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제품이 '기능성 화장품'임을 알리는 어떤 홍보도 없었다. 기능성 화장품 인증 제품 홍보에만 사용할 수 있는 '주름 개선' 문구도 없었다. 사실 굳이 그런 문구가 필요 없었다. 피부 탄력에 도움을 준다는 말만으로도, 이 제품은 1시간 동안 수천 개가 팔려나갔다.
이상한 일은 또 있다. 미국 B사가 제조한 스트라이벡틴은 지난해 11월부터 G홈쇼핑에서 판매해 연속 매진을 기록한 상품이다. 같은 회사가 제조한 상품을 수입해 동일 상품을 판매했지만, G홈쇼핑은 기능성 화장품이라고 홍보했고, L홈쇼핑은 하지 않은 셈이다. 도대체 무슨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이날 L홈쇼핑에서 판매한 스트라이벡틴은 국내 화장품 수입 업체 W사가 2006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아 유명 백화점에서 판매해온 제품이다. W사는 2008년 생산된 같은 제품을 올해 3월 다시 들여와 이번엔 L홈쇼핑에서 판매했으나, 웬 일인지 이번에는 '기능성 화장품'을 내세우지 못했다. 사정은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기능성 화장품은 일반 화장품과 달리, 수입할 때 식약청에서 안정성과 유효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에서 통과해 인증 번호를 부여 받으면 포장이나 용기에 '기능성 화장품'이라는 문구를 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W사가 새로 수입한 유럽형 스트라이벡틴은 '기능성 화장품'으로 인증을 받는데 꼭 필요한 '레이닐팔미테이트' 성분이 기준보다 부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W사는 '기능성 화장품'을 내세우지 않은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굳이 '기능성 화장품'을 강조하지 않아도 유명 업체의 같은 상품이 널리 알려진 탓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시간만에 수천 개가 판매되는 실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는 기능성 화장품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품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 '기능성 화장품'이란 홍보를 달고 판매되는 스트라이벡틴 제품(왼쪽)과 '주름 개선'이란 문구를 스티커로 가린 채 판매되고 있는 제품(오른쪽). 같은 회사에서 제조한 정품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기능성 화장품'이란 사실을 믿고 사는 소비자들에겐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선명수) |
홈쇼핑 상담 전화에선 "기능성 제품이 맞다"
문제는 방송에서 홍보한 제품 설명과 L홈쇼핑 상담 센터에서 홍보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녹음 파일을 보면, L홈쇼핑 상담원은 제품 문의를 위해 전화를 건 고객에게 "주름 기능성 제품이 맞다", "G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구성만 다르고 내용은 동일하다" 등의 설명을 했다.
이는 다시 말해 '기능성 화장품'이라고 판매해선 안 되는 제품을 허위 광고해 판매한 것이 된다. 이날 이렇게 판매된 제품은 수천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L홈쇼핑 관계자는 "많은 소비자들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스트라이벡틴 제품이 맞냐는 문의를 하셨고, 이를 상담하다 보니 정품은 맞지만 식약청이 규정한 기능성 화장품은 아니라고 설명했다"며 "고객들에게 이미 기능성 화장품으로 알려진 상품이다. 국내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능성 화장품으로) 홍보는 못했지만, 고객들에게 허위 광고를 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식약청의 '이상한' 기능성 화장품 인증…경쟁 업체 소송으로까지 번져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쟁 화장품 수입 업계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스트라이벡틴 제품을 수입해 2009년 식약청의 기능성 인증을 받은 또 다른 화장품 수입 업체 E사는 "2006년 식약청이 W사에 기능성 인증을 해준 것에 문제가 많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2006년 당시에도 W사가 수입한 제품에는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기 위해 필요한 레티닐팔미테이트 성분이 부족했음에도, 해당 상품이 버젓이 '기능성 화장품'이란 딱지를 달고 국내에 판매됐다는 지적이다. 주름 개선과 피부 탄력에 효과가 있는 이 성분은 제품에 1만 IU/g 이상 함유돼 있어야 국내에서 기능성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E사가 지난 2월 한국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 의뢰해 2006년 수입된 W사의 화장품 4종을 성분 분석한 결과, 각 제품의 레티닐팔미테이트 함유량은 110~150IU/g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이번에 문제의 상품을 판매한 L홈쇼핑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L홈쇼핑 관계자는 "왜 방송에서 제품을 기능성 화장품이라고 홍보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W사가 수입한 스트라이벡틴 제품은 미국 B사가 제조한 정품이 맞지만, 국내 식약청의 요건을 충족시키기에는 일정 성분을 함유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또 해당 화장품의 제조업체인 미국 B사가 국내 수입 업체인 E사와 계약을 하며 지난해 보낸 문건을 보면, "한국형 스트라이벡틴SD는 비타민A(레티닐 팔미테이트) 1만 IU/g를 추가로 포함시켰으며 현재 기능성 화장품으로 분류됐다"고 밝혀, 지난 2006년 E사가 받은 기능성 인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 같은 정황을 종합하면, W사가 지난 2006년부터 국내 유명 백화점 및 홈쇼핑에서 판매해온 스트라이벡틴 제품은 식약청의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았어도, 사실상 기능성 화장품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부실 제품'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같은 사실이 논란이 되자, 현재 W사는 해당 제품의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취소한 상태다. L홈쇼핑 방송이 나가기 불과 20여 일 전인 2월 12일까지만 해도, 해당 제품은 식약청 사이트에 등록이 되어 있었으나 최근 W사는 이 인증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경쟁 업체끼리 민간에서 화장품 성분 검사를 하는 것에 대해 식약청이 개입할 이유는 없다"면서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매달 시도별로 진행하는 제품 수검에서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식약청의 기능성 화장품 인증에서 비롯된 이 같은 갈등은 현재 법정 분쟁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E사는 W사의 화장품을 판매한 L홈쇼핑의 판매 대행 업체인 W홈쇼핑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디지털밸리의 차형근 변호사는 "식약청의 부실한 기능성 인증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라며 "성분이 부족한 제품이 인증을 받은 것에 대한 추가 조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W사 "기능성 화장품 기준 미달은 사실이지만…" 스트라이벡틴 제품을 수입해 L홈쇼핑에서 판매한 화장품 수입 업체 W사가 23일 <프레시안>에 뒤늦게 반론 보도를 요청해 왔다. 앞서 <프레시안>은 W사의 공식 해명을 듣고자 시도했으나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었다. W사 관계자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스트라이벡틴의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취소한 것을 놓고 "레티닐팔미테이트 성분이 부족해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취소한 것이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회사 내부에서 법적 문제를 검토하고 나서 취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W사는 국내에서 스트라이벡틴 제품에 대한 유일한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회사"라며 "지난 3월 L홈쇼핑에서 판매된 상품은 프랑스 등의 유명 화장품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유럽형 정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당시 홈쇼핑 방송에서 '기능성 화장품'이라고 홍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홈쇼핑 전화 상담에서 사실상 '기능성 화장품'으로 홍보를 했다는 지적을 놓고는 "이는 (W사와 공식 관계가 없는) 해당 홈쇼핑 콜센터 직원이 상담했던 것이고, 정확한 사실도 확인해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도 W사의 스트라이벡틴이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을 때 필요한 레티닐팔미테이트 성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이번 일은 스트라이벡틴 후발 수입 업체인 E사가 국내 라이센스를 갖지 못해서, 선발 업체인 W사를 견제하면서 생긴 일"이라며 "이미 E사 대표를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