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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파란눈' 의사의 후손은 '까만눈'?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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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파란눈' 의사의 후손은 '까만눈'? 사연은…

[인터뷰] 제중원 원장 에비슨家에 입양된 로빈 밀란손 씨

"세상에, 우리 딸이 이렇게 작은 아기였다니, 믿을 수 없어요."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N산부인과. 진료 환자가 없는 한적한 점심, 이 작은 병원이 낯선 외국 손님으로 북적였다. 이날 병원을 찾은 사람은 26년 전 이 병원에서 태어난 미국인 로빈 밀란손(나유미·26) 씨. 갓난아기(생후 3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된 그는 '네, 아니오' 같은 한국말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모국과 맺은 인연은 특별하다.

▲ 에비슨 박사의 외고손녀 로빈 밀란손 씨. ⓒ연합뉴스
로빈 씨의 외고조부는 구한말 약 40년을 한국에서 살며 조선에 근대 서양 의학을 도입한 올리버 R 에비슨(1860~1956). 에비슨 박사는 1893년 한국 최초의 근대 병원 제중원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그해 11월 제중원의 신임 원장으로 부임해 서양 의학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고, 최초로 면허 의사 7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에비슨 박사가 배출한 최초의 의사 7명 중 1명이 바로 최근 S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박용우)의 실제 모델인 박서양이다. 그는 제중원을 졸업한 후 의사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에 참여해 2008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에비슨 박사의 증손녀 클로뎃 에비슨 밀란손 씨와 그의 남편 에드몬드 밀란손 씨는 26년 전 한국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가 바로 로빈 씨이다. 이날 딸과 함께 병원을 찾은 이 미국인 부부는 26년 전 딸의 출생 기록을 찾아보며 시종일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로빈 씨의 양어머니인 클로뎃 밀란손 씨가 N산부인과 남소자 원장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가운데가 로빈 밀란손 씨. ⓒ프레시안(선명수)

▲ 로빈 씨의 출생 기록을 보고 있는 남소자 원장과 밀란손 모녀. ⓒ프레시안(선명수)

"나유미. 유미가 무슨 뜻이죠?

이날 로빈 씨는 잊었던 '한국 이름'도 찾았다. 옆에 있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박형우 교수(동은의학박물관 관장)가 "유미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이라고 일러주자, 로빈 씨와 양부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26년 전 로빈 씨를 직접 받았던 이 산부인과의 남소자 원장은 그의 출생 기록을 꺼내 친모의 이름, 나이 등도 알려줬다.

로빈 씨는 "생모가 나를 버린 건, 미혼 여성에 나이도 어렸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서른에 나를 낳았고 내 위로 형제 두 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면서도 "그러나 생모를 찾을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남 원장은 로빈 씨의 출생 시각, 체중도 알려줬다.

양어머니 클로뎃 밀란손 씨는 남소자 원장을 껴안고 재차 "당신이 딸을 받은 사람이냐"고 되물으며 "당신의 병원이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안겨줬다"고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그는 또 "우리에게 이번 한국 방문이 에비슨이라는 조상의 뿌리를 찾는 일이었듯이, 딸에게도 한국의 뿌리를 이렇게나마 확인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로빈 씨의 그의 양부모를 바라보는 남소자 원장 역시 감회가 깊은 듯했다. 남 원장은 "로빈을 받은 날을 기억하고 있다"며 "로빈은 태어날 당시 2킬로그램의 매우 작은 아이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작았던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서 기쁘다"고 말했다.

▲ 밀란손 씨 가족이 로빈 씨가 태어난 산부인과의 남소자 원장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프레시안(선명수)

로빈 씨는 산부인과를 방문하고 나서 홀트아동복지회를 찾핬다. 이곳에서 밀란손 씨 가족은 입양 전까지 3개월 동안 로빈 씨를 돌봤던 의사 조병국 씨를 만났다. 백발의 의사가 된 조 씨는 "에비슨 박사의 후손을 이런 인연으로 만나게 돼서 기쁘다"고 반가움을 내비쳤다. 그는 "어머니가 딸이 결혼할 때 선물하는 것"이라며 이날 로빈 씨에게 여러 천을 짜깁기해 만든 컵받침을 선물했다.

▲ 에비슨 박사(두번째 줄 가운데)와 그의 조선인 제자들. ⓒ동은의학박물관

밀란손 씨 가족은 에비슨 박사가 원장을 지낸 '제중원 창립 125주년'과 '에비슨 탄생 150주년'을 맞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의 초청으로 7일 입국했다. 모국을 찾은 로빈 씨는 "한국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 뿌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곳이라 더 의미가 깊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한국에 오자마자 연세대를 찾았다는 로빈 씨는 "외고조부가 만든 학교가 이렇게 크고 넓은 줄 몰랐다"며 "그런 조상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놀랍다"고 말했다. 로빈 씨는 "에비슨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양부모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국의 생모도 기회가 닿으면 만나서 이렇게 성장한 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로빈의 양어머니 클로뎃 밀란손 씨는 "아이를 입양하려고 마음을 먹던 와중에 한국이 바로 떠올랐다"며 "증조부가 평생을 바쳤던 곳이라 꼭 한국인 아이를 데려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항에서 예쁜 한국 아이가 내 품에 안겼을 때도 내가 낳은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와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 로빈은 세상이 나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에비슨 박사는 1894년 9월 미국 북장로회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이관받은 뒤, 제중원과 그 후신인 세브란스병원의 운영을 맡았다. 1916년부터는 연희전문학교의 전신인 경신학교 대학부를 이끌었고, 1934년 초까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의 교장을 겸직했다. 이 두 학교는 1957년 1월 지금의 연세대로 통합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에비슨 탄생 150주년과 제중원 설립 125주년을 기념해 23일까지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특별 전시회를 열고, 사료 10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전시회에서는 에비슨 박사의 미공개 사진, 그가 번역한 의학서, 1935년 은퇴 후 한국을 떠날 때, 김활란·김성수 등 230명이 서명한 '전별첩(이별을 아쉬워하며 주는 편지)' 등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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