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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인류세의 다음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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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인류세의 다음을 상상하다

[Deep Future] 2020 : '인공지구'의 밤하늘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 이병한이 다시 프레시안 독자들과 만납니다. 1000일 동안 100개 나라 1000개 도시를 탐방하며 유라시아 고전문명의 현대적 부활이라는 장대한 서사를 선보였던 그가 이번에는 장엄한 지구사의 지평에서 다가오는 미래 문명의 탐구에 나섭니다. 인류세의 첫 번째 NGO를 표방하는 EARTH+의 창립자로서 지상의 DNA혁명부터 천상의 DATA혁명을 아우르며 동학의 경천-경인-경물 삼경사상이 어떻게 만인과 만물과 지구를 살리는 정치적, 사회적, 제도적 대안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를 천착합니다. 지구만물법의 선진국, 남반구의 뉴질랜드에서 보내온 미래의 소리부터 전달합니다.

1. 갤럭시 : 남반구의 하늘

남반구에서 새해를 맞이한 건 2020년이 처음이다. 지구의 허리 적도를 세로 질러 11시간, 남태평양에 이르렀다. 오-래, 동과 서에 천착했다. 20대에는 동아시아론에 심취했고, 30대에는 동과 서를 회통(會通)케 하고자 유라시아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라시아가 동반구에 자리한 구대륙이라면, 서반구의 미국은 미우나 고우나 익숙한 신대륙이다. 유럽과 아시아와 북미를 돌고 돌아 불혹의 나이, 마흔을 넘겼다. 돌아보니 죄다 북반구를 맴 돌았을 뿐이다. 홀연 혹하며 북반구 중심주의를 의식하고 의심하게 됐다. 그렇게 다다른 남반구는 과연 하늘부터 다르다. 해도 달도 별도 친숙한 북쪽의 그 하늘이 아니다.

사시사철이 다르다. 사계가 정반대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지나 1월과 2월 땡볕이 작열한다. 동에서 떠서 서로 지는 것은 마찬가지로되, 정오에 가장 높이 뜬 태양은 정남(正南)이 아니라 정북(正北)에 걸려있다. 달의 꼴도 상이하다. 일생을 달의 북쪽만 보고 살았다. 이제야 달의 남쪽을 두 눈에 담는다. 초승달은 오른쪽으로 볼록한 저녁달이요, 그믐달은 왼쪽으로 볼록한 새벽달이라는 사실도 북반구의 반 토막 상식일 뿐이다. 한낮에도 하얗게 걸려 있는 남반구의 그믐달은 오른쪽으로 보드랍게 살이 부풀어 올랐다.

백미이자 별미는 천문(天文), 별자리다. 별이 빛나는 밤의 형세가 영판 딴판이다. 일단 북극성부터가 보이지 않는다. 문장에서 즐겨 구사하던 '북극성'이라는 수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어디까지나 북반구 사람의 반쪽짜리 감각이었던 것이다. 밤하늘의 G7, 북두칠성 또한 부재하다. 대신하여 G10, 열 개의 별이 크로스를 이루는 남십자성이 반짝거린다. 과연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파푸아뉴기니, 사모아 등 남반구 나라들의 국기에는 남십자자리가 새겨져 있다. 스물 한 개의 일등성이 모두 맨눈으로 보이는 것 또한 비단 하늘이 맑고 공기가 깨끗해서만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 은하의 중심이 남쪽 하늘에 있어서다. 비로소 나는 우리 은하에서 가장 밝은 별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갤럭시의 중심을 향하여 밤하늘을 우러러 보게 된 것이다. 굵직굵직하고 큼직큼직한 별들 사이로 무시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렇게 지구별이 태양을 한 바퀴 돌아 2019년 한 해가 저물었다.

▲ 남반구와 북반구가 뒤집힌 뉴질랜드의 세계지도. ⓒWikimedia

2. 아오테아로아 : 깊은 미래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천지인(天地人) 삼재도 북반구의 감각이다. 남반구에서 육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할이다. 하늘 아래로는 온통 바다, 하늘보다 깊고 짙은 바다가 유장하다. 지구 전체를 따지면 대륙의 7할이 북반구에 자리한다. 북쪽은 뭍, 남쪽은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응당 사람은 뭍에서 살기 마련이다. 70억 인구의 1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6억여 명이 남반구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반면으로 사람보다는 소와 양 등 동물의 숫자가 월등하다. 사람의 비율과 비중이 미미하고 미약한 별천지인 것이다. 하여 천지인보다는 '천해물(天海物)'이라고 해야 온당할지 모르겠다.

레잉가 곶(Cape Reinga)은 아오테아로아(Aotearoa)의 북섬 하고도 최북단에 자리한다. 태평양의 파도와 타스만(Tasman)해의 파랑이 남녀처럼 파고들고 음양인양 갈마드는 진풍경을 목도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은 겨우 미물인 듯 더욱 작아지고 숙연해지는 땅 끝이다. 마오리들은 이곳을 생과 사의 갈림길, 이승과 저승의 분기점으로 여겼다고 한다. 아오테아로아는 뉴질랜드의 별칭, 아니 오래된 본명이다. 1840년 북반구에서 대영제국과 대청제국이 충돌한 아편전쟁이 일어난 무렵 대영제국의 일원으로 편입되면서 뉴질랜드가 되었다. 이전에는 원주민 마오리의 나라 아오테아로아로 불렸다. '긴 하얀 구름'이라는 뜻이란다. 폴리네시아인들이 아오테아로아에 이를 무렵 구름과 바람과 새를 따라서 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 홍콩과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될 즈음에 뉴질랜드 또한 마오리어를 공용어로 사용키로 하며 '아오테아로아'라는 국명 역시 되살아났다. 지금은 에어 뉴질랜드의 비행기에서도, 오클랜드의 공항에서도 'Kia Ora Aotearoa(안녕, 아오테아로아)'라는 문구를 만날 수 있다. 북반구도 남반구도 탈 서구화의 물결이 출렁대는 대반전의 풍경을 연출하며 옛 천년을 보내고 새 천년을 맞이했던 것이다.

▲ 두 바다가 만나는 레잉가 곶. ⓒ이병한

아오테아로아는 동반구와 서반구를 가르는 날짜 변경선 부근에 자리한다. 한국보다는 4시간이 이르다. 세계에서 세 번째,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물리적 시간만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21세기를 가장 앞서 달리며 미래문명의 전범을 실험하고 시험하고 있는 곳이다. 탈인간주의(De-Humanism), 사람을 북극성으로 여기는 인간중심주의를 급진적으로 해체해 가고 있다. 만물을 만인처럼 모시고 섬기는 원주민들의 영험한 지혜를 미래적인 법률로 재정비해가고 있다. 토착적 사상과 근대적 법치가 결합해 미래 국가의 청사진을 그린다. 이미 강도 산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법인(legal person)이 되었다고 한다. 포스트-휴먼, 인권(human rights)에 버금가는 만물의 권리, 자연권(rights of nature)을 확립해가고 있다.

허나 사람을 사물 가운데 하나로 강등시키는 하향평준화를 뜻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누리던 독점적 권리를 만물에 개방하여 지구적 수준의 민주주의로 심화하고 있다. 20세기가 인권의 세기, 인권자를 노동자와 여성,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등으로 확장하는 만인 존중의 백년이었다면, 21세기는 사물권의 세기, 만물 존엄으로 지구의 화엄을 이루는 '다른 백년'의 초석을 닦는 시대다. 2020년 첫 날을 굳이 꿋꿋이 이곳에서 맞이한 까닭이라고 하겠다. 양적 성장에서 영적 성숙으로 깊어져가는 지구적 심호흡을 한껏 들이켜고 싶었다.
3. EARTH+

돌연 오클랜드의 하늘이 온통 노래졌다. 작금의 지구는 새해벽두마저 설피 희망을 허락지 않는다. 이웃나라의 재앙, 호주 산불의 재가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 뉴질랜드의 땅까지 뒤덮었다. 언뜻 묵시록이 연상되는 기괴한 풍경이었다. 명명백백 인류세의 인재다. 2019년이 해양의 수온이 가장 높은 해로 기록되었다는 관측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대양의 순환은 대기의 운동에도 깊숙한 영향을 미친다. 따뜻해진 바다와 뜨뜻해진 공기, 지구의 신진대사가 불량하고 불편하다. 국지적 열병은 지구 전체의 균형이 무너졌음을 증상하는 바, 물과 뭍의 피드백이 산불로 격화해 뭇 생명의 진화와 진로에 심대한 파국을 초래했다. 이미 코알라와 캥거루 등 1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곤충과 식물과 미물까지 헤아리노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대재난, 생태학살(ecocide)이자 생명학살(biocide)이 아닐 수 없다.

'인재(人災)', 다시 말해 인공재난(Artificial Catastrophe)이 동반구와 서반구, 남반구와 북반구를 막론하고 빈번하다. 기후위기도 대멸종도 인간의 원죄이자 업보인바, '사람이 먼저다'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지구의 열병과 골병 등 만병의 근원이 인간이 된 것이다. 가는 해와 오는 해, 뉴질랜드의 북섬과 남섬을 일주하노라니 천혜를 자랑하는 이곳의 풍광 또한 지극히 인공적이라는 점이 못내 눈에 밟힌다. 본디 북반구의 동물이 한 마리도 살지 않던 별세계였다. 700년 전 이 땅을 밟은 최초의 사피엔스, 마오리가 당도했을 때에는 오로지 두 발과 양 날개가 달린 새들만 숲 속을 날아다녔다고 한다. 500만 마리의 소와 3000만 마리의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인 풍경은 채 이백년도 안 돼 만들어진 가공할 인공자연(artificial nature)인 것이다. 네발 동물이 살아가는 드넓은 목장과 목초지가 생겨나는 만큼이나 태고의 원시림은 잠식되어 왔을 것이다. 북반구 사람들에게 일용할 고기와 치즈와 우유를 제공하는 남반구의 낙농업부터가 자본주의 세계체제, 수출과 수입으로 작동하는 국제 분업과 세계 무역의 소산이렷다.

▲ 호주 산불로 인해 노랗게 변한 오클랜드의 하늘. ⓒ이병한

고로 더 이상 무위자연은 없다. 돌아갈 자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가공된 자연, 인공적 자연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위(Artificial)가 곧 허위(Fake)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가짜 자연'이라기보다는 '디자인된 자연'이다. 필요한 것은 본디 자연으로의 회귀보다는 자연스럽게 디자인된 미래 문명의 창조일 것이다. '오래된 미래'보다는 '깊은 미래'가 더 어울린다. 얼마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 2020에서 인공 인간 네온(NEON)이라는 존재가 등장했다고 한다. 유전학에서는 'GMO 사피엔스'라는 어법도 널리 사용된다.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 문자 그대로 천지가 다시 개벽하고 만물이 다시 창조되고 있다. 그리하여 2020년의 지구는 오롯이 오로지 인간이 만들어낸 46억 년 만의 새 지구라고 하겠다. 제2의 창세기, 인류세라는 신조어가 조금의 과장도 허언도 아니다.

하여 더는 역사학자로 족할 수가 없다. 한철 동아시아가 나로 하여금 현대사학자에서 유라시아 문명사가로의 진화를 이끌었으나, 이 또한 북반구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에 갇힌 발상이었다. 역사는 이제 미래의 나침반, 안내자가 되어주지 못한다. 사피엔스만의 과거, 그것도 문자 발명 이후에 기록된 지극히 한정된 과거만을 다룰 뿐이다. 선조와 선생과 선배 또한 지침이 되어주지 못한다. 후세와 후배와 후생들이 살아갈 인공지구, 인공생명, 인공지능 신세계의 경험과 교훈과 조언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인간 이전의 자연물 'Life 1.0'과 인간 이후의 인공물 'Life 3.0'을 겸장해야 비로소 'Life 2.0' 사피엔스의 장래를 간신히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절치부심 끝에 출범한 것이 EARTH+다. 산업화세대의 역경도, 민주화세대의 고투도 일국적 과업에 그쳤다. 다음 세대는 필연적으로, 숙명적으로 지구적 단위로 사고하고 지구적 수준에서 실천하는 지구세대가 아니 될 수 없다. 90년대 생, 밀레니얼 세대와 더불어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사상을 연마하고 일상을 창조하는 인공지구(Artificial Earth) 시대의 첫 번째 NGO를 표방한다. 아니 홀로세(Holocene), 치세(治世)의 살아가기/성장하기보다는 인류세(Anthropocene), 난세(亂世)의 살아남기/생존하기가 더 적절하고 절실하며 절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을 생산하는 전위로서 EARTH+의 출항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20년 EARTH+에 이르기까지 지난했던 2019년 개벽학당의 시행착오를 복기해본다.
▲ 호주 산불 위성 사진.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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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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