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선일씨가 26일 국민의 애도속에 말없는 주검이 돼 귀국했다.
김씨의 시신은 이날 오전 8시26분(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출발한 지 9시만인 오후 5시25분 두바이발 대한항공 KE952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시신 운구를 돕기 위해 같은 항공기편으로 가나무역 동료 정용하씨와, 장재룡 외교부 본부대사 등 석방협상 대표단 6명이 함께 들어왔다.
이날 공항에는 부산에서 상경한 고인의 여동생 정숙씨와 사촌형 진학씨 등이 유족 대표로 김씨의 시신을 맞이했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노회찬 민주노동당의원 등도 나왔다. 김씨 시신이 도착하기 전 대기실에서 반기문 장관 등 정부인사들과 마주친 사촌형 진학씨는 "정부는 신뢰가 생명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고 분노를 참지 못했고, 이에 반기문 장관은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해가 담긴 컨테이너는 공항에 내려진 뒤 세관 당국의 협조를 받아 화물터미널을 거치지 않고 바로 검역 등 통관절차를 마쳤다. 대한한공측은 고인에 대한 예우를 위해 새 시신 탑재용 컨테이너를 준비, 25일 KE951편으로 두바이로 보냈으며 김씨의 시신은 새 컨테이너에 실려 운송됐다. 이날 김씨 시신과 함께 김씨의 짐 2개와 기타 1개, CD플레이어 1개 등 총 4개의 유품을 담은 짐도 함께 도착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군 수송기로 옮겨진 김씨의 시신은 오후 7시 25분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해국제공항에서는 큰누나 향림씨와 이모부 김재찬씨 등 유족과 이웃주민 등 16명이 오열속에 김씨의 시신을 맞았다. 유족들은 김씨의 시신이 담긴 관이 경찰 의장대에 의해 군용기에서 내려지자 "선일아"를 외치며 오열했고 향림씨는 동생의 이름을 외치다 정신을 잃고 몇차례 주기장 바닥에 쓰러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씨의 시신은 별다른 의식없이 곧바로 검정색 캐딜락 운구차량에 옮겨져 경찰의 삼엄한 호위 속에 공항로와 구포~양산 고속도로, 금정경찰서를 거쳐 오후 8시35 분 빈소가 마련된 부산의료원에 도착했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길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촛불을 들고 묵념을 하는 등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부산금정구청 앞에선 30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김씨의 원혼을 맞았고, 일부 시민들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플래카드를 든 채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부산 서면에서의 '범국민추모대회'를 마친 뒤 거리행진을 거쳐 부산의료원에 도착한 시민들 1천여명은 시신이 도착하자 병원입구를 가로막은 채 '김선일을 살려내라', '파병철회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혼란이 벌어져, 김씨 시신은 도착 20여분만에 겨우 경찰의장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안치실로 향할 수 있었다.
두손을 부여잡은 채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 김종규, 어머니 신영자씨는 운구차가 도착하자 차량을 두팔로 안고 "니가 이렇게 돌아왔나"며 대성통곡했다.
부산의료원에 도착한 김씨의 시신은 병원측이 "시신이 많이 훼손돼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여성 유족들은 시신확인에 참가하지 말아달라"고 설득해, 안치실에서 진학씨 등 사촌형 2명이 입회한 가운데 부산지검 공안부 최윤수 검사의 지휘로 의사의 검안 및 시신확인 절차를 거친 후 안치됐다. 김씨의 시신은 27일 중으로 기독교식 장례절차에 따라 입관될 예정이다.
시신확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안치실 밖에 있던 아버지 김종규씨와 어머니 신영자씨, 누나 미정씨 등 유족들은 "선일아 너를 살리지 못해 미안하다.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라며 흐느꼈다.
기독시민운동 부산시협의회 소속 교회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숨져간 김씨의 영혼을 달래고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예배를 발인 때까지 매일 오전과 오후 한차례씩 갖기로 했다. 유족과 기독교 성직자들로 구성된 장례준비위원회는 조만간 김씨에 대한 보상과 예우, 장례기간, 장지 등을 놓고 정부측과 협상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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