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보상과 인권회복운동에 평생을 바쳐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모’로 불리는 이금주(99·전남 순천) 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이 10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이날 수여식에는 이 전 회장을 대신해 손녀 김보나씨가 훈장을 대리 수상했다.
김씨는 수상소감에서 "한일 협정 공개결정을 내려주신 고 노무현 대통령님, 일본의 무역보복에 단호하게 맞선 문재인 대통령님, 일본 불매운동에 함께 힘을 모은 국민들께 감사하다"고 말하며 "일제 피해자들의 떳떳하고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국민여러분이 끝까지 힘을 실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이 전 회장의 가시밭길 삶은 남편이 일제 해군 군무원으로 강제 징용되면서 시작됐다. 태어난지 8개월 된 아들을 뒤로 하고 남편은 결혼 2년만인 1942년 11월, 기약할 수 없는 징용 길에 나섰다.
남편은 살아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 전회장은 1945년 4월 남편의 사망 통지서를 받았다.
평안남도 출생의 실향민인 이 전 회장은 공직자이던 아버지를 따라 광주에 와 정착했다. 그 후 이 전 회장은 유치원 교사 등을 하며 홀로 아들을 키웠다.
남편을 일제에 빼앗긴 이 전 회장은 그 분노와 고통을 희생자 유족을 돌보는 활동을 하며 일본에 저항했다. 1988년 6월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출범에 힘을 보탰던 이 전 회장은 광주유족회장을 맡아 활동을 시작했다.
이 전 회장은 1992년 원고 1273명이 참여하는 ‘광주천인소송’을 시작했다. 이어 우키시마마무 폭침사건 소송, 관부재판 소송, B·C급전범 소송,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주도했다.
이 전 회장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본어로 꼼꼼하게 정리했다. 일본어가 유창한 이 전 회장은 80여 차례에 걸쳐 일본을 오가며 법정 증언을 했지만 이 전 회장이 일본 변호사들과 함께 제기했던 7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모두 패소했다.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은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지만 국내 손해배상 소송의 밀알이 됐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등은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지난 해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 전 회장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면서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숨진 그의 남편의 위패가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됐다. 조선인 출신 군인·군속들을 합사에서 빼달라며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이 전 회장은 1990년에 남편이 전사한 섬에 갔다가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하고 돌멩이 몇 개를 주워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이금주 전 회장은 현재 전남 순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쓸쓸히 노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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