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강제폐업. 벌써 6년이 훌쩍 지났다.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떠나야 했던 환자 200여명과 가족들. 그 중에는 42명의 환자가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강성 귀족노조’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병원에서 쫓겨난 230여명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책임자는 단 한 번도 환자와 노동자, 도민들에게 위로와 사과의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집행자들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항변해왔다. 새로운 기대를 받고 출발한 ‘힘 있는 사람들’ 역시 위로의 말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진주의료원 강제폐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지시와 조작된 서류에 의해 불법 강제폐업이 이뤄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불법 강제폐업 진상 드러났다”
핵심은 홍준표 전 지사와 그의 지시를 받거나 공모한 공무원들의 직권남용에 의한 불법 폐업이라는 것이다.
또 불법을 합법으로 위장하기 위해 권한이 없는 진주의료원 이사회를 이용하고, 폐업의결서를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외에도 △불법 강제폐업을 은폐하기 위한 공공기록물 폐기 △불법적 환자 강제퇴원과 전원 회유·종용 △폐업 결정을 위장하기 위해 도의회와 국회, 복지부 기만 등도 이뤄졌다.
진주의료원 강제폐업 진상조사위원회는 26일 경남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진상조사 최종 보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진상조사위는 전·현직 도의원 8명과 변호사 3명, 보건의료노조 등 모두 16명으로 구성됐으며, 지난 2월 22일부터 9개월 동안 조사를 진행했다.
진상조사위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홍 전 지사와 관련 공무원들을 권한남용 등의 혐의로 오는 28일 창원지검에 고발할 예정이다.
“홍 전 지사가 폐업 결정하고 추진 지시”
진상조사위는 홍 전 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발표를 한 것에 대해 ‘취임 69일만의 결정’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취임과 거의 동시 또는 직후에 이미 폐업 결정이 내려지고, 발표하는 날까지 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홍 전 지사는 지난 2012년 12월 19일 보궐선거로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 진주의료원 폐업 발표는 이듬해 2월 26일이었으므로 취임 69일만의 결정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소 취임 35일째인 2013년 1월 24일 이전에 폐업을 확정하고 관련 업무 추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진두지휘한 정황이 드러났다.
진상조사위는 “이 같은 내용은 ‘도지사 지시사항 관리카드’라는 문서에 나타나 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가 제시한 관리카드 문서는 그해 1월 24일 작성된 것으로 폐업 발표 날짜가 2월 26일로 명시돼 있다. 폐업 발표 전인 2월 18일 진주시에 진주의료원 폐업신고서를 보낸 것도 드러났다.
따라서 도지사 취임과 거의 동시 또는 직후에 폐업 결정이 이미 내려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직권남용의 범죄, 그리고 공범들”
진상조사위는 홍 전 지사의 폐업 결정과 관련 업무 추진 지시는 명백히 ‘직권남용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행위 자체가 단순히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폐업을 강해하고 밀어붙이기 위해 강제력을 동원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폐업 이듬해인 2014년 열린 국정감사장에서는 경남도가 ‘보조금 관리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법 제24조는 보조를 받은 사업자가 사업을 중단 또는 폐지하려면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법 제22조는 사업자가 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홍 전 지사는 진주의료원 사업을 중단·폐지하면서 승인을 받지 않았고 공공의료시설에서 공공시설로 용도변경을 추진해 보조금 용도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2013년 당시 진영 보건복지부장관과 이목희 민주당 의원도 경남도를 방문해 “(진주의료원 설립에) 국비를 지원했으니 의료원 폐업 시 장관이 승인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홍 전 지사가 폐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주의료원 이사회를 이용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양쪽 모두 조례 개정 전에는 폐업을 결정하고 추진할 권한이 없음에도 이사회에 의결 권한이 있는 것처럼 의결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3년 3월 11일 진주의료원 이사회는 ‘제180차 임시(서면) 이사회’를 열어 진주의료원 휴업을 결정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4일 국정조사 현장조사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을 결정한 ‘제180차 임시(서면) 이사회’ 회의록이 발견됐다.
결국 이 폐업 결의서는 누군가에 의해 사후에 만들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강제폐업이 추진된 것이다. 5월 29일의 폐업 신고가 원천적으로 근거도 없고 효력도 없다는 증거인 셈이다.
진상조사위는 “이러한 일을 지시하고 집행한 홍 전 지사뿐만 아니라 동조하고 집행한 고위공무원들도 직권남용의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수사, 신속하게 개시하고 철저하게 진행해야”
이외에도 △약품 공급 중단 통보 △환자 전원 조치 위한 지원 요청 공문 발송 △86개 기관 적극 협조 요청 공문 발송 △도청 직원 전원 협조 요청 문자 발송 △내과의사 계약해지 통보 등 도청 공무원 조직을 총동원해 폐업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폐업 업무 추진을 위해 자금 지원을 지시하고, 통합관리기금 150억 원을 융자하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불법 폐업을 강행하기 위해 경남도 기금까지 동원했다”며 “홍 전 지사의 이러한 행위는 직권남용의 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진주의료원 TF팀 관련 문서가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무단으로 폐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자료는 불법 폐업의 의문을 풀 주요한 열쇠이기에 폐기 여부와 관련해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는 게 진상조사위의 입장이다.
이에 따라 진상조사위는 홍 전 지사와 관련 공무원들, 누군지 알 수 없는 기록물 폐기자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또, 진주권 공공병원 설립과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행정사무조사 실시,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조례 제·개정 및 예산 책정 등을 경남도와 도의회에 요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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