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8일 수도권 전철 노선 서해선의 역 중 하나인 초지역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초등학생 한 명이 스크린도어를 손으로 밀자 문이 스르륵 열린 것이다. 다행히 역무실에 들어온 신호를 본 직원이 곧바로 내려와 스크린도어를 닫으면서 큰 사고로 커지지 않았다. 혹여나 지하철이 들어올 때 사람이 밀려서 선로로 떨어졌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사고를 두고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는 노동자들이 원인을 조사했다. 스크린도어를 고정하는 부품이 휘어서 잠금장치가 열린 것이었다. 근본적인 원인도 자리잡고 있었다. 궤도 사업장 중 '전국 최저 노동조건'으로 알려진 서해선의 안전 인력 부족이 꼼꼼한 유지보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소속 서해선 전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7일로 10일차에 접어들었다. <프레시안>이 2018년 3월 26일 서해선 개통 당시부터 일해온 김찬근 서해선지부 사무국장을 6일 초지역 근방에서 만나 서해선의 안전 인력 현황과 노동조건, 그리고 그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한 이유를 들어봤다.
"서해선 안전 인력, 서울교통공사 직영 노선 1/5에 불과"
서해선은 부천시 소사역에서 안산시 원시역을 잇는 중전철 노선으로 민간 투자를 받아 건설됐다. 역사 등 시설은 서울교통공사의 100% 출자 자회사 소사원시운영(주)이 시행사인 이레일(주)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한다. 철도운행, 차량 정비 등은 한국철도공사가 이레일(주)의 위탁을 받아 수행한다. 이번에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은 소사원시운영(주) 소속이다.
김 사무국장은 스크린도어가 열린 사건을 이야기하며, 평소 서해선에 안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인력이 너무 타이트하게 짜여 있어요. 단순계산으로 볼 때 모회사인 서울교통공사의 1/5 수준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꼼꼼하게 시설을 유지보수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요. 처음 개통하고 몇 달 동안에는 3조 2교대로 일하는 궤도토목팀 중 1개 조가 통째로 빈 채로 운영되는 일도 있었어요. 하루 중 1/3 정도 시간 동안은 철로 사고 대응이나 안전 점검이 불가능했다는 말이죠."
소사원시운영(주)은 현재 12개 역사, 총 길이 22km의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소사원시운영(주)에서 일하는 인원은 1년 기간제 노동자 42명 포함 166명이다. 한국철도공사에서 일하는 인원은 51명이다. km당 인원은 10명 남짓이다. 모회사인 서울교통공사는 km당 인원을 50명으로 책정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1~8호선이 역간 거리가 1km 정도로 짧다는 점을 감안해 km당 인원을 절반인 25명으로 잡아도 서해선과는 2.5배 정도 차이가 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해선의 안전 업무는 전기, 통신, 신호, 궤도토목 등 4개 직렬로 이루어진 기술 분야와 운전취급 분야, 기계 분야 등으로 구성된다. 모두 3조 2교대로 근무하며, 각각의 직렬 혹은 분야에는 9~13명 정도가 일한다. 한 번에 투입되는 인력으로 따지면, 12개 역사, 22km 길이의 중전철 노선을 설비 종류 당 3, 4명이 유지 보수하는 셈이다. 안전 업무임에도 휴일 대체 인력이 없기 때문에 이보다 적은 수가 근무하는 날도 있다.
또, 12개 역사 중 7개 역사는 상주 인원이 1명이다. 취객이나 사고 등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혼자 대응해야 한다. 2명이 상주하는 역사도 같은 역사 혹은 다른 역사에서 일하는 역무원이 연차, 병가 등으로 쉬면 1인 역사로 바뀐다.
높은 노동강도와 낮은 임금에 서해선을 떠나는 노동자들
서해선은 인력이 부족해 다른 궤도 사업장에 비해 노동강도가 높은데도 임금은 낮다.
"아내가 보면 마음 아파할까봐 금액을 밝히기는 그렇지만, 전 직장인 김해선에서 서해선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임금이 많이 떨어졌어요. 들어오고 나서야 임금이 오픈됐어요. 이 임금인 줄 알았으면 안 왔을 것 같아요. 그래도 직급별 임금이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직급별로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10년을 일해도 승진이 안 되겠더라고요. 처음에 받는 돈이 평생 임금이 될 줄은 또 몰랐죠.”
소사원시운영(주)의 기본급은 1~6급까지 직급별로 책정되며, 호봉은 없다. 가장 낮은 직급인 6급 직원의 기본급은 월 174만5000원이다. 5급 대리는 월 186만4000원, 4급 과장은 월 218만7000원을 받는다. 5급과 6급에 직원 70% 가량이 몰려있다. 4급은 20% 가량이다.
9명인 3급 부장으로 올라가면 기본급은 월 254만9000원이 된다. 4명인 2급 소장, 처장의 기본급은 303만1000원이다. 최고 직급인 1급 직원은 없다. 사장을 비롯한 2급과 3급은 대부분 모회사인 서울교통공사 퇴직자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서해선 지부의 설명이다.
노동강도가 높고, 임금이 낮다보니 떠나는 사람도 많다. 김 사무국장은 실제로 지난 1년 간 30% 정도의 노동자가 퇴사했다고 전했다.
“회사 안에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얼마 전 서울교통공사 신규 채용이 있을 때도 6명이 나갔어요. 대리로 일하던 분이 직급을 낮춰 사원으로 들어갔는데 연봉이 1000만 원 올랐대요. 관리자들도 사정을 다 알아서 이직자를 잡지도 못해요. 철도에서 숙련 노동자가 되려면 보통 3~5년이 걸린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자꾸 인력이 빠져나가면, 서해선을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은 누가 지키죠.”
다단계 위탁 구조와 공공기관의 이익 중시 경영이 낳은 '전국 최저 노동조건'
김 사무국장은 서해선의 안전 인력 인원과 노동조건이 전국 최저 수준으로 형성된 데는 민간이 끼어 한 단계 많은 다단계 위탁 구조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서해선은 주무관청인 국토부가 시행사 이레일(주)에 위탁하고, 이걸 서울교통공사가 받아서 다시 소사원시운영(주)에 내리는 4단계 구조에요. 같은 수도권 노선인 김포선을 보면, 김포시가 서울교통공사에 위탁하고, 이걸 김포도시철도가 받는 3단계 구조고요. 제가 일했던 김해선도 3단계였어요."
그러다 보니 다단계 구조를 내려오며 현장까지 오지 못하는 돈은 상대적으로 많다. 인건비로 책정되는 돈은 상대적으로 적다.
"국토교통부가 처음에 195억 원을 줘요. 그러면 이레일, 서울교통공사 거치고 나서 소사원시운영(주)이 받는 돈은 138억 원이 돼요. 60억 원이 빠지는 거죠. 인건비 절대액수를 봐도 말이 안 돼요. 서울교통공사가 25명에 17억 원 정도 인건비를 책정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안전에 대한 비용이라고 봐야죠. 그런데 소사원시운영(주)이 144명 인건비로 책정하는 돈이 52억 원 정도예요."
김 사무국장은 모회사인 서울교통공사가 자회사 운영의 목적을 경영상 이익으로 잡은 것과 소사원시운영(주)이 이익이 있는데도 나누지 않는 것 또한 열악한 노동조건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감사에 나와서 '자회사를 운영해 이익을 내서 서울교통공사 적자를 메꾸겠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실제로 소사원시운영(주)이 2018년 기준으로 3월부터 운영했는데도 32억 원의 순이익을 냈어요. 이 중 12억 9000억 원을 서울교통공사가 가져갔어요. 나머지 이익도 인건비로는 투여되지 않았어요. 현장에서는 노동조건 때문에 전문성 있는 자꾸 사람이 떠나고 있는데 말이에요."
서해선을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전국 최저 노동조건' 개선
김 사무국장은 이 같은 상황에서 안전 인력 충원과 숙련 인력 양성을 위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직서 넣고 다니는 분도 있고요. 다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번은 싸워보겠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더 이상 동료들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요. 동료들이랑 힘 모아서 서해선을 시민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고, 노동자에게도 좋은 직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상황은 녹록치 않다. 파업 이후 교섭에 나서지 않던 사측은 지난 4일, 7일째 파업 중이던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파업하면 파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를 파업했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해고다. 또, 해당 발언은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3권을 침해한 것으로 부당노동행위 소지도 있다.
이어 6일, 소사원시운영(주) 사장은 국토교통부와 면담을 가졌다. 다음날인 7일 오전 다시 노사 교섭이 열렸다. 그러나 교섭에 들어간 김 사무국장은 "사측이 인력 충원이나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해 입장 변화가 없다"고 전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전국 최저 노동조건'을 개선해달라는 바람에 서울교통공사와 그 자회사는 아직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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