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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사태 보도 시민기자 실종...."제2의 리원량 안돼"

중국 지식인들 "천안문 사태보다 심각한 상황 올 수 있다" 경고

중국 국민들이 시민기자 천추스(陳秋實·34)가 '제2의 리원량'이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리원량(李文亮)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 우한(武漢)에서 처음으로 확산을 경고한 의사로, 중국 당국의 탄압을 받고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지난 7일 사망한 의사다.

리원량과 동갑인 천추스 기자는 우한에 봉쇄령이 내려진 다음날인 지난달 24일부터 신종 코로나 확산과 당국의 언론 탄압 등을 고발하는 활동을 했는데 지난 6일부터 실종 상태다.

CNN방송은 10일 "중국 전역에서 리원량의 죽음에 대해 중국 국민들이 전례없는 애도와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명의 내부고발자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천추스의 친구들과 가족에 따르면, 우한에서 고발 기사를 써온 그는 수백 만명의 중국 국민들이 온라인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기 시작한 무렵인 지난 6일 저녁부터 실종됐다"고 전했다.

천추스의 친구들과 가족은 그가 격리됐다는 당국의 통보를 뒤늦게 받아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9일부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는 천추스의 석방을 요구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웨이보에 글을 올린 한 이용자는 "중국 정부는 천추스를 공정하게 대우하기를 바란다. 제2의 리원량이 나오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고 썼다.


▲실종된 시민기자 천추스(왼쪽)와 신종 코로나 확산을 처음으로 경고한 의사 리원량. ⓒAP=연합

천추스, 우한 봉쇄령 직후 달려가 현장 실상 보도하다 실종


천추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된 우한에 들어가 환자들로 넘치는 병원들, 화장터, 임시 격리병동 등 현장 르포 기사와 영상을 온라인을 통해 보도했다. CNN은 "그의 활동으로 세상은 신종 코로나 사태의 진원지에서 벌어지는 암울한 실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고 평가했다.

천추스의 친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무사한 지 연락을 취해왔다. 고발 보도 때문에 언제든지 당국에 끌려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6일 저녁부터 친구들의 전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7일 새벽 칭다오에 사는 천추스의 어머니가 아들이 사라졌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영상 메시지를 천추스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게재했다. 천추스는 당국에 끌려갈 것에 대비해 몇몇 친구들에게 자신의 트위터 계정 정보를 알려줬다. 천추스의 어머니는 "우한에 있는 친구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아들을 찾고,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알아내도록 도와달라"고 영상 메시지를 통해 말했다.

이날 저녁 천추스의 친구로 유튜브 스타 무술인 쉬샤오둥(徐曉東)은 생방송을 통해 천추스의 어머니가 올린 영상메시지를 널리 알렸다. 쉬샤오둥은 "칭다오 공안은 천추스의 부모에게 그가 격리됐다고 통보했으며, 천추스의 어머니는 즉시 아들의 행방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은 답변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천추스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 정보를 알려준 친구 중 한 명은 중국 당국의 보복이 두렵다는 이유로 CNN에 익명 보도를 요청하면서 "우리는 천추스의 신변안전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인 천추스가 당국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8월 홍콩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현장을 찾아 웨이보를 통해 보도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시위자들을 '폭도', '분리주의자'로 지칭하는 것에 맞섰다. 그는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평화적"이라면서 "그들 모두가 폭도는 아니다"고 전했다.

이 보도 이후 천추스는 곧바로 중국 당국에 소환됐고, 귀국 후 중국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심문을 받았다. 천추스가 사용해온 중국의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모두 삭제되고, 74만 명에 달하는 웨이보 구독자와 이 계정에 올라온 많은 영상 보도물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천추스는 지난해 10월 초 "할 말은 계속 하겠다"면서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유튜브는 43만3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트위터 계정에는 24만6000명의 구독자가 있다. 중국 당국은 유튜브와 트위터 접속을 차단했지만, 많은 중국 국민들은 우회접속을 하고 있다.

천추스는 지난해 10월에 올린 영상에서 "표현의 자유는 중국 헌법 제35조에 쓰여있는 기본적인 시민권"이라면서 "얼마나 많은 압력과 방해를 받는다고 해도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추스는 봉쇄령이 내려진 우한에 도착한 직후 올린 첫 영상에서 "나는 시민기자라고 자부해왔다, 재난이 일어난 현장에 가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기자냐"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한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을 카메라에 담을 것이며, 우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바깥 세상에 알리도록 돕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후 찍은 영상에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가 며칠 동안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했지만 거부당해 병원 문밖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 산소호흡기를 매달고 환자들이 복도 가득히 늘어선 임시 병상에서 누워있는 모습, 휠체어에 앉은 채 사망한 친척 옆에 마스크를 쓰고 필사적으로 시신을 안치해달라고 요청하는 여자의 모습 등을 담았다.

그가 한 호텔방에서 지난 1월 30일자로 올린 영상에서는 "두렵다. 내 앞에는 바이러스가 있고, 내 뒤에는 중국 공안이 있다"며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기운을 내서 보도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중국 공산당을 왜 두려워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 영상에서 천추스는 유언비어 유포자로 몰려 당국의 처벌을 받은 리원량 등 8명에 대해 언급했다. 천추스는 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경고한 의료진들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뒤에도 중국 당국은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비판했다.

중국 언론은 천추스의 실종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 천추스라는 이름 자체가 기피 대상이다. 하지만 천추스의 실종 사태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그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한 사모펀드 업체 임원으로 웨이보에서 많은 구독자를 거느린 리정다는 "천추스가 누구냐?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고 있느냐? 왜 언론은 그의 이름을 검열하는가?"라면서 "그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가장 심각한 단계일 때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우한으로 달려간 사람이다. 그는 영웅이다. 그런 그가 실종됐다"는 글을 올렸다.

리원량의 어머니 "당국의 해명 없다면 괜찮을 수 없다"


한편, 리원량의 어머니는 중국 동영상 플랫폼 리스핀(梨視頻·Pear Video)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지난 7일 아들이 사망한 후의 심정을 토로했다.

리원량의 어머니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내 아들은 한밤중에 경찰에 끌려갔다"면서 "그들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수가 없다"며 중국 당국의 공식 해명을 요구했다.

리원량은 지난해 12월 30일 사스와 유사한 코로나바이러스 증세가 있는 환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보고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동료 의사 7명과 의논 끝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관련 내용을 올렸다. 이 일로 리원량은 지난달 3일 경찰에 불려가 '훈계서'에 서명해야 했다. 그는 이후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신종코로나에 감염돼 4주 가까이 투병하다 사망했다.

리원량의 죽음에 대해 중국 전역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각계 각층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우한의 화중사범대학 탕이밍(唐翼明)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이번 사태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라면서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서한은 웨이보에서 즉시 삭제됐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베이징 법대 장첸판(張千帆) 교수도 "정부는 리원량 의사가 사망한 날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며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법 조항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중국에서 반정부 지식인을 대표하는 쉬장룬(許章潤) 칭화대 법대 교수는 최근 여러 해외 웹사이트에 게재된 글을 통해 신종코로나 초기 대응이 실패한 것은 중국에서 시민사회와 언론의 자유가 말살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저명한 인권운동가 쉬즈융(許志永)도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통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혼란스럽고 통치모델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시진핑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우한대학교 친첸훙(秦前紅) 법학교수는 지난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천안문 사태로 이어진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망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후야오방은 1986년 발생한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실각하고, 1989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그해 6월4일 텐안먼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리원량의 죽음이 알려진 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원한다'는 해시태그 글도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곧바로 당국에 의해 삭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시위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리원량이 숨진 지난 7일 우한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저녁 9시 전후로 10분 동안 일제히 소등을 했다가 다시 불빛을 밝히며 호루라기를 부는 시위가 벌어졌다.

내부고발자 리원량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일제히 불을 끄고 휴대폰 불빛과 손전등을 켜 하늘로 비추고, 9시에 다시 전등을 켜고 호루라기를 5분간 부는 시위를 하자는 트위터에 올라온 한 제안에 많은 이들이 호응한 것이다.

리원량의 어머니 역시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최전선에 나섰던 아들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며 "그것은 아들의 바람이었고, 가족은 그것을 지지해야만 했다. 우한의 상황은 참혹했고, 그는 의사였다"고 말했다.

리원량의 부인 푸쉐제(付雪潔·32)는 남편의 사망 후 웨이보를 통해 "남편과 가족에게 보여준 모든 사람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한다"며 "하지만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라면서 인터넷상에 퍼진 것 등은 모두 가짜이며, 나는 이러한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리원량의 사망 후 중국 온라인에는 리원량의 부인이라고 사칭해 기부를 요청하는 글 등이 퍼졌으며, 부인 역시 신종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소문도 돌았다.

푸쉐제는 "나는 정부와 남편이 일했던 병원에서 주는 공식 보상금이나 보험금, 정부가 승인한 자선기관의 기부만 받을 것"이라며 "나의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메시지를 퍼뜨리는 것도 삼가 달라"고 호소했다. 리원량과의 사이에 5살 아들을 두고 있는 푸쉐제는 오는 6월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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