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침공을 전폭지지해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최근 연일 이례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을 비판, 일본도 이라크에서 발빼기를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한 일본까지 발빼기를 할 경우 우리나라의 추가파병에도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고이즈미, "미국은 미국 색깔 없애야" 쓴소리**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일 재계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은 미국의 색깔을 없애야 하며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를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재건지원을) 지속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다음 날인 21일 기자들이 발언의 취지를 묻자 "이라크의 재건은 이라크인밖에 할 수 없다"며 "미국으로도 유엔으로도 일본으로도 안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그는 이어 향후 이라크정책과 관련, "유엔의 개입이 중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앞서 고이즈미는 지난 17일에도 이스라엘이 이슬람 무장저항단체인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야신에 이어 후계자인 압델 아지즈 란티시까지 암살한 데 대해 미국이 이스라엘 지지입장을 밝히자 "(행동을 묵인하는) 미국에는 미국의 입장이 있지만 나는 용인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미국과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고이즈미의 이례적인 미국 비판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미국 추종 정책'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이를 비켜가기 위한 국내정략적 접근이거나, 향후 유엔중심의 이라크정책으로의 전환을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이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나카소네 "미국은 단세포"**
고이즈미의 쓴소리 못지않게 주목되는 것은 고이즈미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본 자민당 원로들의 미국비판이다.
고이즈미의 정치적 대부로 알려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도 21일 한 강연에서 "미국인은 걸프에서 정치를 한 적이 없다. 거기다 단세포여서 자기들의 민주주의가 가장 좋다고 믿고 강요하는 버릇이 있다"며 "그러니 아랍에서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고 부시의 이라크 점령정책을 통렬히 비판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집권 3년을 맞은 고이즈미정권에 대한 평가를 부탁받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며 "종합점수를 매기자면 30점"이라며 고이즈미의 미국추종 외교를 신랄히 비판했다.
이처럼 국내비난여론이 고조되고 이라크전의 '제2 베트남전'화가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자, 고이즈미 정부는 향후 이라크재건을 미국 주도에서 유엔 주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으며 최근 고이즈미의 잇따른 쓴소리는 이같은 판단에 기초한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도 21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의 전화에서 이라크로의 정권이양에 대비해 '신 유엔안보리 결의'를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등 유엔 주도 입장을 분명히 하기 시작해, 미국을 한층 고립무원의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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