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출간된 후 최근 2번째로 재출간된 고은 시인의 <한용운 평전>이 기존 연구를 무시하고 만해 한용운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불교계에서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고은 시인,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은 최남선에 대한 시기심의 결과"**
계간 <불교평론>은 2004년 봄호에 게재한 이재형(법보신문 편집국 차장) 씨의 "고은의 만해론을 비판한다"란 제목의 논단에서 "고은씨는 '평전'이라는 이름 아래 만해의 불교정신과 독립운동과 문학세계를 사정없이 짓이기고, (만해를) 시종일관 편협하고 이기주의적이며 최남선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평론>이 비판한 고은 시인의 평전은 1975년 만해의 입적 60주기를 맞아 썼던 것을 2000년 고려원에서 재출간한 뒤, 향연에서 지난 1월 다시 펴낸 것이다. 출판사 측은 출간 당시 "이 책은 한용운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의 정신세계 그리고 그의 진정한 의미를 꼼꼼히 되짚어보고 있다"면서 "한용운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실체에 가깝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그 의미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불교평론>의 지적은 다르다. 이 평전에서 고은 시인이 묘사하고 있는 만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 뒤에 만해가 직접 붙인 '공약삼장'을 최남선에 대한 시기심에 불과한 것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만해의) 이런 유학과 모험의 실패가 일본유학에서 돌아온 천재 최남선에 대한 원한이 엉겨진 것이다. 그래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도 그 자신이 쓰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최린의 권유로 그 운동의 대표자들이 공인하고 있는 서울의 중인계층 최남선에게 돌아간 것이다. 한용훈은 그 때문에 공약삼장이라도 추가해야 했던 것이다."(289쪽)
"한용운은 최남선의 (기미년 독립)선언서 원안을 싫어했다. 그것은 명백한 시기심 때문이었다."(249쪽)
"그에게는 애국심이나 문학이나 사업이나 늘 최남선 극복에 목적을 둔 사실이 한용운의 비밀로서 감추어지고 있다."(300쪽)
이재형씨는 "이런 해석에 따르면 공약삼장을 쓰겠다고 한 것도, 문학 활동을 했던 것도 최남선에 대한 질투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며 "이것은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했던 최남선의 선언문이 미사어구로 대의명분을 밝히고 있지만 실천 강령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만해가 '공약삼장'을 추가하게 됐다는 일반적인 견해와 기존의 연구 결과들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고은 시인, "<님의 침묵>은 요설, <유심>은 공허한 배설물"**
고은 시인은 평전에서 만해의 문학 작품과 사상에 대해서도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고은 시인은 국민들로부터 널리 사랑받고 있는 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에 대해서 "시집 <님의 침묵>은 어떤 의미에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설명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설명문조차도 모든 암시의 힘을 믿지 않는 사설체의 요설(饒舌)로 넘쳐흐르고 있다"(301쪽)고 단정했다.
고은 시인은 또 만해의 신체시 '심'에 대해서도 '비속한 해설'이나 '붓장난', '승려들이 걸핏하면 지껄이는 정도의 사어(死語)'라고 단정짓고,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탁월한 저서로 평가받는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에 대해서도 현실인식이 부족한 치기어린 작품에 불과하다고 몰아붙였다.
고은 시인은 만해가 온힘을 기울였던 잡지 <유심>에 대해서도 "공허한 배설물인 논설과 수필"이라며 최악의 평가를 내리는 등 평전 전체에 걸쳐서 만해에 대해 민망할 정도의 비판을 늘어놓는다.
***"만해 불순한 승려, 정치적인 선동가"**
고은 시인은 만해의 불교계 활동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비판을 늘어놓는다.
고은 시인은 만해는 "이기적인 성정, 늘 원한이 살아 있는 감정적인 품성 때문에 (사찰의) 덕망의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하루도 견디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는 사랑을 가진 일이 없고, 대중을 이용했으며, 대중을 극단적으로 모멸했다"고 주장했다.
고은 시인은 "(만해는) 어떤 사람보다 지배 본능이 강함으로써 (오히려) 가장 변절하기 좋은 시대에 거의 의로운 지조를 지킬 수 있었다"면서 "그는 승려이기 전에 행동자이며 지도자였다"고 지적했다. 순수한 승려가 아니라 정치선동가였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의 만해 비판, "'만해 콤플렉스' 아니냐"**
이런 만해에 대한 고은 시인의 비판에 대해서 이재형씨는 "고은씨가 만해를 철저히 짓밟고 있는 것은 (고은씨의) 만해에 대한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출가한 후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고, 문학적으로 성과를 얻은) 고은씨의 행적은 만해와 닮아 있다"면서도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은 시인의 경우 "한 때의 고통이 문화권력을 쥐는 계기"가 됐지만 "만해는 일평생 고난의 세월을 걷다가 영양실조로 죽는다"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고은씨에게 만해는 처음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나중엔 극복의 대상이 됐다"면서 "70년대 치기어린 글을 최소한 2000년과 이번에 펴낼 때는 수정, 보완하거나 재발간을 해서는 안 됐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번에 고은 시인이 만해의 평전을 낸 것은) 질투심의 발로"라며 "자신의 작품이 30~40대 만해가 썼던 작품에 못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에서 비롯됐다고 혹평했다.
이씨는 이번 평전도 "(고은 시인이) 2001년 미당 서정주가 타계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미당의 친일문제를 끄집어내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만해를 자신의 구미에 맞춰 난도질해 그의 사상과 문학세계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고은의 만해 해석, 이문열의 고은 해석과 유사**
이씨는 글 말미에 이문열이 단편 '사로잡힌 악령'에 고은 시인을 연상케 하는 인물을 등장시켜 고은의 삶을 조롱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고은 시인을 다시 꼬집었다.
'사로잡힌 악령'에서는 유명한 스님 밑으로 출가했다 문단으로 적을 옮겨 교묘하게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민중시인이자 저항시인으로 탈바꿈한 시인이 등장한다. 소설에서 그 시인은 수난의 이미지를 활용해 대중적인 지명도를 전국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지식인 사회에서 명성을 보장받는다. 이 소설은 출간후 고은씨를 빗댔다는 시비가 불거진 바 있다.
이씨는 "(이 일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크게 분노했을 게 뻔한' 고은 시인이 만해를 해석한 것도 이것과 유사하다"면서 "(고은 시인의 평전은) 고은씨가 문학을 바라보는 수준, 민주화를 바라보는 수준, 불교계를 바라보는 수준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고은 시인은 제1회 만해시문학상을 받았으며, 가장 큰 문학행사중 하나인 만해축전의 대회장을 맡고 있어서 그의 <한용운 평전>을 둘러싼 파문은 앞으로 더욱더 커질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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