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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죽고싶다'던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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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죽고싶다'던 엄마에게

[프레시안 books]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딸에게 엄마는 복잡한 존재다. 서운하고 원망스럽지만 그게 이해되고 가엾어서 차마 버릴 수 없는 존재. 여성학자 정희진은 그런 딸들의 삶을 두고 '엄마의 시신을 끌어안고 사막을 해맨다'고 표현했다.

어떤 딸이 있었다. 모든 딸들이 그렇듯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30여년 후, 그 딸은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구순의 엄마를 보며 "엄마처럼 죽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한다.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라>(한겨레출판 펴냄)은 권혁란 작가가 2017년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 2년, 죽음의 과정을 기록한 자전적 이야기다.

딸이 보는 엄마의 인생은 참 가여웠다. 버려지듯 남의 집에 맡겨져 그 집 아들과 그냥 그렇게 결혼 했다. 친부모님은 생사도 알 수 없었다. 호적도 없어 동네 아주머니의 양딸로 호적을 만들었다. 딸은 무학에 종일 밭일만 하는 엄마가 싫었다. 남에게 지나치게 베풀려고 하는 것도, 자식 앞에서 툭하면 우는 것도 싫었다.

책은 딸의 시선으로 엄마의 삶을, 그리고 엄마의 인생과 마지막 2년을 이야기한다. 딸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과 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눈물 나는 사모곡만을 늘어놓지 않는다. 때로는 남보다 모질고 냉정한 게 딸이다. 저자는 "둘 다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누군가 하나는 온전히 다른 하나에 기대야 한다면 더더욱 힘들 수밖에"라고 표현한다.

엄마의 마지막 2년은 무의미한 고통의 연장이었다. 온몸은 보랏빛 반점으로 뒤덮이고 깡마른 뼈와 피부 사이에 한 점 경계 없는 몸으로, 제 발로, 제 손으로 용변조차 볼 수 없어 도우미의 손을 빌려야 했다. 저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진솔하게 써내려가며 느리게 죽어가던 엄마를 통해 연명치료와 존엄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기서 '늙은 부모'를 모시는 '늙은 자식'들이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꼬집는다. 구순의 엄마를 모시던 큰오빠 부부 역시 칠순을 넘긴 노인이었다. 여섯 자식은 각자의 이유로 엄마를 모시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죽어야 나올 수 있는 곳', 요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됐다. 저자는 서운해 하는 엄마의 뒤통수를 애써 모른척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양로원의 시설이 좋아서. 요양보호사가 친절해서.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뒤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그리고 요양원으로 옮겨져 임종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1부에서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게 된 사연을 시작으로 2부에서는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섬망에 빠진 엄마의 모습을 그린다. 너무도 착해서 남에게 모진 말 하나 못 했던 엄마는 섬망에 빠져 헛것을 보고 허공에 욕을 한다. 죽음에 가까워진 인간의 가엾고 추레한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3부에서는 엄마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의 마지막 시간을 담았다. 새해 첫날부터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숨이 끊어질 듯 말 듯 그날로부터 장장 12일을 버텼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엄마는 최소한의 존엄도 지키지 못했다. 의식이 없는 채 콧줄과 호흡기에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지 오래된 몸에는 욕창이 번져있었다. 엄마의 몸은 이리저리 옮겨지며 틈틈이 가래를 빼주고 영양제를 넣어야했다. 그저 고통을 연장하는 과정이었다.

몸속의 변들이 시커멓게 쏟아지기를 몇 번, 불규칙한 호흡이 점점 희미해졌다. 심장이 멈춘 뒤에도 생명의 흔적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몇 시간이 걸렸다. 죽음의 과정은 그런 것이었다. 엄마의 죽음인데 엄마가 결정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저자는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고통을 겪는 사람을 누구 하나 죽을 수 있게 돕지 못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넌지시 묻는다.

딸은 엄마를 보내고, 엄마의 냄새가 밴 옷을 입고 엄마가 준 주머니 달린 팬티와, 두툼한 양말을 신는다.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눈물을 꾹꾹 누른다. 그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다.

저자는 "지난한 고통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엄마를 지켜보며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쉰 살이 되기 전부터 "늙으면 그냥 딱 죽고 싶다"고 말했건만, 당신 뜻대로 편하게 죽지 못한 엄마를 기억하면서.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자 참으로 지독한 이 시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겪는 마지막, 그리고 이별의 과정을 통해 '어떤 이별을 준비할 것인가' 묻는다. 내 생의 마침표를 내가 찍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일 것만 같지만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오래 살아서 늙어 죽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자식들 곁에 머무르지 않게", "가슴은 아프지만 곧 잊힐 슬픔과 조금은 달콤할 수 있는 그리움만 주고 떠날 수 있도록", "존엄하고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방법을 돌아보게"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저자 권혁란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오래 일하며 잡지와 책을 만들었다. 천 일간의 치유 여행 <트래블 테라피>를 펴냈으며 다른 이들과 함께 <엄마 없어서 슬펐니?>, <나는 일하는 엄마다>를 썼다. 스리랑카에서 2년간 한국어교사로 일하며 살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EBS <세계테마기행> '인생찬가! 스리랑카'편 큐레이터를 맡았다. 그리고 "평생 읽고, 쓰고, 보고, 노래하고 싶어 했던 엄마 대신 내가 읽고, 쓰고, 보고, 노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권혁란 저, 한겨레출판 펴냄, 값 1만 4000원)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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