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씨의 원청업체와 소속 업체 사장은 처벌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27일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지난 20일 태안경찰서는 고 김용균의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사장과 김용균 씨의 소속 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백남호 사장 등에게는 김 씨 사망 사고에 대한 혐의가 없다며 처벌대상에서 제외해 검찰로 송치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장과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 등 현장 관리자 11명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의견으로 검찰로 송치했다.
앞선 1월 11일 김 씨 유가족과 고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는 김 사장과 백 사장 등 16명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주요 혐의로 적용해 고소, 고발했다. 또, 이의 적용이 어려울 경우 업무상과실치사로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고김용균1주기추모위원회는 27일 광화문광장에서 경찰 조사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몸통은 빼고 깃털만 처벌하려는 태안경찰서의 조사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은 진짜 책임자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사장을 처벌하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책임을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처할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원하청 사장은 노동자가 위험한 상황에서 일한다는 걸 알고도 방치했다"
시민대책위가 김 사장 등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한 것은 이들이 '현장에서 2인 1조 근무원칙이 위반되고 있고,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송영석 고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장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승인한 지침에는 분진, 소음 지역 출입 시 2인 1조 작업 규정이 있다"며 "그런데 원청과 하청업체 대표자의 도장이 찍힌 용역계약서에는 해당 업무를 1인이 수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지침이 위반되고 있다는 사실을 본사 책임자가 몰랐다고 할 수 없고, 몰랐다고 하더라도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단장은 "사망사고 전에 김용균 씨와 비슷한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위험을 느끼고 작업방식을 개선해달라고 건의한 일이 있었고, 2014년 11월에는 태안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보령화력발전소 노동자가 김 씨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는 일이 있었는데도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은 현장 운영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했다"며 "그런데도 원하청업체의 책임자들에게 '죽더라도 내 책임이 아니겠지. 조심히 운전하면 죽지 않겠지'하는 인식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송 단장은 "살인죄는 적극적으로 살인을 의욕하지 않더라도 '설마 사람이 죽지는 않겠지. 그런데 만에 하나 죽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지'라는 소극적 인식으로도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책임자와 실권자에 대한 철저하고 제대로 된 재수사가 있어야 하고, 그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안전 의무를 위반하거나 고의로 등한시한 기업에 높은 벌금을 매기고, 경영책임자, 이를 방치한 공무원 등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이번 경찰조사에서 드러나듯 현행 법체계로는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일어난 사업장의 최종 결정권자인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거나 중대재해가 일어난 기업의 경영에 실질적 불이익을 주기 어렵다.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을 일이 거의 없고, 노동자의 '목숨값'보다 안전시설 확충에 드는 값이 더 비싼 상황에서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또, 경찰이 현장관리자 11명에게 적용한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해서는 처벌 조항으로 5년 이하 금고 혹은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적시되어 있으나,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된다. 또, 업무상 과실치사는 노동자의 안전 문제를 전문적으로 규율하는 법도 아니다.
김태연 고김용균시민대책위 공동대표는 "경찰과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말도 안 되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상황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및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참석했다. 김 이사장은 "노동자의 죽음을 방관하는 기업을 볼 때마다 분노가 차오르고 억장이 무너진다"며 "노동자가 죽지 않는 현장을 만드는 것이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기에 원청이 사고의 책임을 지는 날이 올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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