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여름 흑룡강성인대상위(人大常委)부주임 리센강(李显刚)과 서울에서 저녁을 함께하게 됐다. 나이가 토끼띠로 똑같았다. <별주부전>을 차용해 '오늘 술을 마시려고 간을 빼서 양지 바른 곳에서 말려 두었다가 다시 집어넣고 왔다.'라고 했다.
인도 어느 해안가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잠보나무가 있었다. 원숭이 한 마리도 살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원숭이가 던져 주는 열매를 얻어먹고 서로 친하게 된 악어가 있었다. 악어의 아내는 남편이 갖다 주는 열매를 먹을 때마다 '이 열매를 먹고 사는 원숭이의 간은 얼마나 맛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악어 아내가 원숭이 간을 먹고 싶다고 계속 채근했다. 악어는 할 수 없이 한 가지 꾀를 냈다. "내가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으니 한번 대접을 하겠다"며 원숭이를 등에 태워 먼 바다로 나갔다. 악어가 원숭이에게 "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숭이는 "그런 사연이라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나는 간을 잠보나무 구멍에 감추어 놓고 다닌다"고 말했다. 속은 악어가 잠보나무 근처로 데려다주자 원숭이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서 "이 세상 어느 누가 간을 빼놓고 다니겠니"라며 악어를 조롱했다.
부처님 전생의 수행을 담은 <본생담>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야기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에는 악어가 흔하지 않다. 악어가 용으로 대체됐다. 이야기가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온다. 판소리 <수궁가>가 됐다. 수궁가를 소설화한 작품이 <별주부전>. 우리나라에서는 악어의 아내가 용왕으로, 용은 자라로, 원숭이는 토끼로 대체 됐다. 악어나 원숭이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자라가 토끼를 등에 태우고 용궁으로 가는 장면이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져 절집 안에 표현된다. 어찌 보면 비불교적인 내용일 텐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불교에서 용궁을 바닷속에 있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라가 토끼를 태우고 용궁으로 가는 모습은 중생을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장면으로 간주 됐다.
지난 12월 하얼빈에서 리센강 부주임과 다시 만났다. 리 부주임이 토끼의 간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고 술을 권했다. 그날 저녁 하얼빈 기온이 영하 25도였다. 호텔 베란다에 간을 빼서 말려 두었더니 땡땡 얼어버렸다고 답했다.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는 우리 문화와 역사와 절집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제공하여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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