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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민주주의' 무시하는 '사이비 진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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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민주주의' 무시하는 '사이비 진보'에게"

<화제의 신간> "행정수도 이전 '합리적'이지도 '개혁적'이지도 않아"

"개방은 선택이 아니라 가야할 길"이라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쳐온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할 만한 책이 한 권 출간됐다. 1965년 귀농한 뒤 40년 가까이 농민운동과 공동체운동을 벌여온 천규석의 <쌀과 민주주의>(녹색평론사 펴냄)이다.

***"'식량 세계화'의 본질은 미국과 초국적기업에 예속되는 것"**

"자신에게 협조해 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식량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미국의 허버트 험프리 前부통령의 말대로 소위 '험프리 독트린'은 1960~70년대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미국의 식량 원조를 받았던 한국·니카라과·엘살바도르·칠레·아르헨티나·우루과이·페루는 모두 일찌감치 초국적기업들에 의해 자국의 전통 농업을 포기하거나, 수출용 농업으로 구조 조정(?)을 당했다.

천규석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식량 세계화'의 본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그것은 미국과 초국적기업이 그들을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GATT나 WTO 등의 규정을 만드는 데 세계의 최대 곡물메이저인 카길이 큰 역할을 담당했고, 역대 미국 행정부의 무역과 농업관련 정책 자문단이 대부분 카길의 중역 출신이라 것은 그 증거이다.

이렇게 초국적기업이 주도하는 '식량 세계화'의 위협은 너무나 명백하다. 우선 그것은 한 나라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식량 안보'를 위협한다. 초국적기업이 주도하는 특정 지역 식량에 전세계가 의존하게 되면서, 기상 재앙 등으로 식량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경우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개별 나라 국민들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안 지고 있는 몇몇 초국적기업의 손아귀에 세계 인류의 생명이 종속된다."

초국적기업은 각 지역의 농민들과 식량 종속국에 대한 위협도 노골화할 것이다. 실제로 1984년에 미국 자영농민들이 초국적기업을 제치고 자신들의 곡물을 직접 외국에 수출하려 하자, 카길사는 아르헨티나산 밀을 대량으로 먼저 수입해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농민들에게 복수를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며 내지른 주먹은 자신들로 향해야"**

천규석은 쌀을 둘러싼 문제를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확장한다.

"우리가 우리 쌀농사를 스스로 지키고 지어야 할 일차적 이유는 우리 자신의 경제적 자립과 주권을 지키는 데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문화적 자주와 정치적 자치를 지키는 데 있다. 무엇보다 쌀은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열량을 생산해주는 식량작물로서 오늘날 우리 민중들을 이렇게 자손번성하며 살아남게 해준 민중사회의 생태적·경제적 기초다. 동시에 쌀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 자체다. 쌀은 우리의 음식문화의 정체성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토착적 전통문화치고 쌀과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쌀의 생태적·문화적 조건들이 이 땅에 소농경제와 그 두레의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자치와 문화적 주권을 지킬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오늘날 근대화·도시화·세계화 등의 중앙 집권력이 날로 비대해갈수록 그만한 지역 자치성도 허용하지 않고 송두리째 파괴시켜가고 있다. 쌀은 우리 지역자치의 마지막 보루요, 지역주민들의 자존심이다. 쌀을 지키는 것은 생명주권을 지키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 자치 민주주의의 뿌리를 지키는 것이다."

쌀 시장 개방 문제를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대세인 현실에서, 이런 그의 근본적인 접근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쌀은 자립·자주적 삶과 자치 민주주의를 위해 지켜야 할 것이며, 그것과 소농을 지키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사회운동"이다.

그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종하며 쌀농사의 완전한 포기도 서슴지 않는 노무현 정부와 그 주변의 개혁 세력들에게 '새로운 기득권자'라며 날선 비판을 날리는 것도 '쌀과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 때문이다.

그는 "(자칭 개혁세력들이) 청와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내지른 주먹은 정작 대통령과 그 지지자 자신들을 향해야 한다"며 "과거 군사 정권의 개발 논리를 그대로 추종하면서 심지어 개발 독재자도 반대했던 '글로벌 스탠더드'까지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성장 우선주의자들이 무슨 평등 민주주의와 개혁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신행정수도 이전 차라리 '공(空)약'이길 바랐는데...**

이 책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이 결코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따끔한 지적이다. 그 동안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오거나, 침묵해온 개혁적 지식인들이 대다수인 상황을 고려하면 천규석의 지적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신행정수도 이전의 명분과 논리로 내세운 '서울 과밀화 문제 해소', '지방 분권', '국가 균형발전' 등 세 가지는 모두 그의 논리적이고 매서운 비판을 비켜가지 못 한다.

우선 '서울 과밀화 문제'의 경우를 보자. 그는 "정부 계획대로 2030년에 신행정수도에 50만이 거주한다고 해도, 2천3백만이 훨씬 넘는 현재의 수도권 인구 과밀화 해소에 도움이 되겠느냐"며 "그나마 이런 정부의 예상도 적중하지 않을 게 뻔하다"고 지적한다. 고속철도로 한 시간 이내인 대전 인근 지역(10㎞)에 건설되는 신행정수도는 "충청권의 수도권 편입만을 가속화해 에너지를 낭비하는 통근 거리와 통근 인구만 늘릴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앞으로 확대될 주5일 근무는 신행정수도를 독신인구만 3~4일간 머무는 하숙과 자취촌으로 만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행정수도 이전으로 '지방 분권'도 가능하지 않다. 그는 "수도를 이전하고 몇 개의 중앙 정부기관이나 그 산하단체를 지방에 분산시켜주는 것으로 지방 분권이 되는 것이 아니"라며 "대통령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 체제에서 그 중앙기관이 어디에 위치하건 그 권력은 대통령과 그가 있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방 분권'이란 "진정한 민주주의가 지역 자치임을 자각한 지역주민의 결단과, 권력의 지방으로의 이양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때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신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것도 "말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혹시 신행정수도가 성공한다면) 그 때는 서울 외의 전국 지방에 살고 있는 나머지 인구들을 빨아들이는 식으로 가능할 것"이라며 "그것은 지역의 균형발전은커녕, 서울에 미처 진입하지 못한 나머지 지방 도시민을 신행정수도로 유입하여, 농촌공동화에 이어 지방 도시마저 완전히 공동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가 균형발전'은 지역에 거점 대도시를 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지방 분권'으로 각 지역이 동등한 자치와 주권을 행사할 때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득표를 위해 개발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의 3대 명분은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그것은 오히려 계량이 불가능한 엄청난 재정부담과 수도권 등 다른 지역 주민들과 충청권 주민과의 또 다른 지역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신행정수도 이전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중요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는 가장 가슴 아픈 문제로 "2천1백만평이 넘는 농지와 자연 생명들이 또 죽임과 파괴를 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2천1백만평의 토지는 1만평 경작의 자영농인 2천1백명이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이다. 일단 수도가 옮겨지면 대전 이북의 충청권 전역에서 지금의 수도권처럼 투기와 난개발이 자행될 게 뻔하며, 충청권의 농업 생산기반과 그 지역의 농촌·농민 정서는 순식간에 소멸된다는 것이다.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

그는 지금이야말로 더 늦기 전에 잘못된 길에서 되돌아 나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평생을 땅과 함께해온 70대 노대가의 다음과 같은 일갈은 메아리를 들을 수 있을까?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잘못된 길을 모르고 접어들었다면 그것을 깨닫는 순간 되돌아 나오는 것이, 퇴보나 무엇에 대한 굴복과 패배가 아니라 참다운 진보자의자와 승리자의 길이다. 권력은 없을수록 민중에게 좋고, 있어도 멀리 있어 보이지 않을 때에야 격양가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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