의 장례식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치러지며 장지는 그가 3년간 가택연금에 처해 있던 팔레스타인 라말라에 있는 자치정부 청사 무카타에 마련될 예정이다.
이로써 40년동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투신했던 중동의 ‘부도옹’은 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팔레스타인 국가영웅’ 아라파트, 독립국가 건설 끝내 못이뤄**
아라파트에 대한 평가는 평화주의자에서부터 테러리스트 등으로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그의 일생은 그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국가영웅,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또 아랍국들 사이에서도 높은 위상과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올해 나이 75살로 1929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가자지구로 가서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후 카이로대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학생연합'에 가입해 5년간 회장을 역임하고, 쿠웨이트로 건너가 ‘팔레스타인민족해방운동’(파타)를 결성했다.
1969년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이 된 후 1971년에는 '팔레스타인혁명군'의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74년 아랍정상회의에서는 PLO가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대표'로 인정받도록 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해 11월 UN 총회에서는 처음으로 비정부조직인 PLO의 대표로 연설했다.
그러나 1982년 이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PLO내 시리아파 반란군의 공격 등으로 팔레스타인내 민족주의 지도자로서의 입지가 한때 약화됐으나 그 후 PLO 지도부내 갈등이 해소되면서 지도력을 회복, 1988년 11월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NC)를 통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선포했다.
이후 대서방외교를 강화, 서방국가 60여 개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또한 1993년 9월에는 이스라엘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 자치원칙선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평화협정을 체결, 1994년 라빈 총리와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팔레스타인 첫 총선이 실시된 1996년 팔레스타인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2001년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으며 가택을 벗어날 경우 무차별 살해하겠다는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위협속에서 지금까지 버텨왔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아랍국가 지도층으로 받은 돈으로 수십억달러의 비자금을 마련해 가족들의 호사로운 생활비 등으로 써왔다는 부패 의혹에 휘말려 상당히 국민적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후계구도 주목. 압바스-쿠라이-하마스**
아라파트가 사망함으로써 중동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중동 정세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중요도, 후계자를 인정하지 않는 그의 정치 스타일로 인해 그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들어서는 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측에서는 본격적인 후계구도 논의가 일고 있으나 우선은 그동안의 구심점이 없어짐에 따라 정국 혼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측에서 후계자로 대두되고 있는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전 총리와 아흐마드 쿠라이 현 총리 모두 국민들 지지도에서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에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투쟁을 선도하고 있는 하마스 지도자들이 오히려 더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대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적 신뢰를 잃은 상황이고, 하마스는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이 암살된 이후 새로 등장한 지도자인 압델 라지즈 란티시까지 암살되면서 팔레스타인 국민들 사이에서 강한 지지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마스는 아라파트가 병상에 있는 동안에는 자극적인 언행을 자제했으나 포스트 아라파트 시대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하마스는 본격적인 정치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하마스는 이미 팔레스타인 투쟁을 이끌 거국 지도부 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스라엘, "아라파트는 세계적 테러리스트" **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측이 그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걸림돌로 아라파트를 지목해 왔다는 점에서 그가 사라짐으로써, 이들이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금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는 압바스와 쿠라이가 모두 비교적 온건파에 속하는 인물들이라 그러한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아리엘 새론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새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등장하면 로드맵 관련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팔레스타인 새 지도부는 테러리즘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10일 백악관에서 “새로운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건설되면 중동 평화를 위한 기회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에 따르면 샤론 총리는 10일 “아라파트의 장례식이 모두 끝난 뒤에 이스라엘은 다시 새로운 선전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해 이스라엘과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는 “아라파트가 사후에 국가영웅이나 자유전사가 되는 것이 두렵다”며 “우리는 그가 살인자였음을 알리는 힘든 활동을 시작할 것이고 그가 이스라엘과 미국 외교관 등 무고한 시민을 공격한 세계적인 테러리스트였음을 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동 정세가 아라파트 사후에도 여전히 혼미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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