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기로 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가 암초를 만났다. 문재인 정부는 자살, 산재,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매우 많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사망률을 보이자 불명예 탈출을 긴급 선언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2022년까지 그 숫자를 각각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교통사고 사망을 빼고 산재와 자살로 숨진 사람은 지난해 외려 더욱 늘어났다. 산재 사망자(직업병 사망 제외)는 2010년 1,114명, 2011년 1,129명, 2012년 1,134명, 2013년 1090명 등 연간 1천명을 웃돌았다. 이후 2014년부터는 900명대 중후반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2017년에는 964명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971명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자 만인률(1만 명당 비율)은 유럽연합의 5배, OECD 국가 중 1위이다.
자살률도 산재 사망률 못지않게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2003년 이후 OECD 국가 중 1위의 자살률을 15년째 유지하였다. 2위 국가는 우리의 자살률을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데 2017년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해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벗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2017년 자살 사망자가 1만2,463명에서 지난해 1만3,670명으로 무려 9.7% 증가하였다. 우리가 다시 OECD 자살률 1위의 기록을 탈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살로 하루 평균 37.5명 이상이 생명을 잃고 있다.
정부가 교통사고, 산재, 자살 등 3대 생명 지키기 프로젝트에서 2022년까지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려면 교통사고는 연간 사망자 수를 2천 명 선으로 낮추어야 한다. 산재 사망자는 500명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 자살 사망자는 6천 명가량으로 대폭 줄여야 한다. 다시 말해 해마다 교통사고는 400 명, 산재는 100 명, 자살은 1,200 명을 5년 동안 줄여야만 한다.
산재·자살 목표 달성 위해서는 초기에 사망자 더 줄여야
이를 위해서는 해마다 균등하게 사망자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는 후반기보다 훨씬 더 많이 줄여야만 한다. 교통사고, 산재, 자살과 같은 사망요인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망자 수를 줄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통사고는 초기에는 연간 6백~7백 명 수준으로 줄이고 후반기에 가서는 2백 명 수준으로 목표를 잡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통사고 사망자가 2017년 4185명에서 지난해 404명 줄어든 3781명을 기록한 것은 상당한 성과이긴 하지만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가운데 산재와 자살의 경우 목표 달성을 향해 순항하려면 2018년 적어도 산재는 사망자를 150~200 명가량 줄였어야 한다. 올해까지는 3백 명가량을 줄여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자살의 경우는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폭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외려 지난해 자살자 수가 대폭 늘어났으니 말이다.
문제는 올 들어서도 이 두 부문이 크게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자살률이 2017년보다 지난해 더 높아지자 올 9월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산재의 경우도 올해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100명 이상 줄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 7월부터 ‘사고사망 감소 100일 긴급대책’을 추진한 결과 전년대비 사망자 수가 9월부터 상당 수 줄어드는 추세라고 밝혔다. 아직 녹색등이 켜지지는 않았지만 적색등이 황색등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색등으로는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산재·자살 사망 정책, 패러다임 전환 필수
3대 프로젝트에 녹색등을 켜서 목표를 향해 질주하기 위해서는 위원회 발족, 긴급대책 등으로는 미흡하다. 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대책은 통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교통사고, 특히 산재와 자살과 관련해서는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통 큰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교통사고 사망자 줄이기의 성공 요인을 잘 살펴서 산재와 자살 부문에서 잘 활용해야 한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 대폭 줄어든 것은 도심 차량속도제한을 60㎞에서 50㎞로 낮추고 보행자 중심의 도로체계를 갖춘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다 모든 도로에서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했고 음주운전 단속과 처벌 강화가 큰 몫을 해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해 346명으로 2017년 439명과 비교하여 21.2%나 줄었다. 교통안전문화, 핵심을 살린 대책, 법제도 개선, 사법 처리 강화 등 행정·입법·사법이 연쇄적으로 맞물려 이런 긍정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교통 부문은 올 들어서도 사고 없이 잘 내달리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은 올해 9월말 기준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전년 동기 2,787명에서 385명(13.8%) 줄어든 2,402명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전년 대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율은 -9.2%였으며 7월말 기준 -10.9%, 8월말 기준 -13.1%, 9월말 기준 -13.8%로 매월 감소폭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정말 기분 좋은 추세다. 녹색등이다.
행정·입법·사법이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그러면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해답은 교통사고 사망자 줄이기에서 배운 것처럼 행정·입법·사법이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시계 침이 멈추거나 느리게 가지 않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째깍째깍 거리며 돌아가게 된다.
산재 관리·감독에 관한 한 현재 행정·입법·사법이 모두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산재 발생을 막기 위한 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노동부가 제때 효과적으로 감독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때문에 많은 산재 사고의 원인을 보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산재가 여전히 많다.
산재를 막기 위한 법에도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김용균 사망을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근로자 사망을 막기 위한 법 개정을 했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사용자단체 등의 반대로 반쪽 입법에 그쳐 언제 제 2의 김용균이 나올지 모른다.
산재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가 일어나더라도 대기업 등 원청이 처벌받는 일은 드물다. 하청업체의 감독자나 대표, 현장 책임자가 주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 때문에 대기업은 산재 발생과 산재 사망 위험성이 높은 작업은 외주를 준다. 그 결과 중대 재해가 작업장에서 일어나더라도 자신들은 처벌을 면한다.
또 처벌은 기업 법인이 아니라 사람 위주의 벌금과 과태료, 형사처벌 위주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대기업마저 안전 부문에 투자를 게을리 한다. 산재 사망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힘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이 아니라 법인에 대한 처벌을 하자는 주장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 이유이다.
경제 상황 나빠 자살예방에 빈곤·절망층 관리 중요
목표 달성이 가장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자살의 경우 누가 왜 자살하는지에 대해서는 파악이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예방 대책은 그동안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부터 자살시도자의 사후관리를 위해 응급실에 ‘자살시도자 상담사’를 배치하여 자살시도자에 대한 상담 및 사후관리를 지원하는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오히려 자해·자살시도자 수는 지난해 증가했다. 참여 응급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자살예방프로그램이 겉도는 것도 문제지만 자살예방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강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올해 자살예방 예산은 218억 원이었다. 세계 1위 자살국가라는 오명의 기록을 장기보유하고 있는 국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너무나 예산 규모가 작다. 내년 정부의 자살예방 요청액은 289억 원으로 올해보다 63억 원 늘어났다. 2022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 정도가 아니라 500억~1천억 원의 통 큰 예산 책정과 집행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목표 먼발치라도 가볼 수 있을 것이다.
자살은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IMF 이후 자살이 급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빈곤 등 몹시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와 지역사회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자살이 이루어진다. 최근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이 때문에 빈곤 또는 절망의 나락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 촘촘한 사회안전망과 배려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복지 행정 등이 우리 사회의 자살 유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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