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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와 수려선, 옛 길을 발굴한 일본 역사학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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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와 수려선, 옛 길을 발굴한 일본 역사학자 이야기

[김시덕의 직업적 책읽기]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

도도로키 히로시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 - 옛지도 따라 옛길 걷기>(한울, 2000), <수려선 철도의 성격변화에 관한 연구>(서울대 지리학과 석사학위 논문)

오늘은 지리학자 도도로키 히로시 선생의 명작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 - 옛지도 따라 옛길 걷기>(한울, 2000)를 소개한다. 아울러, 도도로키 선생이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수려선 철도의 성격변화에 관한 연구>를 함께 언급할 것이다.

현재 일본 규슈 오이타현에 자리한 리쓰메이칸 아시아 태평양 대학(立命館アジア太平洋大學)에서 근무하고 있는 도도로키 선생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석사학위 논문은 20세기 중기에 경기도 수원에서 여주까지 운행하던 철도인 수려선(또는 수여선)을 실제로 답사하고 지리학적으로 고찰한 <수려선 철도의 성격변화에 관한 연구> (☞논문 바로보기)였다. 그리고 같은 대학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20세기 전반 한반도 도로교통체계 변화 : "신작로" 건설과정을 중심으로> (☞논문 바로보기)를 제출했다. 이 두 개의 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도중인 2000년에 출간한 것이 오늘 소개할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 - 옛지도 따라 옛길 걷기>다. 현재는 안타깝게도 절판되었지만 근처의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실 수 있을 터이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의 9개 간선도로 가운데 한양과 경상남도 동래를 잇던 길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이용한 길이었고, 문경새재가 있어서 유명하다.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 통치를 지나고 현대 한국 들어 경부고속도로가 놓이면서, 영남대로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졌다. 이름만은 남아 있으되 실제로 특정 지역의 어떤 길이 영남대로였는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으나, 한국의 일반 시민에게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영남대로를 1999년 1~6월 사이에 답사하여, 각 지역의 어떤 길이 옛 영남대로에 해당하며 그 옛길 주변의 상황은 현재 어떠한지를 상세하게 보고한 것이 이 책이다.

▲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도도로키 히로시 지음) ⓒ한울

도도로키 선생은 이 책의 서문에서 옛 길을 답사하는 이유와 마음가짐을 밝힌다.

'역사를 보러 현장으로 간다' - 이런 스타일의 주말나들이가 한국에서 정착된 지는 오래되었다. 아마도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영향이 꽤 컸을 것이다. (중략) 그런데 답사를 다니면서 의문을 느낀 부분이 하나 있었다. 고찰(古刹), 석탑, 비석, 인물, 어떤 사건이 일어난 터... 그런 것만이 역사인가 하는 의문이다. 어떤 물건이나 장소는 역사를 보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단편적인 조각들만으로 역사를 엮어낼 수는 없다.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면서 역사를 생각해야 제대로 역사를 인식할 수 있게 되며, 또한 보물이나 기념물로 나타나지 못하는 문화유산들에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중략) 탑이나 절이나 특별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과 강이 전부 답사의 대상이 될 것이다.

▲ 젊은 시절의 도도로키 히로시. ⓒ페이스북 계정에서 발췌.

그리하여 도도로키 선생은 조선시대의 9개 간선도로 가운데 문경새재가 있어서 유명한 영남대로를 우선 걷자고 제안했다. 이 책에 의해 영남대로 답사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수많은 한국 시민도 이 길을 걷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영남대로 뿐 아니라 전근대 한반도의 수많은 옛길들이 답사의 대상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영남대로의 현재 모습을 한국 시민에게 알리고 이 길이 답사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도도로키 선생의 업적이 잘 기억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도도로키 선생의 석사학위 논문 테마인 수려선 답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수려선은 경기도 동남부의 물류, 특히 쌀을 수원까지 실어 나와 경부선으로 옮기고, 나아가 수원-인천을 잇는 수인선을 통해 인천항을 거쳐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부설된 철도다. 이처럼 수려선은 일제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 부설되었으나, 해방 후에도 경기도 동남부 지역의 주요한 교통수단으로서 이 지역 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기도 동남부 주민은 수려선이 수원역으로 들어가기 전의 하나 앞에 있던 화성역(본수원역)에 내려 못골시장, 남문시장 등에서 장을 보았다. 그리하여 화성역 일대는 조선시대의 신도시인 화성, 일본이 새로 만든 중심지인 수원역과 함께 삼각형을 이루며 오늘날 수원의 원형을 만들었다.

▲ 매류역 터. ⓒ김시덕

그러나 영남대로가 경부고속도로에 밀린 것처럼 자동차(버스)와의 경쟁에서 밀린 수려선은 1972년에 폐선되었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는 수려선이 여주에서 동북쪽으로 더 나아가 점동면을 거쳐 강원도 원주까지 이어졌다. 아울러 식민지 당시에는 경기선이라 불리던 안성선이 안성에서 동북쪽으로 장호원을 거쳐 역시 원주까지 잇고, 서울 동대문에서 출발해서 광진교까지 놓여 있던 경성궤도 철도를 천호를 지나 수려선의 이천까지 연장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만약 이들 계획이 모두 실현되었다면 경기도 동남부 지역은 철도가 사통팔달로 통하여 오늘날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 되었을 터이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전황이 급해진 일본 정부는 이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그리하여 경기도 동남부는 오늘날까지도 한적한 농촌 지역이자, 서울 마천의 특수전사령부, 성남의 국군 교도소 등이 옮겨져 온 한국 굴지의 군사 지역이 되었다. 최근 경강선이 놓이고 SK하이닉스 등의 대기업이 자리하면서 이천은 수 십 년 만에야 다시 한 번 부상할 기회를 잡았다.

폐선된 수려선은 철도가 지나던 수원 동부, 용인, 이천, 여주 등 각 지역에서는 간간히 기억되었지만, 경기도 동남부 바깥에서는 그 존재가 거의 완전히 잊혀졌다. 똑같은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에서 부설한 협궤철도였던 수인선이 1995년까지 운행하면서 "마지막 협궤열차"로서 비교적 많은 한국 시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협궤열차 수인선은 폐선된 뒤에 전철 수인선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옛 흔적이 거의 전부 사라진 반면, 수려선 노선은 분당선・용인에버라인・경강선 등에 부분적으로 계승되기는 했지만 상당수의 노선이 그대로 버려진 덕분에 상대적으로 건물, 철교 등의 흔적이 좀 더 많이 남아 있다.

▲ 수려선 노선도. ⓒ도도로키 히로시

도도로키 선생의 석사학위 논문을 읽고 수려선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2019-20년의 지난 2년에 걸쳐 수려선 노선을 답사했다. 그 중 화성역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을 위한 화성역 철도 관사(官舍)의 존재를 지난 해 여름에 알게 되어 찾아 갔다. 현지에서는 주택가 골목길 안쪽에 있는 길다란 건물이 관사라는 사실이 기억되고 있었고 수려선 관련 사진도 골목길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관사 건물이 자리한 수원 팔달구 인계동의 외부에서는 그 존재가 거의 잊혔고, 외부의 철도 애호가들이 이 건물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에는 이 지역 전체가 재개발 대상 지역으로 지정된 뒤였다. 지난 해 말에 답사했을 때에는 이 관사 건물 주변 지역 전체에 펜스가 둘러쳐진 상태였다.

또, 이천과 여주 사이에 있던 매류역의 흔적을 답사했을 때에는 철도 역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역전 수퍼' 벽에 매류역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가게 옆에는 수려선이 운행하던 시절의 마을 모습을 그리워하는 주민들의 기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도도로키 선생이 수려선 폐선 노선을 답사한 1990년대 말은 이미 폐선된 뒤로 20여년이 흐른 상태였고, 내가 답사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20여년이 흐른 뒤였지만, 아직도 주민들은 수려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수려선이 운행하던 시절의 사진과 수려선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기억이 경기도 메모리 '수려선 - 지금은 잊혀진 협궤열차 이야기'에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들어가보셔도 좋겠다. (☞바로보기)

▲ 매류역 역전 수퍼. ⓒ김시덕

외부에서는 거의 철저히 잊힌 수려선이 경기도 동남부 각지에서 희미하게나마 기억되고 있는 모습을 답사에서 확인할 때마다 감동하고, 수려선을 다시 한 번 한국 시민에게 알린 도도로키 선생의 작업에 감사한다. 도도로키 선생은 19세기 말에 한국 서지학을 정립한 <한국 서지 Maurice Courant>의 모리스 쿠랑, 한반도의 산 구석구석에 자리하여 지금도 한국 시민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산신(山神) 문화를 정리한 <산신-한국의 산신과 산악 숭배의 전통 Spirits of the Mountains>의 데이비드 메이슨 선생 등과 함께 그 업적이 기려져야 한다. 이 글의 마지막으로, 영남대로를 주파하고 동래성에 도착한 도도로키 선생의 심정을 옮긴다. 이 글은 모든 시민 답사가의 공통된 심정일 터이다.

성취감, 만족, 해방감. 동래까지 오면 그런 느낌들이 저절로 온 몸을 지배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동래성 위에 서 있는 내 마음에는 그런 감정이 티끌만치도 없다. 생각은 단 한 가지. 이제 더 이상 걸을 길이 없다는 것. 아무리 더 가고 싶어도 앞에는 부산 시가지 그리고 현해탄 바다뿐이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영남대로를 다니는 게 생활화 되어버린 나는 다음 여정이 없다는 사실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내 마음은 벌써 다른 옛길을 찾아나선다.

오늘 소개한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는 절판되었지만, <도도로키의 삼남대로 답사기> (성지문화사, 2002)는 아직 판매되고 있으므로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 <도도로키의 삼남대로 답사기>(도도로키 히로시 지음) ⓒ성지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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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문헌학자, 전쟁사 연구자, 서울답사가. 작게는 시군구(市郡區)에서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집단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직업적으로 책·논문·기사를 읽는 중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 좋은 글을 발견할 때마다 서평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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