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파병국들의 철군 움직임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이번에는 필리핀이 이라크에서의 철군을 시사하고 나섰으며 폴란드와 불가리아에서도 파병 철군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스페인과 중남미 국가들의 철군 방침에 이어 또다시 철군 도미노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동맹국들이 흔들림에 따라 유엔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으나 유엔은 현재의 치안 상황으로는 이라크에서 활동할 수 없다고 밝혀 유엔 역할에 목매달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더욱 곤혹스러운 지경에 처하게 됐다.
***필리핀, “필리핀군 철수 여부 검토 중”**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14일 “이라크에서 증가하고 있는 폭력사태로 필리핀 정부는 파병한 필리핀군 철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필리핀 평화유지군을 철수시킬 것이냐의 여부는 앞으로의 이라크 치안상황에 달려 있다”며 “정부는 이라크 재건활동에 여전히 전력을 다할 것이지만 우리 평화유지군의 안전은 무엇보다도 제1의 고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하지만 “필리핀은 국제사회와 이라크 재건활동에 어깨를 함께 하고 있다”며 “이러한 점이 우리가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이다”고 말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필리핀은 약 1백명 규모의 군병력을 이라크에 파병시켜놓은 상태로 폴란드 다국적군 사단 예하에 속해있다. 중부 이라크에 배치돼 있는 필리핀군은 아직까지 치명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최근 민간인 운전사 한 명이 무장단체에 납치됐다가 풀려난 바 있다.
지난달에는 28명의 필리핀 경찰과 군병력이 7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필리핀으로 귀국했으며 같은 규모의 군경 병력이 이번주말에 이라크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다.
한편 필리핀의 좌파 정당들은 필리핀이 ‘미국의 적’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며 필리핀군의 철군을 요구해왔다. 아로요 대통령의 주요 정치 경쟁자들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WMD)를 찾는데 실패했다"며 필리핀군의 파병에 반대해왔다.
***폴란드 “군 증파는커녕 줄이겠다”, 불가리아군 15명 귀국 요구**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우선 다국적군 사단 사령부를 책임지고 있는 폴란드에서는 더 많은 병력 파병 가능성을 일축하며 오히려 파병군을 줄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레세크 밀레르 폴란드 총리는 13일(현지시간) 공영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폴란드는 이라크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낼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 밀레르 총리는 이어 “정부는 오히려 폴란드군 병력을 늘리기 보다는 줄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중”이라고 강조했다.
이라크에 파병된 폴란드군 병력은 약 2천 5백명 가량으로 이라크 남부에 주둔중인 약 9천명의 다국적군 사단을 이끌고 있다.
불가리아도 사정이 비슷하다. 약 4백80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한 불가리아는 지난해 12월 주둔지인 카르발라에서 발생한 차량폭탄공격으로 불가리아군 5명이 사망한 이후 국내적으로 거센 철군 요구에 몰려 있는 상태다.
이라크 파병 불가리아 군인들 가족들은 최근 이라크 시아파 무장세력들과의 교전으로 불가리아 병사 4명이 부상당한 이후 철군을 요구하는 협의회를 꾸리기도 했다.
한편 카르발라에 주둔중인 불가리아 병력 가운데 15명은 아울러 불가리아 정부에 귀국을 허용하도록 요구했다고 14일 불가리아통신사인 소피아통신이 보도했다.
***유엔, “이라크 치안 상황으로 이라크서 활동 할 수 없다”**
이렇게 동맹국들이 흔들리고 있지만 미국이 ‘해바라기’하고 있는 유엔은 오히려 이라크에서의 활동에 난색을 표해 미국은 탈출구를 찾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3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가까운 미래에 유엔이 이라크에서 활동하는데 주요한 제약 요인은 바로 이라크 치안 상황”이라며 “대규모 유엔 팀을 지금 당장 보낼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아난 사무총장은 “모든 사람들은 유엔 직원들이 이라크로 복귀하고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보호체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유엔은 4월 초에 이라크 각 분파와의 협상을 조율하기 위해서, 미군 주도 연합군과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요청으로 유엔 직원을 파견한 바 있고 2005년 1월 말로 예정돼 있는 이라크 총선거 준비를 돕기 위해서 독립된 선거팀을 파견한 바 있으나 이들은 현재 치안악화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바그다드 그린존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서도 아난 사무총장은 “상황이 악화되고 폭력이 더욱 심해져 현재 파견한 유엔 직원들의 활동도 훨씬 어려워졌다”며 유엔의 활동이 현재에서도 더 후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