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첫 소송이 제기돼 5년째 진행중인 '담배 소송'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법원이 피고측인 (주)KT&G(전 담배인삼공사)에 대해 담배의 유해성과 관련된 내부문서 4백64건을 모두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KT&G의 담배 유해성 연구문서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그간 문서 공개 여부 때문에 지연됐던 '담배 소송'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법원, "KT&G 담배 관련 문서 제출하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조관행 부장판사)는 폐암환자와 그 가족 등 31명(현재 원고 43명)이 "흡연으로 폐암에 걸렸다"며 국가와 KT&G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해, 지난 30일 피고 KT&G측에 "담배 관련 연구문서 가운데 4백64건(25건은 영업비밀 부분 제외)을 제출하라"는 문서제출명령을 내렸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명령에서 "(KT&G는) 결정문을 받은 날짜로부터 5일 안에 문서를 제출하라"고 결정했다.
법원이 담배 유해성 연구문서에 대한 공개명령을 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의 명령으로 그동안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4백건 남짓한 문서만을 공개할 수 있다고 고집해 온 KT&G는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 ▲니코틴, 타르 등 담배 중 유해물질, ▲담배의 중독성(의존성), ▲담배의 유해성 및 중독성을 줄이기 위한 담배 제조방법 개선, ▲연구결과물의 보고 및 의사결정과 집행에 관한 건 등을 포함해 1958년부터 최근까지 국내에서 연구가 이뤄진 4백46건의 문서들을 공개해야 한다.
재판부가 영업비밀로서 보호할 필요가 있거나 소송과 무관하다고 판단해 제출명령 신청이 기각된 ▲미발매 신제품 개발연구 문서, ▲담배의 향료, 연초, 필터 제조방법 연구문서, ▲외국담배 연구문서 등 1백97개 문서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담배 유해성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공개되는 셈이다.
재판부는 문서제출 명령을 위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3일 동안 대전시 유성구 KT&G 중앙연구소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해 '국산 엽연초의 내용성분 분석보고' 등 10건의 문서 존재사실을 추가로 밝혀내 이 문서들도 함께 제출할 것을 KT&G쪽에 명령했다.
재판부 관계자는 "의료ㆍ공해소송 등 공익관련 소송의 원고들이 국가나 공공기관이 보유한 자료의 목록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맹점을 해결하면서 국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고심했다"면서 "이르면 올해 안에 판결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법원 명령으로 '담배 소송' 급물살 탈 듯**
이번 재판부의 명령으로 5년을 끌어온 '담배 소송'도 본 궤도에 오르게 됐다.
이번 문서 공개로 원고측은 KT&G와 국가가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알고도 이를 은폐한 채 담배소비 촉진정책을 시행했다는 주장의 근거를 찾게 되며, 피고측도 이를 반박하면서 소송이 급류를 탈 전망이기 때문이다.
원고측은 2000년에도 법원에 문서목록 제출을 신청했으나 "민사소송법에 문서목록 제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되기도 했다. 이번 법원의 명령은 2002년에 문서목록에 대한 제출명령이 가능하도록 민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하게 됐다.
***'담배 소송' 향후 전망은?**
'담배 소송'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그 결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에서 1999년에 시작된 '담배 소송'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이미 1950년대부터 소송이 진행됐다. 특히 1998년 2월 미국의 담배 회사들이 "2백47조원이라는 배상금을 46개 주정부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면서 담배 소송은 큰 전기를 맞게 됐다.
개인이 제기한 흡연피해 소송에서도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오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는 유사한 소송에서 흡연자측이 패소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담배 소송'의 특성상 피고측이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없음'을 입증하는 방식이 아니라, 원고측이 '인과관계 있음'을 입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원고측이 공개된 자료를 이용해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고, '이를 KT&G측이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담배 소비를 촉진시킨 사실'을 얼마나 잘 밝혀내는지 여부에 따라 '담배 소송' 승패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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