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이 초기대응 미숙과 열악한 의료체계, 그리고 불투명한 정보공개와 지도부의 책임회피였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단순한 보건 차원의 위기가 아니라, '시진핑 통치 체제'의 위기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보건·의료 위기'에서 '시진핑 체제 위기'로의 전화
'시진핑 체제'의 정치적 위기를 가속화한 것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이번 바이러스의 확산을 경고했던 리원량(李文亮, 34세)이라는 젊은 의사가 지난 6일 감염으로 끝내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리원량의 최초 경고를 무시한 공안당국은 괴담을 유포하여 사회불안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하고, 결국 강압적으로 '입을 다물게'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에 의문을 품은 인민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2020년 3월 개최 예정인 전국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를 앞두고 당국이 사태를 의도적으로 축소, 은폐, 경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진핑 체제의 '통치 정당성'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그동안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는 정책 기조에 입각해 전체 사회를 통제하고 규율하고자 했던 중국 정치시스템 자체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큰 정치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바이러스보다 더 급속도로 번지는 언론자유 요구의 물결
지난 2017년 19차 당 대회를 전후로 중국 정부는 시진핑 주석이나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기 위해 사상 및 언론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17년 6월 1일부터 시행된 '중국 사이버 보안법'을 통해 중국 정부는 국가안보와 사회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인터넷 검열 및 통제를 더욱 엄격하게 집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중국은 인터넷 사용자 수가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 되어있으며(2017년 기준 약 7억 5000만 명), 모바일 네티즌도 인구의 절반(2017년 기준 약 7억 3000만 명)을 넘은 지 오래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의 통제와 규율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한(武漢)의 영웅'이자 '저항의 얼굴'로 상징되는 리원량의 죽음은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증폭되어 저항의 물결로 번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비롯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중국 인민들의 글과 사진이 계속 올라오고 있으며, 중국 전역의 교수들도 이에 동참하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바이러스는 방역과 치료를 통해 퇴치될 것이다. 그러나 불신과 공포가 만연한 중국 사회와 인민들의 마음이 치유되기까지는 더욱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불신과 공포를 넘어 인민이 주체가 되는 '공민사회'의 길로
물론 이번 사태로 중국 정치체제가 붕괴한다거나 시진핑 정부가 실각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국이 강조하는 안정과 질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당 지도부와 권력 엘리트의 통치적 정당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묻기 시작한 '인민들의 입'은 결코 쉽게 닫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중국 정치 체제와 시진핑 정부는 기로에 놓여있다. 그 선택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지난 2019년 10월에 개최된 중국 공산당 19기 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조한 것처럼 "인민이 국가의 주인인 제도체계를 견지함으로써, 당과 국가기구의 개혁을 인민이 주도하고 다원적인 소통과 참여를 바탕으로 '인민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길이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언이 수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통제와 규율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민주적이고 비판적인 '공민사회'가 열려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말을 한' 리원량과 이번 사태로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의 명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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