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시의 정당들이 주택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는 '베를린시 주택 임대료 법안'에 합의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베를린시의 '임대료 동결'은 독일 16개 주 가운데 최초다. 독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다투고 있으나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 각국이 베를린시의 이 같은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베를린시의 집권 연정을 구성하는 사회민주당, 녹색당, 좌파당은 지난 6월부터 논의를 진행해 지난달 18일 '임대료 동결' 합의에 도달했다. 미하엘 뮐러 베를린 시장은 "새로운 영역에 들어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베를린시의 임대료는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교해 저렴한 편이었으나 최근 베를린시의 인구가 5만여 명 늘면서 집값과 임대료가 급등했다. 2008년과 비교했을 때 임대료는 두 배 이상 올렸으며 매매가는 세 배에 이른다. 도심에 살던 시민들이 임대료 폭등으로 외곽으로 밀려나는 일이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지난해에는 급기야 "거대 임대기업의 임대용 집들을 몰수하자"는 시민청원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합의안이 도출됨에 따라 이번 주에 시의회에서 표결이 이루어진다. 연정을 구성하는 정당들이 시의회의 과반을 점하고 있어 법안 통과는 확실시된다. 표결을 통과하면 임대료 동결법은 내년 1분기부터 바로 발효·적용될 예정이다.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 150만채 대상...5년간 동결 뒤엔 '임대료 상한선' 적용키로
이 법안은 베를린 시의회에서 도시개발·주택 부문을 담당하는 좌파당의 카트린 롬프셔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과도한 임대료 폭등에서 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법안에 따르면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의 경우 임대료는 법안 초안 발의 일을 기준으로 5년간 동결된다. 베를린시는 약 150만 채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22년부터는 물가를 반영해 인상이 가능하지만 상승 폭은 약 1.3%로 제한된다. 이 또한 주택 개보수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며 과도한 임대료를 내는 임차인은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도 있다.
새로 임차계약을 맺는 세입자들도 임대료 상한 혜택을 누리게 된다.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새 임대계약부터는 1㎡당 9.80유로를 임대료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이는 임대료 급등 이전인 2013년의 평균 임대료에 해당한다. 임대인이 만약 상한제를 어기면 무려 50만 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2014년 이후에 지어진 주택도 임대계약 시 이 상한선의 20% 이상은 부과할 수 없도록 했다. 베를린시는 20% 이상 오른 주택 임대료에 대해, 세입자가 해당 관청에 신고를 하면 임대료를 인하할 수 있도록 하는 추가 조치를 내년 9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베를린시 당국은 이 업무를 처리할 대규모 인력 채용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입자협회 "환영" vs 임대업체 "반대"
베를린 세입자협의회는 "이번 조처로 '사회적 임대료' 정책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부동산 임대사업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당 간 합의를 이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독일의 주요 부동산 임대업체의 주가는 폭락했다. 독일 최대 부동산 임대업체인 도이체보넨의 주가는 이날 장중 최대 4.6%까지 하락했으며 또 다른 대형 임대업체인 보노비아의 주가 또한 최대 1.9% 하락했다. 보노비아 대변인은 이날 이메일을 통해 성명을 내고 "이 같은 법률이 제정되면 베를린의 아파트 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독일의 주요 도시들은 베를린시의 이 같은 파격적인 실험을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뮌헨의 임차인 단체는 베를린보다 1년 긴 '임대료 6년 동결'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외에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임대료 동결 법안이 검토되고 있는 중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보도했다. 스페인 집권 사회당 정부는 올 초 임대료 인상 폭에 제한을 두는 안건 채택을 추진했으며 포르투갈에선 임대인이 저소득 임차인의 임대료를 올릴 수 없게 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 역시 주택 임대료가 급등하자 2016년 일부 지역을 '임대료 압박 지역'으로 정하고, 연간 상승률을 4%로 제한했다.
베를린시의 파격적인 실험이 세계 각국의 부동산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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