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공계 살리기' 일환으로 각 부처에 과학기술 인력을 공무원으로 충원하기 위한 기초조사를 단행, 과학기술 인력 수천여명을 기술직 공무원으로 신규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을 고용하면서 기존 공무원 감원은 단행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어서, 자칫 국민부담만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기도 하다.
***"18개 정부 부처로부터 필요 기술직 규모 파악"**
최근 행정자치부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과학기술중심사회기획단, 단장 박기영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는 정부 각 부처에 과학기술 인력을 공무원으로 충원하기 위한 정책 용역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과학기술자문회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과학기술자문회의는 한남대 설성수 교수팀에게 의뢰해 '지식기술기반 공공서비스 제고 방안'이라는 정책용역 사업을 의뢰해, 지난 8월부터 3개월 일정으로 사업을 진행중이다.
이 사업은 과학기술 인력을 공무원으로 배치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각 부처의 과학기술 인력 수요를 가늠해보기 위한 것이다. 자문회의는 "식품·공산품·시설 안전 관리, 신기술 개발 지원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행정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이를 위해 이미 지난 8월경 18개 정부 부처로부터 '공공 서비스 분야에 대한 시급한 기술직 일자리 소요' 자료를 제출받았으며, 이와 관련된 전문가 설명회도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자 4천여명 채용시, 인건비 2천억 들여 8조 손실 줄일 수 있어"**
과학기술자문회의는 정부 각 부처에 과학기술 인력 수천명을 정부 부처에 기술직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안을 마련해 행자부 등과 협의를 거친 후, 이르면 12월경 이를 정책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자문회의는 약 1천8백21억3천만원의 인건비를 들여 과학기술 인력 4천1백2명을 기술직 공무원으로 채용할 경우, 약 8조6천4백92억원의 국가 재산 손실이 절감되고 약 2조5천6백80억원의 소득 창출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른 시장 매출 규모 증가도 15조7백45억으로 파악됐다.
현재 과학기술 인력을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식품·건강 안전관리 분야(식품의약품안전청 등), 산업현장 및 시설·자연 재해 분야(노동부 등), 자연자원 및 환경 보호 분야(환경부 등), 성장 동력 창출 및 지원 분야(과학기술부 등), 국책 사업, 국제 교역 확대 분야(해양수산부 등) 등이다.
***과학계 "필요성에는 공감"**
이런 과학기술자문회의의 안에 대해서 관계 전문가들은 일단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김석관 부연구위원은 "재난방재 분야나 식품·의약품 안전 관리 분야와 같이 사회적으로 그 필요성이 제기된 분야에 대해서 과학기술 인력을 적극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정부 계획에 대해 공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미 지난 8월 과학기술 정책 관련 토론회에서 "재난 방재 분야의 공공기관에 이공계 고급인력을 대폭 증원해 재난 방재의 실패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식품·의약품 안전 분야에서도 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고급 인력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의 2배가량 증원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식약청은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전국(FDA)와 비교했을 때 인력 규모는 12분의 1 수준이며, 직원 1인당 담당 국민수도 2배나 되는 게 현실이다. 'PPA 감기약 파동'과 같은 식품·의약품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 안전 관리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공무원 감원 안하면 결국 국민부담만 증가"**
정부 계획이 현실화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정부 계획대로 대거 충원될 기술직 공무원들이 기존 조직에 편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김석관 부연구위원은 "과거에도 이공계 박사를 사무관으로 채용하는 일이 있었지만,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기존 조직에서 수용하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다"며 "이런 계획이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공무원 채용 구조 자체에 대한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 조직 확대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도 큰 문제다. 기존 공무원의 감원 없는 과학기술 인력 충원이란 곧 국민부담의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문회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 "작고 강한 정부의 원칙 안에서, 정부의 인력 운용 방침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구체적 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외부 연구팀에게 용역을 준 것도 각 부처의 입김을 최소화하고 객관적으로 필요 인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과학기술자문회의는 11월에 행자부와 반영 규모 및 추진 일정 등에 관해 협의한 후, 연말까지 구체적으로 안을 확정해 정책 건의를 할 예정이다. 정부의 이번 계획이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일자리도 창출하고, 국민들에게 양질의 '공공 서비스'도 제공하는 원래 목적대로 성공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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