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라지면 고릴라에게 희망이 있을까?"
세계의 눈을 붙들어 맺던 미국 대선이 끝났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4년 더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의 맹주 역할을 하게 됐다. 미국인의 선택과는 별개로, 그의 재선을 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4년 동안 그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비롯한 전 세계인에게 많은 상처를 남긴 탓이다.
이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그를 조롱하는 온갖 시도들이 있어왔다. 부시 대통령의 표정을 그와 너무나 닮은 침팬지의 표정과 1대 1로 보여주는 사진은 그런 조롱 중 압권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여기 소개하는 고릴라 '이스마엘'의 따끔한 충고를 듣고 보면, 부시 대통령을 침팬지와 비교하며 낄낄댔던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도대체 인간은 고릴라 또 침팬지만도 못한 동물이 아닌가 싶어서다.
<사진 1> 부시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그의 표정을 침팬지의 그것과 비교한 사진. 고릴라 이스마엘은 도대체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그를 침팬지와 비교하는 것조차 가당치 않다는 따끔한 충고를 던진다.
***"인간, 너희는 문명화된 체제의 포로야"**
"너희는 문명화된 체제의 포로야. 왜냐하면 그 체제는, 너희가 살기 위해서든 많든 적든 세상을 계속해서 파괴해야 한다고 강요하기 때문이지."
여기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고릴라가 있다. 이름은 이스마엘. 기독교 전통에서 모든 종족의 조상으로 추앙받는 아브라함의 버림받은 서자의 이름을 가진 이 특별한 고릴라는 20세기 내내 인간들을 지켜봤다. 긴 관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이 가망 없는 종족이 더 이상 지구를 망치는 것을 두고볼 수 없다'는 것. 이제 이스마엘은 잊혀진 지구의 지배자, '비인간'을 대표해 '지구를 어찌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르침을 설파한다.
이스마엘은 '세계는 인간이 정복하고 통치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의 통치하에서 낙원이 되어야할 세계에 "전쟁과 야만과 가난과 불의와 부패와 폭정, 기아와 압제 핵 확산과 오염" 등 온갖 문제가 넘쳐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현실은 이렇다. 인간이 낙원을 지향하면 지향할수록 세계는 더 망쳐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세계를 덜 망치는 삶인지를 알지 못한다. "파국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벗어날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인 것이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문명 비행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모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것을 인간은 '문명'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
"처음 페달로 날개를 움직이는 비행선을 만든 사람이 있어. 비행선을 타고 절벽에서 뛰어내린 그는 공중에서 느끼는 자유에 황홀감을 느껴. 그리고 절벽 아래 부서진 비행선을 비웃지. '왜 저 비행선들은 공중에 날지 않고 바닥에 앉아 있을까', 하지만 이 비행사는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낙하하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여전히 그 비행사는 '이 비행선은 나를 이렇게 멀리까지 안전하게 태워왔어. 그저 하던 대로 하면 돼."
고릴라 이스마엘은 바로 인간이 이 비행사와 '똑같은 처지'라고 조롱한다. 1만 년 전 '문명의 비행'을 시작한 인간들은, 단지 공중에 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마치 비행 중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절벽 밑에는 마야인, 호호캄족, 아나사지족 등 같은 인간이 절멸시킨 잔해들이 산재해 있다. 결국 '문명의 비행'에 성공했다고 믿은 인간들도 얼마 안 돼 비슷한 처지에 놓일 뿐이다.
"비행선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데 있어서 시행착오는 그리 나쁜 방식이 아니지. 하지만 문명을 건설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어서, 시행착오는 불길한 방식일 수 있지."
***"다른 생물들은 절대 하지 않는, 인간만이 하고 있는 네 가지 짓"**
왜 인간은 이런 '파국으로 가는 비행'을 계속하고 있을까? 인간이 살 길은 무엇일까? 이스마엘에 따르면, 인간은 지구 '생명 공동체'의 다른 생물들이 전혀 하지 않는 네 가지 짓을 하고 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경쟁상대를 절멸시킨다. 야생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이야. 다음, 그들은 자신들의 먹이를 위해 경쟁자의 먹이를 체계적으로 파괴해. 세 번째, 인간들은 경쟁자가 먹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 마지막으로 야생에서 사자는 영양을 죽여서 먹지만, 내일을 위해 저장하려고 영양을 한 마리 더 죽이지 않아."
이렇게 지구 생명공동체의 법칙을 인간이 따르지 않는 한, 생명공동체의 연쇄적인 파괴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잘난 인간'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인간이 사라지면 고릴라에게 희망이 있지만, 고릴라가 사라지면 인간에게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고릴라 이스마엘>은 인류에게 약간의 시간을 구해다 줄 것이다"**
이 지혜로운 고릴라 이스마엘의 얘기는 미국 시카고에서 20여 년 동안 교육서적 편집인이자 작가로 활동해온 다니엘 퀸이 15년에 걸쳐 완성한 소설 <고릴라 이스마엘>(배미자 옮김, 평사리 펴냄)을 통해 우리에게 소개됐다.
90년대 초 나온 이 소설은 지난 1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세계 20개 언어로 번역됐고, 생태학, 인류학, 역사학, 문학, 철학, 윤리학, 생물학 등 2백여개 과목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1천여개 학교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이 나온 직후 한 미국의 언론은 "'신이시여, 좀더 시간을 주시오'라는 인류의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고릴라 이스마엘>은 인류에게 약간의 시간을 구해다 줄지 모른다"고 이스마엘의 호소에 귀 기울일 것을 충고했다. 이제 고릴라 이스마엘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때다. 특히 성경책 외에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부시 대통령이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